[기고]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에 관한 짧은 소회[기고]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에 관한 짧은 소회

Posted at 2015.05.08 11:42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종이 한국을 떠나며 남긴 말이다. 교종의 가슴에 단 세월호의 노란리본을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며 떼는 게 좋겠다는 누군가의 의견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지난 5월1일부터 2일까지 노동절 집회와 세월호 시행령 폐기와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집회까지 1박 2일 동안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을 했다. 참담했고, 비참했다. 365일을 2014년 4월 16일로 살아온 유가족들의 고통 앞에 청와대와 경찰은 애초부터 ‘중립’은 없었다.

중립

경찰은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시위 참가자들에게 최루액은 물론 최루물질인 ‘파바(PAVA·합성 캡사이신의 한 종류)’를 섞은 물대포를 난사했다. 경찰차벽으로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고, 심지어 차도는 물론 인도까지 시민들의 통행을 막았다. 이에 항의하면 어김없이 채증 카메라가 등장했다. 어떤 근거로 통행을 막고 있냐는 시민들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집단적 항의에는 예외 없이 해산을 종용하는 선무방송이 이어졌고, 곧이어 최루액이 시위대를 향해 뿌려졌다.



▲ 지난 5월 1·2일 세월호 참사 1박2일 노숙농성 관련 인권침해감시단 활동모습(사진=엄명환)



세월호 유가족들은 경찰의 의도적인 ‘고립작전’에 지쳐갔다. ‘차라리 잡아가라’는 호소는 ‘농담’이 아니었다. 도로에 ‘방치’된 유가족들은 교통불편을 초래한다며 지나가는 일부 차량 운전자들에게 욕을 들어야 했다. 인도를 열어줄 것을 경찰에 요구해보지만 마찬가지로 경찰방패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이 과정을 촬영하던 MBC 카메라는 유가족들에게 쫓겨났다.

고 유예은 양의 아버지인 유경근씨가 목에 밧줄을 묶었다. 연이어 유가족들은 목에 밧줄을 묶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죽어서 아이들을 보러 가는 게 이 비참한 현실보다 낫겠다며 밧줄을 묶었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섞인다. 이들의 호소는 절박했지만 경찰의 태도는 단호했다. ‘당신들은 여기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가만히 있으라’

진압

‘인권침해감시단’은 전국인권단체들의 네트워크인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민변’에서 주요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인권침해에 대한 모니터와 현장대응을 목표로 수년째 운영 중이다. 지난 5월 1일, 2일에도 10여명의 변호사와 활동가들이 형광색 조끼를 입고 현장에 투입(?)됐다. 말이 감시단이지 법적인 권한도 없고, 보호도 받을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연행도 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는 경우도 있고, 재판까지 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집회현장에서 경찰의 항의도 받는 경우도 있다. 지난 집회현장에서 감시활동을 하던 활동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시민들이 경찰을 욕하는 것은 인권침해 아닌가요? 좀 공정하게 하세요!”

뭐, 욕뿐이겠는가. 버스에 줄을 묶어 당기고, 물병이 날아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몸싸움도 벌어진다. 여기서 인권은 ‘경찰에게도 인권이 있으니 자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인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회 시위 현장에서 인권옹호 활동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 맨몸으로 맞서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권리는 애초부터 ‘진압’ ‘봉쇄’ 당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박노자의 말처럼 “체제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시위란 그 자체는 어떤 물리력 행사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집단행위”이기에 여기서 ‘폭력은 나쁘다’는 양비론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최근 세월호 관련 대규모 집회는 경찰의 차벽설치와 통행제한으로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다. 소위 불법, 폭력시위를 ‘예방’한다는 논리로 시민들의 호소와 집회시위의 권리, 이동의 자유가 완벽하게 차단당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길을 차단해놓고, ‘교통불편을 초래하니 해산하라’는 경찰의 말은 그래서 문제적이다.

국제엠네스티 아놀드 팡 동아시아 조사관은 “시위대는 청와대 앞에서 집회·시위를 할 권리가 있다. 단지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용도로 차벽이 사용됐다. 평화로운 집회·시위의 자유에는 시위대가 그들의 주장을 전달하고자 하는 대상이 보이는 거리, 그리고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거리 안에서 집회·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돼있다”고 논평을 발표했다. 저들이 밥 먹듯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자유’는 경찰차벽에 가로막혀 있다.



