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사람] 수원여대 교직원들의 투쟁을 만나다[이슈&사람] 수원여대 교직원들의 투쟁을 만나다

Posted at 2012.12.21 14:00 | Posted in 활동소식/이슈&사람
사실, 나의 대학시절 대부분이 ‘재단비리’에 관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매년 총장실을 점거하고 끌려 나오길 반복했다. 일부 재단측 교수들과 교직원들에게 멱살 잡히고 따귀 맞는 일은 허다했다. 그렇게 싸워도 싸워도 끝나지 않는 싸움이 바로 사립대학 재단비리 투쟁이었다. 경기대학교, 상지대학교와 같이 비리재단을 힘겹게 몰아내는데 성공하더라도 비리를 저지른 자들은 호시탐탐 법과 제도를 악용해 학교로 복귀를 시도하고 결국엔 성공한다. 계절이 바뀌어도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는 곳, 그곳도 학생도 아닌 교직원들이 나서서 재단비리 척결과 민주대학건설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곳, 바로 수원여자대학교(아래 수원여대)다. 

 

끝나지 않는 싸움을 끝내기 위해 나선 교직원

설거지 하다가도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릇을 팽개칠 때가 있다니까요. 몇 년 동안 당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요. 이건 사람으로 대하는 게 아니에요. 집에서 키우는 개, 고양이도 저희보단 좋은 대접 받을꺼에요

수원여대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최미애(가명)씨의 말이다. 최씨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한데, 수년 동안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집에서 아이에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퇴근 후 집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분을 삭이는 일이 자주있다 보니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에 함께 했다고 한다. 

부서장(보직교수)은 저희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아요. 불가능한 업무를 지시하고, 여기에 문제제기하면 징계 받으란 말 밖에 하지 않아요. 총장은 더 했어요. 총장이 수년 동안 직원들에게 한 욕설과 폭언, 협박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안올 정도예요.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증오할 수 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수원여대 현 이재혁 총장은 설립자 이병직의 장남이다. 여느 사립대학과 비슷하게 족벌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학재단 하면 빠지지 않는 각종 비리사건들도 대를 잇고 있다. 설립자의 처이자 전 이사장이었던 최희규, 현 총장이자 장남 이재혁, 전 부학장이자 장녀인 이수경, 현 이사이자 차남인 이진혁 등 모두가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각종 비리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거나 이미 법적 처분을 받았다. 전 이사장 최희규는 대학 건축 공사비를 과다 상계해 업무상 배임 및 횡령혐의로 징역 1년, 현 총장 이재혁은 뇌물수수로 3천만원 벌금, 또한 배임수재 혐의로 재판중이다. 전 부학장 이수경은 업무상 배임, 횡령으로 집행유예 2년, 교비횡령으로 2천만원 벌금에 처해졌고, 전 이사 이진혁은 횡령 혐의로 재판이 진행중이다. 이만하면 ‘용감한 가족’아닌가. 

학교가 너희들 먹고살게 하기 위해 있는 줄 알아?

2009년인가 교직원 회식자리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기획조정실장이었던 현재의 총장이 직원들이 모두 모인 회식자리에서 ”너희 직원들이 모두 그만둬도 상관없다. 지금이 입시철이라도 너희들 다 잘라버릴 수 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더라구요.

이 말을 들은 이상민(가명)씨는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자신이 10년 동안 몸바쳐 일한 학교에서 마치 벌레처럼 취급받아야 하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비리로 얼룩진 족벌재단이 운영하는 학교. 그 학교에서 일하는 교직원들은 그렇게 굴욕과 모욕을 당하며 일해왔다. 뿐만 아니라 각종 비리에 문제제기 했던 직원들을 향해 ‘네 여편네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고 한다. 비리는 폭력을 낳는다. 폭력은 인간을 내면 깊숙이 상처를 낸다.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교직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2010년 7월 14일을 권순봉 지부장은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2003년부터 강제로 5명이 사직을 강요당해 퇴사하고, 2004년부터 일방적으로 연봉계약을 시행했어요. 2009년부터는 아까 말한 설립자 아들의 횡포가 극에 달한 때였여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게 뭐겠어요? 우리가 죽지 않으려면 뭉쳐서 싸울 수 밖에 없었던거에요. 직원들도 그래서 한마음이 된거죠.

