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소식'에 해당되는 글 17건
- [20주년]양보할 수 없는 인권의 가치를 지키며,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2012.11.07
- [20주년] 언론보도 모음 (4) 2012.11.05
- [20주년] 첫 마음으로, 인권운동 하겠습니다. 2012.11.05
- [그때 그사람 ④] 삼성SDI 해고자 김갑수, 강재민 2012.11.01
- [그때 그사람 ③] 권오일 교장을 만나다 2012.10.25
- 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념 인권콘서트 출연진 소개 2012.10.23
- [그때 그사람 ②] "알고있나? 1997, 그들의 삶을…" 2012.10.22
- [그때 그사람 ①] "우리에게 사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12.10.16
- [박여사]그사람 스무살 인권은 즐겁다 (2) 2012.10.14
- 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념...과거사(?) 정리 2012.10.12
[20주년]양보할 수 없는 인권의 가치를 지키며,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20주년]양보할 수 없는 인권의 가치를 지키며,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Posted at 2012. 11. 7. 14:15 | Posted in 20주년소식난다와 다산인권센터의 만남...
우리 모두 인권의 가치를 지키며 살겠다는 약속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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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언론보도 모음[20주년] 언론보도 모음
Posted at 2012. 11. 5. 12:25 | Posted in 20주년소식다산인권센터 20주년 관련 '민망한' 언론보도 모음입니다. ^^
▲ '민망함'의 대표적인 사진^^;. 출처 : 경기일보
[프레시안] "인권엔 양보 없다"…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념 콘서트
[오마이뉴스] "대한문 앞 천막 농성? 20년 전엔 상상못할 일"
[한겨레] 산업재해·국가폭력 맞서 싸운 든든한 ‘인권지킴이’ 성년 되다
[한겨레21] 수원의 인권지킴이, 스무 살 되다
[수원일보] 20주년 맞은 다산인권센터 '인권콘서트'
[경인일보] 인터뷰/수원 다산인권센터 20주년 맞은 김칠준 변호사
[경기일보] '사회적 약자의 등불' 다산인권센터, 20년 발자취
[뉴시스] '약자들의 버팀목' 다산인권센터 출범 20주년
[뉴시스] 인터뷰 /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박진씨
[참세상] 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념 인권콘서트 열려
[프레시안]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탄생 20주년 맞은 다산인권센터
보도해 주신 각 언론사 기자 여러분. 감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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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2012. 11. 5. 10:57 | Posted in 20주년소식사진 : 이상엽
고맙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쏟아져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
생명평화대행진 일정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인 노래와 말씀을 선물해주신
문정현 신부님.
서울 공연일정을 빼면서까지 와주시고 큰 웃음을 주신
옹알스 여러분들.
감동적인 노래와 신명나는 기운을 나눠주신
강허달림, 이한철 밴드.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회를 맡아주시고,
관객분들의 억지스럽지 않은 '다산' 연호를 자연스레 '연출'해주신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님,
뒤풀이 시간까지 그림 그려주시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하신
이동슈 화백님,
그림과 사진으로 도움을 주신
노순택, 이윤엽, 임종길 작가님,
행사 처음부터 끝까지 수화통역을 해주신
김종옥 님,
20년의 역사를 담는 백서발간과 영상제작에 함께해주신
유승하 만화가, 김현주 님,
찾아온 손님여러분들께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해주신
하늬바람님과 친구분들,
그리고 이번 공연을 기획하고 끝까지 함께 해주신
20주년 비대위 여러분.
무엇보다, 없는 시간 쪼개서 짐나르고 공연연습하고 궂은일 맡아주신
자원활동가 여러분...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산인권센터, 20년 전 첫 마음처럼
인권운동 하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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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 ④] 삼성SDI 해고자 김갑수, 강재민[그때 그사람 ④] 삼성SDI 해고자 김갑수, 강재민
Posted at 2012. 11. 1. 15:02 | Posted in 20주년소식/그때 그 사람다산인권센터가 올해로 20주년이 됐다. 10월 27일 인권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한 인권단체의 20년을 추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야만적인 인권현실 앞에서 무엇을 향해 가야 세상이 좀 더 나아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2012년이다. 다산인권센터는 지난 20년이라는 과거를 더듬어 현재 또는 미래를 안아보려 한다. 20년 전 다산인권상담소 시절부터 현재까지 만났던 인권피해자들과 인권의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보려 한다. 단지 기념하거나 추억하기에는 치열하기만 한 현재가 과거를 거울삼아 성큼 한걸음 내딛고 그리고 사실은 위로받기 위해서, 그때 그 사람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인터넷매체 <프레시안>과 함께 한다. <편집자>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 김원효가 외친다. '문제야… 니가 그래서 문제다, 문제야' 김원효의 상대 개그맨 이름이 '문제'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문제를 외친다. '문제야, 저거 봐라 문제야, 그래서 문제다, 문제야'.