▲ 유가족들은 청와대도 광화문도 갈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경찰의 고립작전은 인권도 무용지물이었다(사진=엄명환)



자유

헌법,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과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을 어렵사리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인간으로서 보편적 권리를 항상 주장해 왔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쯤은 살다보면 누구나 느낀다. 돈도 빽도 없는 사람들은 악다구니라도 써야 살아남을 수 있다. 여기서 최소한의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은 권력자, 정부다.

하지만 이 정부에게 애초에 ‘중립’을 기대하기 어렵다. 태생이 국정원을 비롯하여 온갖 국가기구를 동원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통해 만들어진 권력이기 때문이다. 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중립적,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들이 좋아하는 ‘법대로’ 혹은 ‘법의 심판’은 단지 시민들의 자유를 옭아매는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그래서 인권은 결코 중립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인권은 법의 테두리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가만히 있지 말고 편을 들어 주세요. 중립은 항상 강자를 도와주지 약자를 돕지 않습니다. 침묵은 고통주는 사람에게 유리하고 고통 받는 사람을 보호하진 못합니다.


1986년 폭력과 억압, 인종 차별과의 투쟁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엘리 위젤이 남긴 말이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인권침해 감시단은 경찰의 기대처럼 앞으로도 결코 중립적이지 않을 것이다.


2015. 5. 7. 미디어스
안병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미디어스] 인간의 고통 앞에서도 청와대와 경찰은 '중립'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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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대모집![공지]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대모집!

Posted at 2014.02.11 18:07 | Posted in 공지사항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대모집!

 

- 활동분야 : 매체편집 / 도서 및 자료정리/ 회원관리 / 인권현장활동 / 언론모니터 / 웹디자인 / 기타

 

- 강추대상 : 짜증나서 뭐라도 해야 겠다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분.
                  시간이 남아 주체를 못하는 분.
                  인권활동가 최초, 영화 여주인공을 만나고 싶은 분.
                  혼자 밥먹고, 술먹는거 이제는 그만 하고 싶은 분.
                  이도저도 아니지만 인권운동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 분!


- 문의 : 다산인권센터 031-213-2105 humandasan@gmail.com

 

* 자원봉사 확인증 뭐 이딴거는 없습니다만 밥과 술은 무제한...ㅎㄷㄷ

* 참고로 다산인권센터는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단체라는 거...

 

온라인 신청하기 http://goo.gl/DWrsQ6


 

  1. 문재인
    질문 있습니다. 활동은 경기도, 충청도,강원도, 경상도에서 하면 되는 건지요?
  2. 경아
    우와 ㅋㅋㅋㅋ!!!!모집지원했어요!!♥
  3. 박연차
    지원하시는 분들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활동 도중 납치되어 섬노예로 끌려가도 이 단체는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습니다.
    찾으려고나 하면 다행이겠군요.
    만약 찾아냈다해도 도로 데리고 나오려고 할까요?
  4. 이노무시키
    박연차란 걱정원 알바 아이디를 쓰는 당신이 섬노예로 끌려 가면 아래 연락처로 .........

    연락처 : 박그네 010-4444-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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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의 인권운동 다짐(2013년)다산인권센터의 인권운동 다짐(2013년)

Posted at 2013.03.07 15:25 | Posted in 단체소개


지난해(2012년) 다산인권센터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인권운동에 대한 다짐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지난 20년의 활동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의 고민과 비전을 담고자 많은 토론을 거친 후 정리해보았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지만 채워나갈 수 있다는 여유를 갖고 긴 호흡으로 인권운동 하고자 합니다. ^^


하나, 우리부터 평등하고 억압이 없는 인권운동
- 단체 내 위계와 억압, 차별 없는 체계를 만듭니다. (반성폭력, 인권규약)
- 활동가 생활임금 보장을 위해 재정적 기반을 튼튼히 합니다. (2년 내 생활임금)
- 활동가 역량강화를 위한 지원체계를 구축합니다. (운영규칙, 공부모임 등 보완)
 
둘, 자본과 권력을 감시하는 인권운동
- 공권력(경찰, 검찰, 교정기관 등)을 감시합니다.
- 기업에 의한 노동인권 배제와 차별에 맞서고 저항합니다.
- 삼성 내 노동인권 확보를 위한 운동을 조직하고 실천합니다.
 
셋, 인권의 당사자들과 함께하는 인권운동
- 주민운동과 인권운동이 만나는 지역운동을 고민합니다.
- 우리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소수자들, 주체들을 만나고 조직합니다. (청소년, 청년, 노동자, 주부 등)
- 인권교육과의 만남을 모색하고, 새로운 인권운동으로 담아냅니다.
- 다양한 인권 프로그램(인권 기행, 찾아가는 인권 강좌 등)을 기획하고 정기적으로 추진하여 동네와 지역 속으로 파고드는 운동을 만들어갑니다.
 