학교도 가만있을 리 없다. 2011년 4월 여섯차례의 단체교섭이 결렬된 직후 노조는 파업을 결정하고 학교 곳곳에 현수막을 걸었지만 며칠 되지 않아 그 유명한 ‘CJ시큐리트’가 동원되어 현수막은 모두 강제 철거당했고, 지부장을 포함 조합원들은 고소당하고 징계위에 회부되어야 했다. 이에 맞서 ‘천막농성’에 돌입했으나 이마저도 2012년 5월 17일, 강제철거 당하고 만다. 

조합원 두 명이 천막안에 있었어요. 새벽 1시쯤 됐나? 천막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기에 뛰쳐나갔죠. 그때부터 한 50명 쯤 되는 사람들이 천막을 순식간에 뜯어내더라고요. 저는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 당황했어요. 함께 있던 교직원을 때리는데 저는 겁나기도 하고 상황을 알려야겠기에 수위실로 뛰어 갔는데 아까 말한 그 보직교수가 있더군요. 그때서야 상황파악이 됐죠. 학교가 우리를 아예 버렸구나...

당시 천막에 있었던 이상민씨는 그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 뒤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 심리적 충격으로 상담을 받고 있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도록 남아있다. 지금도 집에서는 현관문 걸쇠를 꼭 잠가야 잠이 온다고 말한다. 아내와의 다툼도 잦아지고, 험한 말도 입에서 자주 나온다고 한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자기도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그 분노와 공포가 가시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용역경비가 학교에 상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는 감옥, 용역경비 비용은 등록금으로 충당

5월부터 학교 행정실에 용역경비원들이 아예 상주를 하더라구요. 우리는 통합행정실이라 교직원들이 모두 그 행정실에서 근무하는데 그 행정실 앞뒤 문에 아예 책상을 차려놓고 출입을 통제했어요. 여직원들 화장실 가는 것도 체크 했다니까요. 얼마나 모욕적이에요. 학교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이정도에요.

권순봉 지부장은 이 말을 하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학교가 아니라 감옥이라고 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야 하고, 모욕적인 말을 일상적으로 들어야 하는 직원들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비용이 모두 학생들이 낸 등록금이라는 것이다. 현재까지 3억 8천만원정도가 용역경비 비용으로 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용역경비 비용 뿐만 아니라 각종 변호사비를 포함하면 정확한 액수조차 확인이 안된다고 한다. 모두가 등록금이란다. 용역경비 비용만 따지더라도 수원여대 한 학기 등록금을 3백만원으로 잡아도 무려 12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는 돈이다. 2년 동안의 투쟁으로 지치기도 많이 지쳤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엔 교과부 감사까지 이끌어 냈다. 그 결과가 지난 11월 20일 발표됐다.



교과부, 수원여대 총장·이사장 해임 요구

그렇게 기다리던 교과부 감사결과 총장은 해임, 이사 8명에 대해 임원취임승인취소와 수사의뢰 등 위법 수위에 따라 해당 직원들에 대해 징계 조치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결국 교직원들이 주장한 모든 비리에 대해 교과부가 확인했고, 응당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끝난게 아니죠. 아마 학교측은 이의신청을 할 것이고, 시간끌기를 계속 하겠죠. 감사결과 나와도 용역들은 그대로에요. 그것만 봐도 학교가 어떻게 나올 것이라는 게 예상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또 파업을 결의했어요. 민주대학 만들기가 쉽지 않지만 끝까지 갈 겁니다.

