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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칼럼

[일본에서 부치는 편지③] 기대하거나 놀라거나, Anyway you want.


우린 그녀를 '초미녀 작가'라고 부릅니다. 사실, 그녀의 첫 인사가 그랬다고 우린 주장하지만 그녀는 결단코 자신이 먼저 초미녀 작가라고 소개한적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녀는 지금 일본에 갔습니다. 다산인권센터 매체편집팀장의 임기를 채 마치기도 전에 훌쩍 떠났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녀를 놓아 줄 수 없었기에 이렇게 좌충우돌 초미녀 작가의 일본생활을 <다산인권>을 통해 만나려 합니다. 그녀는 박선희입니다.^^





물이 떨어졌다.

숙취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물통 밑바닥에 간당간당 남아있는 물을 보고 있자니 갈증이 절로 났다. 자면서도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무더위가 보름 넘게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른 새벽 물을 사러 나서면서도 잔뜩 준비를 했다. 챙 넓은 모자, 얇은 티셔츠, 짧은 반바지, 쪼리 까지. 문을 딱 열고 나서는데 어라, 생각보다(그러니까 이것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전적으로 생각보다) 시원했다. 뭐, 이정도면 괜찮군 하고 기분 좋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현관문을 나서기도 전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보인다. 살랑살랑 말고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는 꽃과 나무들을 보니 무지 반가웠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는데 그 불어오던 바람이란, 게다가 슈퍼 가는 길 끝까지 드리워진 그 너그럽던 그늘. 전혀 생각지 못한 바람과 그늘, 바람과 그늘, 바람과 그늘. 순간 ‘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대부분의 것들은 사실 기대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기대했던 일들 혹은 기대하는 것들은 거의 번번이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좌절케 한다. 기다리는 전화는 꼭, 기다릴 때는 걸려오지 않는다. 기다리는데 걸려오면 그건 기다리는 전화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은 우리의 기대를 상당히 야무지게 외면한다. 연락은 예상치 못했던 순간, 의외의 곳에서 전해지고 다소 포기하고 실망하며 긴장의 끈을 내려놓고 있던 우리는 뜻밖의 연락에 당황하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빈번하게 기대에 배신당하고 뜻밖의 순간 행복해하면서도 우리는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다. 왜냐면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그 기대감 자체가 많은 순간 우리의 인생을 지탱해나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이 큰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일이 실현되는 것도 좋지만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 순간을 상상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상당한 시간들을 기분 좋게 보낼 수 있다. 고단한 일상에 ‘기대’마저 없다면 무엇으로 하루를 견디겠는가.
 
그러니 기대하며 살자. 기대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상상을 마음껏 즐기며 살자. 다시 실망하게 될지라도 기대하는 동안만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이것저것 재지 말고 오로지 이루어지기만 할 것처럼 신나게 상상하며 살자. 지금은 지금 뿐, 실망과 후회는 나중의 문제.
 
아니다. 기대 같은 것은 하지 말고 살자. 기대를 하지 않으면 모든 것들은 뜻밖의 것이 되므로 인생은 매순간 행복해질지도 모른다. 매순간 선물을 받는 기분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기대를 거두고 감각을 활짝 열어두며 살자. 인생이 매순간 건네주는 선물을 놓치지 않도록 감각을 활짝 열어두고 살자. 눈도 귀도 살갗도,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활짝 열어두고 살자. 지금은 지금 뿐, 놓치면 사라지는 것.  

전자는 행복한 꿈속에 사는 것이고 후자는 삶을 행복한 꿈처럼 만드는 것이다. 무엇이든 좋다. 어느 것이든 당신이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쪽으로. 중요한 것은 지금의, 네가, 행복한 것.
  
■ 글 : 박선희 (벗바리이자 다산인권센터 일본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