넷, 인권운동을 넘는 인권운동
- 세계인권선언을 넘는 동네/지역 인권선언(예 : 매교동선언)을 준비합니다.
- 제도화되는 인권의 한계를 인식하고 제도 밖의 인권을 끊임없이 제기하기 위한 활동 기반을 마련합니다.
- 인권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고, 문제의식을 갖고 개입하며 새로운 의제를 던지고 고민하는 활동을 만들어갑니다.
 
다섯,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
- UN 이주민권리협약(http://blog.naver.com/noesis204/37075909) 가입운동을 전개합니다.
- ‘지역 빈곤 리포트 발간’ 등의 작업과 실천·연대활동을 통해 빈곤과 차별에 저항합니다.
- 범죄대책으로 후퇴하는 인권조치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인권적 대안을 만들고 인권친화적 사회를 향한 발판을 마련합니다.
- 부차화된 노동, 그 속에 부차화된 인권을 찾는 노동인권활동을 전개합니다.
 
여섯, 재정적으로 튼튼한 인권운동
- 벗바리(후원회원)의 참여와 후원으로 단체를 운영합니다.
- 기업/정부 지원은 계속 받지 않습니다.
- (지방)정부 재정지원은 기획된 활동, 간섭 없는 경우에만 받을 수 있습니다.
- 안정적인 재정확보를 위해 별도의 재정사업단을 고민합니다.
 
일곱, 인권담론을 확산하는 인권운동
- 인권운동이론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활동을 쌓아갑니다.
- 보이지 않는 인권의 의제와 주체들을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활동을 실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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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첫 마음으로, 인권운동 하겠습니다.[20주년] 첫 마음으로, 인권운동 하겠습니다.

Posted at 2012.11.05 10:57 | Posted in 20주년소식

사진 : 이상엽



고맙습니다. 
비정규직 투쟁과 여러 행사가 겹쳤던 27일,
아침부터 비가 쏟아져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수개월 동안 20주년 행사 때문에 많은 분들이 힘써주시고 고생하셨는데
사람이 적게 오면 어떻하나...
며칠전부터 걱정 걱정 입에 달고 살았더니 저희보다 더 걱정해주신 분들이
다른 약속, 일정 제쳐두고 와주셨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

생명평화대행진 일정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인 노래와 말씀을 선물해주신
문정현 신부님.
서울 공연일정을 빼면서까지 와주시고 큰 웃음을 주신
옹알스 여러분들.
감동적인 노래와 신명나는 기운을 나눠주신
강허달림, 이한철 밴드.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회를 맡아주시고,
관객분들의 억지스럽지 않은 '다산' 연호를 자연스레 '연출'해주신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님,


뒤풀이 시간까지 그림 그려주시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하신
이동슈 화백님,

그림과 사진으로 도움을 주신
노순택, 이윤엽, 임종길 작가님,

 행사 처음부터 끝까지 수화통역을 해주신
김종옥 님,  

20년의 역사를 담는 백서발간과 영상제작에 함께해주신
유승하 만화가, 김현주 님,  

찾아온 손님여러분들께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해주신
하늬바람님과 친구분들, 


그리고 이번 공연을 기획하고 끝까지 함께 해주신
20주년 비대위 여러분.

무엇보다, 없는 시간 쪼개서 짐나르고 공연연습하고 궂은일 맡아주신
자원활동가 여러분...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산인권센터, 20년 전 첫 마음처럼
인권운동 하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사진 : 이상엽
 

사진 : 오렌지가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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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 ①] "우리에게 사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때 그사람 ①] "우리에게 사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osted at 2012.10.16 11:32 | Posted in 20주년소식/그때 그 사람

다산인권센터가 올해로 20주년이 됐다. 10월 27일 인권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한 인권단체의 20년을 추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야만적인 인권현실 앞에서 무엇을 향해 가야 세상이 좀 더 나아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2012년이다. 다산인권센터는 지난 20년이라는 과거를 더듬어 현재 또는 미래를 안아보려 한다. 20년 전 다산인권상담소 시절부터 현재까지 만났던 인권피해자들과 인권의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보려 한다. 단지 기념하거나 추억하기에는 치열하기만 한 현재가 과거를 거울삼아 성큼 한걸음 내딛고 그리고 사실은 위로받기 위해서, 그때 그 사람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인터넷매체 <프레시안>과 함께한다. <편집자> 