권순봉 지부장은 자신있다는 표정이다. 그만큼 교직원들은 2년동안 흔들리지 않았다. 이들의 바람은 ‘민주대학’이다. 말은 거창하지만 별거 없다. 인간적으로 대우받고, 비리없는 깨끗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수원여대의 모토는 ‘사회공헌대학’이다. 설립자 가족들과 거기에 부역하는 일부 교수들로 인해 ‘사회민폐대학’의 불명예를 뒤집어 쓴 학교를 말 그대로 ‘사회공헌대학’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래서 이들의 투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 글 : 안병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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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학생인권 죽었니? 살았니?[활동소식] 학생인권 죽었니? 살았니?

Posted at 2012.10.04 18:12 | Posted in 활동소식



오늘, 10월4일, "인권친화적 학교+너머"운동본부 출범식과 함께, 
경기지역에서도 따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10월5일, 경기 학생인권조례 2주년을 하루 앞두고 말이지요~
  


연휴 다음 날이라 그런건지ㅡ 조금 썰렁했지만 
그럼에도 알짜배기 발언, 퍼포먼스 등등 잘 마쳤습니다ㅡ
오늘 참여해주신 분들,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분들께 모두 수고하셨다는 박수를~
  


첫 시작!
학생인권 네트워크가 씩씩하게 출발했습니다.
인권친화적 학교+너머를 꿈꾸며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자회견문 보시면 됩니다요. 

기자회견문



 

아참...
'인권친화적 학교+너머를 만드는 10가지 약속'이 온라인 설문을 통해 정해졌습니다.
약속의 '순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속'이 중요하겠죠? ㅎㅎㅎ
경기도학생인권조례 2년...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손잡고, 토닥이면서 함께 넘어 볼까요~~~
 

“폭력의 교육, 이젠 안녕!”
인권친화적 학교+너머를 만드는 10가지 약속


1. 정답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각자의 답을 찾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309명, 45%) 

2. '다름'이 '틀림'이 되지 않는 교육, 차별없는 세상을 만듭니다. (245명, 35%) 

3. 학생을 '겁주는 교육'이 평생 '겁먹은 시민'을 만듭니다. (165명, 24%) 

4. 어린이와 청소년은 오늘을 사는 시민입니다.(136명, 20%) 

5. 차별에 침묵하는 교육이 폭력에 갇힌 사회를 만듭니다. (137명, 20%) 

6.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워야 책임지는 법도 배웁니다. (131명, 19%) 

7. 두려움 없이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있을 때 자존감도 싹틉니다. (119명, 17%) 

8.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실수할 권리가 있습니다. (118명. 17%) 

9. 민주주의는 식탁과 교실에서 시작됩니다. (96명, 14%) 

10.학생인권과 학생자치, 폭력을 이기는 열쇠입니다. (87명,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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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거부선언"이라는 불복종의 의미 _ 공현"대학입시거부선언"이라는 불복종의 의미 _ 공현

Posted at 2011.11.15 16:36 | Posted in 격주간 <다산인권>/인권이슈/현장


해마다 11월만 되면 모두가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 외치는 구호가 있다. 모두가 그 잔인한 현실을 모르지 않으면서, 마냥 덮어두려는 순간이 있다. 바로 "수능대박"이다. 수능을 비롯한 대입제도는 엄연히 상대평가 시스템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란 이름과 달리, 이 학생이 어떤 능력이 있나 없나를 검증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 수험생들 중에 점수가 몇 번째인지를 보는 방식이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수능에서 내가 대박이 나면 남은 못 보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예컨대, 내가 운 좋게 찍은 게 맞아서 원래 4등급이었을 법한 성적이 3등급이 되었다고 해보자. 그 ‘행운’의 이면에 있는 현실은, 다른 누군가가 3등급에서 4등급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 행운, 정말 기분 좋게 행운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입시경쟁은 결코 "모두가 승리"할 수 없을 뿐더러, "다수가 승리"할 수도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입시에서 승리했다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뿐이다. 이게 무슨 올림픽처럼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소수의 선수들끼리 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거라면 그런 경쟁 시스템도, 어쩌면 용인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건 모든 사람들이 거쳐야 하는 보편적 공교육에 관한 이야기이고, 모든 학생들의 70-80% 이상이 입시에 매어 있는 현실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그게 정당한 거라고도, 좋은 거라고도, 용인하기 어렵다. 시스템이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 여러 '수능거부자'들

사람들의 기억은 휘발성이다. 하루하루 삶에 치어, 쏟아지는 정보들에 묻혀, 많은 것들을 쉽사리 잊고 만다. 오직 그 사건이 마음속에 상처로, 흠집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만 기억이 오래 간다. "수능거부"도 어쩌면 그런 기억의 속성을 드러내주는 사건일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은 최근 몇 년 사이, "수능거부"를 선언하고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혹시 기억하고 있는가?