화성 연쇄살인 범인 누명에 자살한 남편, 악몽은 아직도…
[그때 그사람 ①] "우리에게 사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제작 노트에 써 있는 글이다. 영화는 경찰들의 눈으로 만났던 살인범에 대한 추억을 되짚고 있다. 정부가 시국사건에 경찰들을 떼로 몰고 다니던 그때 시골마을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한 힘없는 여성들의 비극을 보여주었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영화처럼 현실에서도 진범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1986-1991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반경 2Km 이내에서 6년 동안 10차례의 강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71세 노인에서부터 13세 여중생까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한국사회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컸다. 태안 지서에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도경, 시경의 모든 베테랑 형사들이 투입되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금전 관계나 강도여부, 치정관계 등에 혐의를 두고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 화성연쇄살인사건은 한국 경찰에게 그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미국 FBI처럼 프로파일링(Profiling) 수사도 없었고, 철저한 현장 보존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수사의 노하우도 없었다. 그저 형사들의 사명감과 지구력에 의존한 끊임없는 탐문 수사만이 있을 뿐이었다. 부조리한 시대, 조악한 경찰조직의 말단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끔찍한 사건에 맞닥뜨린 그들에게 기댈 곳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그들이 간절히 원한 것은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유력한 용의자를 검거하고도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늘 기각되고 만다. 180만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고 3천여 명의 용의자가 조사를 받았지만 결국 단 1명의 범인을 잡는데 실패하고 만다.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우직하고 성실한 남편, 어느날 갑자기…

가을 햇살이 곱게 내리는 주말 오후, 김영아 씨(가명)는 오전 일을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20년의 세월이 고단했을 법도한데 김영아 씨는 여전히 고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꺼내 놓은 낡은 사진 속에서 남편 유은태 씨(가명)는 듬직하게 웃고 있었다.

"단추공장 다닐 때 만났어요. 애들 아빠는 2층 섬유공장에 다녔어요. 사장님들끼리 서로 소개해 줬는데… 그때는 뭐 그런 거 있었나요. 그냥 사람 좋아 보이고 그러면 마음잡고 결혼해서 사는 거죠. 26살 때, 그 사람이 한 살 많으니까 27살이었어요. 전쟁 때 아버지 잃고 원호 대상자로 어렵게 살았다고 했어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사람이 듬직하고 좋아서 결혼 했어요."

그렇게 결혼해서 3남매를 낳았다. 첫째가 딸, 둘째 셋째가 아들이었다. 어렵게 시작했지만 하나씩 장만하는 맛이 있었다. 남편은 워낙 우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사건이 일어나던 때 남편은 화성 인근의 큰 농장에 농장장으로 있었다. 남편은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처음 화성경찰서에 잡혀갔을 때는 큰 걱정 안했어요. 워낙 소문난 사건이었고 인근에 있는 남자들은 다 조사받기도 하고 그래서.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은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런 믿음이 있었어요. 몇 년 뒤에… 93년이던가…. 범죄와의 전쟁 선포한다고 할 때… 서대문 경찰서에서 사람들이 처음 올 때만 해도… 그때만 해도 이렇게 지금까지… 우리한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 김영아 씨의 남편과 아이들 사진. ⓒ다산인권센터



그때부터 김영아 씨의 말은 눈물과 한숨으로 이어지고 끊어지고를 반복했다. 왜 그렇지 않았겠나. 20년 동안 지속된 아픔이었다. 화성경찰서에서 무죄로 풀려났던 똑같은 사건은 몇 년 뒤 서대문 경찰서로 넘어갔다. 한 제보자에 의해서였다. 증거도 없고 혐의도 불충분한 상태에서 잡혀간 남편은 서대문서에 간 3일 동안 모진 일들을 당하고 내려온다. 씨름대회도 나갔던 덩치 좋은 남편은 이후 사람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뭐라고 해도 믿지 못 할 거예요. 그 3일 이후 애들 아빠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닫혀있는 방문을 보고도 문을 꼭 잠그라고 했어요. 경찰들이 또 아빠 잡으러 온다, 문 잠궈라… 삶에 대한 애착 이런 게 다 없어졌어요. 회사도 다니지 않았고… 애들은 아직 초등학교 다니고 있었는데… 단칸방에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고문 받고 와서는 일도 안하고 술로 버텼어요. 그렇게 견디다 못해 자살한 거지…."