내가 알기로 가장 오래된, 수능 날에 수능을 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경우는 2002년, 광주에서 《전국중고등학생연합》 활동을 하던 박형준(지금은 박고형준이란 이름을 쓴다.) 씨였다. 물론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1980년대 후반에 '고등학생운동'(고운)을 하던 많은 청소년들이 대학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더랬다. 하지만 그들이 입시제도나 대학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2002년에서 2006년 사이까지는 별다른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2007년부터 대학입시를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발표한 "수능거부"는 계속 이어졌다. 2007년에도 1명, 2008년에도 2명, 2009년에도 2명, 2010년에도…. 2008년 수능거부를 발표했던 김남미(엠건) 씨는 제법 이슈가 되기도 했고, 바로 작년인 2010년에는 한 고등학생이 정부중앙청사 정문에서 "친구를 적으로 만들고 인생을 점수로 매기는 수능을 거부합니다. 12년의 성적경쟁을 끝내며"라는 피켓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1인 시위를 했다. 

사람들은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그들을 한 번 흘끗 보고 혀를 끌끌 차거나 대단한 용기라고 박수를 칠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이면, 아니 며칠 뒤면, 그 사건을 잊을 것이다. 당사자들에게는 커다란 용기였을 선택이, 그 많은 수능거부를 지켜봤던 나로서는 항상 마음의 응어리로 남아 있을 그 모습들이, 잠깐의 가십거리가 되고 만다.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 선언을 두고 사람들은 한편에서는 냉소적으로 한편에서는 비판적으로 "지방대 다니는 학생이 그랬으면 과연 이만큼 주목을 받았을까?"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지방대 다니는 학생"을 말할 때조차도 사라지는 존재들, 바로 그 "수능거부자"들이 떠오른다. 이어서 내 주위의, 나아가 '데이터상'의 수많은 "고졸", "중졸", "초졸"들 역시 떠오른다.
  
'개인의 선택', 그 이상으로 '집단적 운동'

그러다 올해에는 아예 집단적으로 19살, 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을 준비하게 되었다. 11월10일, 전국의 고3들이 수능시험을 치르던 날, 청계광장에서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했다. 93년생(올해 ‘고3’) 청소년활동가 다섯 명의 첫 제안으로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은 시작되었다. 지금의 입시교육에 문제가 있고 그 입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수능을 거부하겠다는 이야기부터, 중등교육과 대학교육, 사회적 불평등과 복지의 문제까지 제기하며 벌이는 운동이다. 개인, 1~2명의 수능거부가 아니라 수십 명,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이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을 지지하는 의미를 담아서 20대 이상, 이미 대학을 가지 않았거나 중간에 그만둔 이들의 '대학거부선언'도 함께 했다. 

지금 대학입시거부선언 운동에는 몇 가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 중 몇 가지, 내가 생각한 중요한 의미들을 꼽아보겠다. 첫째, "일단 대학은 가고 나서"라는 유예 논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지금까지 대학입시나 학벌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일단 대학에 가고 나서" 생각하고 이야기하라는 논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조금만 더 '유예'하라는, 즉 뒤로 미뤄두라는 말로 결국 지금의 교육-사회 구조에 대한 변화를 막고 사람들을 체제로 편입시키는 효과를 냈을 뿐이었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은 그런 유예 논리에 대해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라고 말하며 정면으로 맞서는 목소리이다. 지금의 체제가 우리가 일정한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불복종하고 바꾸라고 요구할 만큼 잘못되어 있다는 당당한 선언이며, 특출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여럿이 공감하고 연대하는 실천이다.