고문 뒤 달라진 남편의 인생

서대문서에 끌려가 3일 동안 당한 고문으로 유은태 씨의 인생은 달라져버렸다. 더 이상 성실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그러한 누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못견뎌했고 괴로워했다. 자신이 당한 일을 허심탄회하게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 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린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김영아씨는 가정경제를 도맡았어야 했다. 술만 먹고 괴로워하는 남편을 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본인도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저도 속이 상해서 술만 먹지 말고 이겨냈으면 했는데… 신랑 원망도 많이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나라도 못살겠다 싶어요… 애들도 다 어렸을 때라… 한없이 불쌍하죠…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랬을까… 그걸 달래주고, 치료해주고… 요즘 같기만 했어도, 그렇게 도와줄 수 있었을텐데…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우린 아무것도 몰랐어요. 험한 일 당해서 국가배상해서 위자료를 받았지만 그걸로 우리 생활이 보상되는 건 아니었어요. 얼마나 힘들었을지 달래주지 못하고…."

1997년 유은태 씨는 스스로 생을 놓았다. 고문 후유증과 자괴감이 이유였다.

"애들이 셋이나 되니까.…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죽도록 일할 수밖에 없었고… 오늘도 1시까지 일했어요. 저녁에도 또 일하러 나가야 해요."

김영아 씨에게 삶은 전쟁과 같았다. 그렇게 떠난 남편. 그러나 아이들 때문에 이를 악물고 살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다 성장해서 위로 둘은 결혼하고 지금은 막내하고 둘이 살고 있다. 평범했던 한 가정에 닥쳤던 불행의 파도 중에도 그렇게 사람들은 묵묵히 살아냈다.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아빠를 제보하고 경찰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가족을 괴롭혔던 제보자 심양보(가명)는 아직도 그들에게 악마다.

"그때 당시에 누명 쓴 사람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저희 같이 끝까지 죽을 때까지 이렇게 당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경찰들하고 그 놈이 같이 다니면서 괴롭혔어요. 처음엔 그 놈이 경찰인 줄 알았어요. 살인사건… 피해자들 사진… 정말 끔찍해서 볼 수 없는 걸, 책으로 만들어서 저한테 보여줬어요. 니 남편이 이렇게 죽였다. 이걸 인정하면 돈 5000만 원 줘서 너희들은 살게 하겠다… 뭐 이랬는데, 내가 내 남편을 몰라요? 말도 안 되는 소리한다고 쫓아냈죠. 그런데 그놈이 지금도 우리를 이토록 괴롭힐 줄 그때는 몰랐던 거죠."

끝나지 않는 괴롭힘

심양보는 남편 유은태 씨의 죽음 이후에도 가족을 괴롭혔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유은태 씨고, 그의 죽음은 김영아 씨의 독살에 의해서라는 소설을 책으로 냈고 카페를 개설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일이 벌이지고 있는 줄 꿈에도 몰랐었다.

"어느 날 장가간 아들이 책을 들고 온 거예요. 엄마 이게 뭐야… 그러면서 따져 물어요. 그때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들이 엄마를 불신한 거지. 너무 놀라서 애가 손을 벌벌 떨어요… 내가 말을 할 수가 없었어…."

그렇게 말하는 김영아 씨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서러움이 복받친 세월을 어떻게 말로 이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엄마와 아들은 1992년 당시 아빠의 무죄와 국가배상청구를 맡아줬던 김칠준 변호사를 다시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심양보의 책과 카페 글에 대한 출판 등 금지조치와 심양보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되었다. 법원은 이에 대해 피고 심양보의 위자료 지금과 출판물에 대한 출판 금지를 판결하게 되었다.

"그 놈도 너무 나쁜 놈이고… 우리를 이 지경까지 만든 국가가 너무 미워요. 그때 그 경찰관들… 나쁜 놈한테 현혹돼서 같이 우리를 망쳐놨어. 반성도 없어. 우리는 죽거나 말거나 무차별적으로 그런거잖아요. 진정으로 사과라도 받으면 속이라도 편할텐데… 지금까지 우리한테 사과하러 온 사람 단 하나도 없었어요."


▲ 김영아 씨를 인터뷰 중인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다산인권센터



험한 시절이었다고 변명하면 될까

험한 시절이었다고, 변명하면 될 일일까. 김영아 씨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내가 당한 일이 아니었다고 돌아서면 될 일일까. 무능력했고 심지어 우악스러운 국가의 패악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개인들의 고통. 처음 다산이 만들어졌던 90년대 초반의 사건이 20년을 건넌 21세기 초반까지 이어지고 있는 동안… 그 잘난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이 초라한 인권운동은 무엇을 했는가. 사건으로 또는 판결문으로 읽을 수 없는 김영아 씨의 눈물.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이 글을 마치고 알음알음 지인들을 모아 김영아씨와 가족들이 당한 아픔을 치유 받을 수 있는 심리 상담가도 찾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언젠가 유은태 씨의 무덤에 소주한잔도 올려야 하지 않겠나. 김영아 씨가 일한다는 곳에서 따뜻한 식사 한 끼도 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여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사람다운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억울한 삶들이 아직 도처에 있다. 그 눈물 닦아주기 위해 다시 20년의 걸음을 디뎌야 한다. 우리가 20년을 돌아보는 역사 속의 사람 이야기를 그래서 이렇게 시작한다.

■ 글 :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프레시안 원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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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념...과거사(?) 정리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념...과거사(?) 정리

Posted at 2012.10.12 16:12 | Posted in 20주년소식

1992년 8월 30일 한겨레 기사


맞아요. 현재의 다산인권센터는
위 사진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김칠준, 김동균 변호사님이
<다산인권상담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몸무게를 비롯해...(죄송...^^;)
하시는 역할도 많이 변화되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법무법인 다산에서 인권변호사로서의 역할을
계속 하고 계십니다. 



97년 3월 1일자 한겨레 신문에도 당시 새롭게 소장에 취임한 
노정희 판사님의 인터뷰 기사도 실렸네요.
인권상담소가 필요없는 사회 만드는게 소원이셨는데...
아직 그 소원 이루지 못해 안타깝지만...
그래서, 다산인권센터 그리고 인권운동이 더욱 필요한 시대이기도 합니다. 

사진 : 참세상

 
훨칠한 키에 수려한(?)외모로 소싯적에 날렸는지 어쨌는지 확인되진 않지만...^^;
다산인권센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 송원찬.
지금은 복지운동에 헌신(?)하고 계시면서 
다산인권센터 20주년 준비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계신 분이기도 합니다.
(원고 좀 제때 주세요ㅠㅠ)
사진에 보이는 2003년 네이스 반대투쟁 당시 단식투쟁 '8일'만에...
탈진해서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었는데요.

노숙단식농성 이레째 소식 - 송원찬 활동가 탈진으로 쓰러져 중


 
(체력을 기르셔야...^^;)
 
여튼 지금도 틈만나면 뭔가를 꾸미는 '전략가' 이미지로
고민과 활동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사진 : YTN 영상 캡쳐


아..이 분...
(사진에 태클걸지 마셈...^^;)
2005년 8월 3일 모 방송국과 인터뷰하신 분인데요....
상임활동위원으로 나왔네요. 
이 분 모르면 **이라고 할 정도로 오지랖 넒으신 분.
세상의 모든 인권사안은 자기가 다 싸짊어 가야 마음이 편한 분.
덕분에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 쪼...끔...힘들다는 거 빼고...
아...또..가끔 혼자 욕하는 거 빼고...(다 들리거든요...)
아...또...뭐가 있더라...(많은데...) 
여튼 뺄거 빼고 아주 훌륭하신 이 분과 덩달아 유명해진 딸(땅콩)까지.

인권운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이 사람들을 10월 27일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분들 뿐만아니라 다산인권센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땀이 녹아있답니다.
그 사람들을 10월 27일 수원인계동 삼호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안 오시면...
ㅠㅠ...

우리....27일날 꼭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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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너머의 그리움인권너머의 그리움

Posted at 2012.04.30 12:14 | Posted in 단체소개

지구가 무탈하여 다음 세기가 시작될 때 쯤 인류에게 전쟁과 환경파괴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때 우리는 굶주리고 가난한 어떤 이웃의 외로움을 위로해주지 못한, 더 잘살아보겠다고 더 편리해보겠다고 막무가내로 파헤쳐진 자연을 살펴주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전에 사과나무를 심는 각오로 세상을 대면합니다. 인권의 이름으로.

인권이 어떤 원칙주의자들의 한가로운 명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땅에서, 최고 일류가 되기 위해 무한질주하는 숨 막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인권을 "그래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친구"로 삼아도 좋다고 소개합니다.

이미 뒤늦은 맹세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불온하게 살기로, 저항하며 살기로 인권의 이름으로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권너머의 그리움, 여전히 사람에게로... 존엄을 흔드는 절대적인 불행같은 차별도 착취도 억압도 없는 세상을 매일 매순간 꿈꾸는 우리들이 다산인권센터에서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2010년 봄.
흐르는 강마저 두고 보지 않는 이상한 정부가 들어선 세상의 인권지킴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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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3월 이야기마당 안내 <인권운동의 현재와 미래>[3/19] 3월 이야기마당 안내 <인권운동의 현재와 미래>

Posted at 2012.03.14 11:17 | Posted in 공지사항

사진은 오마이뉴스에서 살짝 퍼왔습니다.