둘째, 말만 무성하고 실천이 부족하던 교육운동에 대한 경종이다. 지금까지 교육운동은 실질적인 조직화와 실천은 부족하면서 정책이니 대안이니 토론회니 하며 말만 무성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온갖 연대체가 만들어지지만 그 연대체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토론회를 하고 가끔 집회를 하는 것뿐, 현장에서의 실천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학교의 여러 억압적인 상황, 많은 이들이 경쟁에 쫓기는 현실, 그리고 교육운동 주체들의 절박성 문제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얽혀 굳어진 문제였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은 그런 상황에서 가장 절박한 주체들인 청소년들이 나서서 자신의 삶으로, 온몸으로 교육 문제를 지적하고 불복종을 실천하는 운동으로서 의미가 있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의 문제의식과 실천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이후에 이어지는 여러 활동들이 교육운동이 힘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새로운 운동 주체들의 형성이다. 대학입시거부선언․대학거부선언을 준비하는 '투명가방끈' 모임에서는, 이후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선언에 참여했던 선언자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후속 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이 네트워크는 학력․학벌 차별의 당사자인 이들이 서로의 삶을 돕고 지지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앞으로 이와 관련된 운동에서 의미 있는 주체가 될 것이다. 물론 선언자들 모두가 이후에 활동가로 살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선언자들은 각자의 삶, 각자 바라는 진로가 있고, 선언 이후에는 이와 같은 운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선언자들 중 일부는 계속 '선언'에 담았던 문제의식을 가지고 활동할 것이며, 이 네트워크 자체도 그러한 활동의 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넷째, '대학중심주의' 사회에서 대학 이외의 다른 길을 드러내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입시경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저항하고 싶어도, 경쟁 사회 속에서 그 뒤에 감내해야 할 불이익 때문에 섣불리 저항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는 "대학입시거부" 같은 강력한 불복종 운동 뿐 아니라 그저 학교에 다니면서 적당히 청소년운동, 대학생운동, 교육운동에 참여하는 수준의 저항에도 해당되는 '장벽'이다. 이 대학입시거부선언․대학거부선언 운동은 이후에 선언자들의 삶을 지지하고 지원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그런 삶의 가능성을 좀 더 공론화시킴으로써 이러한 '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낼 것이다. 사실 이미 사회에는 수십만, 수백만명 이상의 '고졸 이하' 학력자들이 살고 있으나, 그러한 삶이나 그들의 권익에 대한 문제는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한 상태이다. 학력 차별에 대한 연구나 대안적 삶에 대한 실험이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기에, 이 거부선언 운동이 이후 활동은 아주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그런 '대학 외의 대안적 길'을 만드는 데 조금 더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복종선언'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대학입시거부선언․대학거부선언에 참여하는 이들은 참 다양하다. 어떤 이는 성적이 좋고 이른바 '명문대'를 갈 수 있지만 그래도 대학은 나의 길이 아니라며 가지 않고, 어떤 이는 대학 안의 권위적 문화나 취업 학원화된 대학의 현실을 비판하며 그만둔다. 어떤 이는 가정 형편이 빈곤한데 등록금 수 백 만원 수 천 만원을 갖다 바치고 대학에 가야 하는 현실에 부딪혀서 대학을 포기한다. 어떤 이는 입시를 위한 공부를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성적이 안 돼서, 가지 않는다. 이 거부 선언 안에 참여하는 개개인들에게는, 그밖에도 무수히 많은 사연과 배경들이 있다. 어떤 분 말처럼 "거창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한다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신념이나 적성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고, 거창한 이유 없이 그냥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다양한 선택의 배경 속에서도 분명한 공통점은 "대학 안 나오면 온전한 사람 대우 안 해주는 사회", "청소년들에게 다들 대학을 가야 한다고 하는 사회", "생존을 위해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 입시, 취업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사회"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그런 문제의식이 있기에 우리는 선언을 통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낙오자나 부적응자가 아니라 거부자라고. 대학을 못간, 안 간, 그만둔 개개인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지금의 교육과 사회 체제에 잘못이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모여서 목소리를 낼 때 각자의 사정에 의해 대학을 안 가거나 못 간 이들의 선택은 정치적 사건이 되고 사회운동이 되고 거부가 되며 불복종이 된다.