2012년, 다산인권센터 이야기마당이 시작됩니다~~~~와~~~~~(호응없음? ㅠㅠ)
올해는 아시다시피 다산인권센터 창립 20주년입니다. 20년의 인권운동을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인권운동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마당을 통해서 쭈~~~~욱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볼 예정입니다.
(다산인권센터 이야기마당은 한달에 한번 진행합니다.)

그 첫번째로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류은숙님을 모시고 <인권운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아주아주 재밌게(?)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인권운동의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인권운동, 무엇을 고민하고 운동으로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류은숙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에...위에 사진에 나와 있는 것 처럼...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인권을 외치다]의 저자이시죠. 인권운동사랑방활동을 거쳐 현재는 '인권연구소 창'에서 활동에 계시는 아주아주 유명한 분이시랍니다. ^^ 말씀은 거침이 없죠...ㅋㅋ

3월 19일(월) 저녁 7시. 다산인권센터 1층, 귀신님이 거주하시는 사랑방에서 진행합니다.
저녁식사가 필요하신 분들께는 다산표 건강식을 6시에 제공해드립니다. 일찍 오실 수 있는 분들은 식사도 함께 하실 수 있다는거. 참가비 없다는 거. 이래도 안오실꺼?

* 찾아오시는 방법 : 일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시고 수원역까지 오시구요. 031-213-2105로 전화주시면 픽업은 못해드려도 설명은 해드릴 수 있다는 거!

* 4월 이야기마당 예고 : 4월달에도 이야기마당은 계속되지요. 4월에는 <노동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손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김혜진 활동가와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조건준 교선부장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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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간사] 희망이 되고 싶었고[종간사] 희망이 되고 싶었고

Posted at 2011.12.27 11:25 | Posted in 격주간 <다산인권>/인권이슈/현장


20세를 맞이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은가요? 그이가 나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고, 그이가 나보다 어릴 수도 있으며 그이가 나와 같은 동갑내기일 수도 있습니다. 눈높이를 떠나서 심장 두근거리는 나이, 20세. 그 앞에 우리는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싶어집니다.

내년이면 다산인권센터가 20세가 됩니다. 웹진다산인권은 1997년 격월간 다산인권으로 시작해, 팩스신문을 거쳐 함께 자라왔습니다. 우리 사회 인권이 숨 쉴 수 없다고 절규하는 현장을 찾았고 대안적인 삶이 보이는 곳도 갔습니다. 차별을 넘어 투사가 된 사람들을 통해 인생을 배워왔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투쟁하고 있는지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많은 순간 부당한 권력에 의해 잡혀가고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들을 보았습니다. 다친 이들을 치료하고 위로할 시간도 없이 또 다른 이들이 쓰러진 현장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분노로 들뜬 심장을 가눌 길 없던 밤도 많았습니다. 무력하기만 한 우리 자신에 대해 허리 꺽이는 좌절을 겪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희망이 되고 싶었고...를 넘는 자기 고백을 하기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2011년 후쿠시마에서 전해져온 핵 재앙의 버섯구름은 편리와 이윤에 길들여진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파국의 이정표였습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혈세를 빌려주면서까지 원전 수주를 국가비지니스의 자랑으로 삼는 정부는 절망의 상징입니다. 탈핵은 야만의 전쟁에서 얻은 교훈이며 세계인의 약속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핵발전소 건립 말고 찾을 것이 없습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져 울부짖는 4대강의 비명이 도처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수 천만 년을 살아온 구럼비 바위의 숨통을 끊는 저들의 군화발아래, 위선적인 녹색성장 포스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종북좌익 세력의 뿌리를 뽑겠다는 검찰총장, 불법과 폭력을 앞세운 ‘떼쓰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법무부장관, 엄동설한에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난사하는 경찰청장, SNS단속으로 표현의 자유를 단속하겠다는 국회의원들. 그들의 야만적 카르텔은 그들만을 위한 공정한 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을 가두고, 정봉주 전 국회의원을 가뒀습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의 칼날로 무고한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왕재산을 비롯한 국가보안법 사건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한 순간에 파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인권을 지켜줘야 할 국가인권위는 스스로 반인권의 선봉장이 되어 있습니다.

열아홉명의 죽음으로 이어진 쌍용자동차, 용역깡패들에게 무자비하게 짓밟힌 유성 노동자들, 엄동설한에도 줄어들지 않는 장기투쟁 농성장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경쟁력과 최대이윤을 이야기하는 자본의 편에 서 있습니다. 양극화의 비극을 이야기하면서도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주권까지 내 주는 한미FTA가 정부여당에 의해 날치기되었습니다. 이런 마당에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는 독재자의 유언이 복지논쟁의 제일 앞에 서 있습니다. 대다수의 삶을 소수의 욕심으로 분탕질하는 1%의 욕망이 대격돌하는 2012년 정치의 계절. 대리되지 않는 직접민주주의 꿈은 어디에서 오고 있습니까.

이집트에서 시작된 쟈스민 혁명의 물결은 세계자본의 심장부 월스트리트에서 꽃피고 있습니다. 타인에 의해 유린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민중의 성난 함성은 한미FTA,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85호 크레인을 향한 희망버스의 눈물, 청소하는 일손을 멈추고 노동자임을 선언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쫄지 않고 말하겠다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기운센 울림들. 희망김장과 희망텐트로 이어지는 연대의 손길. 기어코 주민발의로 통과시킨 서울시학생인권조례의 소중한 성과.

학생인권의 소중한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학교들이 경기도에 생겨나고 있습니다. 3년째를 맞이하는 지역운동포럼은 지역운동의 소중한 성과들을 차곡차곡 저금하고 있습니다. 참여예산을 통해 풀뿌리자치를 만드는 소중한 경험들도 있습니다. 99%를 위한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 화요일마다 수원역에 모여 있습니다. 3년째 촛불을 꺼뜨리지 않은 수원촛불은 200회의 민주주의 실험중입니다. 천포기의 배추만큼 알뜰하게 모아진 손길들이 동산만큼 어마어마한 희망김장을 나누었습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아픔을 와락 안아줄 보금자리도 생겼습니다. 이 모든 것이 희망이라면 아직 더디다, 작다 타박하겠습니까.

우리는 시인의 말대로 희망을 만났으나 과장하지 않았고, 절망을 만났으나 작아지지 않았으며 절망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듯, 희망도 무서워할 줄 알면서 다시 이 길을 나섭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자들의 삶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시르죽어 있는 듯한 열망이 때를 기다려 역사의 굴레를 힘차게 밀어 붙였던 그 힘으로, 인권의 깃발을 들고 나섭니다. 비록 희망이 되고 싶었다는 고백밖에 할 수 없는 미력한 이들이지만 우리 모두 희망이었다는 한 페이지의 기록을 같이 할 수 있다면, 지구가 수억 년의 세월을 돌아 나누었던 한 숨보다 곱절 많은 분노와 눈물을 모두 이곳에 쏟아 부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은 다른 이름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 자신을 이르는 이름입니다.

2011년 12월 26일

 2011년 웹진 다산인권을 마치며 다산인권센터 친구들이 그대들에게 삶과 희망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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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반짝 빛나는 _ 안은정반짝 반짝 빛나는 _ 안은정

Posted at 2011.11.01 14:03 | Posted in 격주간 <다산인권>/한잔의 인권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산인권센터와 인연을 맺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때로는 주변인으로, 자원활동가로 이래저래 발을 걸쳐 놓고 살았습니다. 활동에 고민이 들때는 다산 활동가들의 조언이 큰 힘이 되어주었고, 고민 들었던 부분을 행해야 할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활동,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 다산인권센터가 또 다른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반상근 활동을 시작한지 벌써 얼래벌래 한달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집에 있던 1년이란 시간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네요. 몸도 마음도 다 무뎌져 버려서 한 달이 지난지금도 아직 적응중이랍니다. 앞으로 당분간도 여전히 적응중일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저는 다산인권센터에서 주로 노동파트에 쪽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역 활동가들과 노동인권교육 강사단교육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그간 노동인권교육, 활동들 좀 해왔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지역에서 활동가들과 노동자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풀어낼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거죠..또 다산 안에서 노동인권팀 회의를 하며 노동인권관련 전망 어떻게 만들어가야할지 고민도 나누고 있습니다. 아직 다 시작 단계라 어설프기도 하고, 어떻게 해 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 잘될꺼야’라는 긍정의 힘을 믿고 해보려구요. 

다산인권편집팀에서 ‘빛나는 전망’을 얘기해달라고 했는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빛나는 전망’이 보이지 않네요. 빛나지는 않지만 그냥 꾸준히 고민하는 그런 랄라의 활동이 되자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이 고민들이 빛바랜 이야기들이 되지 않게 고민의 끈을 이어가는게 저의 ‘빛나는 전망’이 아닐까 합니다. 

■ 안은정님은 10월부터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격려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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