이러한 대학입시거부선언․대학거부선언 운동은, 불복종 운동의 특성상 꽤나 '빡세'다. 어찌 보면, 대학을 안 가거나 그만둘 만한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는 이들만이 거부하고 불복종할 수 있는 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불복종 운동은, 불복종 자체의 의의 뿐 아니라, 그러한 불복종 운동의 문제의식과 그런 불복종을 통해 바꾸고자 하는 것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을 기대하며 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값등록금을 외치며 야간시위를 하고 도로를 점거하는 행위도, 군사주의를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하는 행위도, 단지 그러한 불복종 행위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고, 그 목소리를 많은 사람들이 듣고 손을 잡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시경쟁과 대학서열화, 학력학벌차별, 불안정한 노동 등 우리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동의하면서도 자신의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대학에 가야 하거나 대학에 다니고 있거나 대학을 졸업한 분들에게는 이렇게 부탁드리고 싶다. 이러한 거부를 자신들을 비난하는 걸로 받아들이지 말고, 우리들의 선언에 담긴 문제의식과 메시지에 좀 더 귀를 기울여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대학에 가거나 대학에 다니고 있거나 대학을 졸업했더라도, 얼마든지 함께해주실 수 있으니, 지지와 지원 아니 그 이상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시면 좋겠다. 죄책감씩이나 느낄 필요는 없으니 같이 해주시면 좋겠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이 불만족스러우시다면 그 이상의 다른 운동을 기획하고 제안해주셔도 좋으니까 말이다.

수능 대박의 거짓말, 열심히 노력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에 숨은 불편한 진실, 경쟁 속에 파괴되는 교육과 삶. 그동안 청소년들도 학부모들도 교사들도 노동자들도, 그리고 그밖에 여러 주체들이 그런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운동을 해왔다. 대학입시거부선언 운동이 그런 목소리들을 사회에 공론화시키고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그리고 사회가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여는 '정치적 사건'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운동들이 한 단계 더 도약하고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니, 우리가 그런 정치적 사건이자 계기가 되도록 만들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도록 같이 만들어줄 거라고,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 공현님은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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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게 뭐니? _ 이수정좋아하는 게 뭐니? _ 이수정

Posted at 2011.10.17 13:06 | Posted in 격주간 <다산인권>/한잔의 인권


 한창 대학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던 고등학생 때
“어떤 대학 가고 싶어?”라고 친구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친구들은 대부분 “당연히 서울에 있는 대학이지, 아니면 수도권 쪽에 있는 대학이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기도 전에 이미 좋은 여행은 유럽여행이고, 좋은 직장은 서울의 높은 빌딩 속 전면 유리로 둘러쌓인 사무실이고, 좋은 대학은 in서울이라고 알고 있었다. 고민할 틈도 없이 ‘그냥’ 그렇게 알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다보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선택조건이 있다고 하지만 사회가 원하는 선택지는 따로 있다. 인간은 다 평등하다고 하지만 앞에는 항상‘대학을 나와야, 돈이 많아야, 어른이 되어야’ 이런 수식어들이 붙어 있다. 틀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연히 지켜야만 평범한 삶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 하게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틀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해 보았다. 왜 대학을 꼭 나와야만 하는 걸까? 왜 청소년은 투표권이 없는 걸까? 왜 어른들의 대화에 아이들은 끼어들면 안 되는 걸까? 나는 가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도 틀 안에 갇혀 오래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또 틀 안에 갇혀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도 우연히 완성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내 스스로 부단히 질문하고 답을 만들어 가며 나만의 열매를 맺어 갈 것이다. ‘니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니?’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당하게 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 답을 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이수정님은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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