▲ 강재민 씨 ⓒ다산인권센터
"해고싸움이 고법에 갔을 때 다산을 만났어요. 그때는 갈 곳이 없어서 다산 사무실에 많이 가 있었어요. 사무실에 있으면서 활동가들과 같이 선전전도 많이 했어요. 그 때부터 다산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 같아요. 2005년도에는 휴대폰 위치추적과 X-file 사건이 터지면서 다산 식구들과 전국 순회 투쟁도 했어요. 창원, 대구, 울산, 구미를 돌면서 삼성 사건에 대해 알리고, 삼성 바로보기 문화제도 함께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엊그제 같은데, 해고 되고 나서는 한동안 천안을 못갔어요. 너무 화가 나고, 힘들어서.. 그게 벌써 12년이나 지났습니다." - 김갑수
"회사에서 퇴사하기 전 모든 걸 잃었어요. 동료도 잃고, 가족도 아프고. 그 당시에는 '내가 (회사를) 나가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 나를 건드리면, 나도 회사에서 했던 행동을 사회적으로 공개했죠. 그 쪽에서 한 번 치면, 나도 한번 때리는 식으로 말이죠. 한번은 회사 간부가 전화 한 것을 녹음해 방송으로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죄가 아무리 미워도 못할 짓을 한 것 같습니다.
그 사람도 가족이 있는 사람일 텐데, 가족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사람이 극단으로 가더라도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 했는데. 지금 들어 후회가 되죠. 그렇게 2년을 싸웠습니다. 사원들이 회사편이 되어서 나를 따돌리고, 고립 시켰습니다. 휴대폰 위치추적 당시 대표이사를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는데, 동료들이 '사장을 고소한 사람은 식당에 들어올 수 없다'고, 점심시간에 식당에도 못 들어가게 하는 정도였죠. 결국 버티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2006년 퇴사했습니다." - 강재민
ⓒ연합뉴스
"현장에서 노조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났죠. 알려진 대로, 해외출장을 보내고, 미행하고, 감시했죠. 99년 3월이던가. 노조설립이 발각 됐어요. 해외로 납치되고 돌아와서 해고무효소송을 했죠. 해고되고 나서도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현장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연락을 했어요. 그 때 위치추적 사건이 터졌죠. 언론에도 '유령의 친구찾기'라는 것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노동조합을 하려는 사람들의 휴대폰에 다 위치 찾기가 등록 되어있는 거예요. 친구맺기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본인도 모르게 동의가 되어 있었던 거죠. 대리점가서 확인해보니까 주변 동료들이 다 친구 찾기가 되어 있더라구요. 범인은 누구인지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었어요. 증거를 확보했어야 하는데, 언론에 먼저 나와서 회사에서 미리 다 손을 써버린 겁니다. 나중에 이 사건은 기소중지 되었죠." - 김갑수
▲ 김갑수 씨 ⓒ다산인권센터
"삼성을 바꾸려면 정치인이 바뀌고, 사회에 바뀌어야 해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역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되는 것 같아요. 역사를 알아야 후손들이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고, 결국에 가서는 확신은 못하겠지만 삼성에 노동조합이 생길거라 생각해요. 그 시점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을 못하지만. 김갑수는 희생자고, 지금도 싸우고 있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누군가 또 그렇게 길거리로 내팽개쳐지거나, 노동조합에 대한 고민을 갖겠죠. 삼성이 해왔던 걸 기록해야 한다고 봐요." - 강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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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2012. 10. 25. 10:26 | Posted in 20주년소식/그때 그 사람다산인권센터가 올해로 20주년이 됐다. 10월 27일 인권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한 인권단체의 20년을 추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야만적인 인권현실 앞에서 무엇을 향해 가야 세상이 좀 더 나아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2012년이다. 다산인권센터는 지난 20년이라는 과거를 더듬어 현재 또는 미래를 안아보려 한다. 20년 전 다산인권상담소 시절부터 현재까지 만났던 인권피해자들과 인권의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보려 한다. 단지 기념하거나 추억하기에는 치열하기만 한 현재가 과거를 거울삼아 성큼 한걸음 내딛고 그리고 사실은 위로받기 위해서, 그때 그 사람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인터넷매체 <프레시안>과 함께 한다. <편집자>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법무법인 다산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다. 평택 에바다 농아원생들이 다산을 향해 오물을 날렸다. 돌도 날렸던 것 같다. 에바다 학교는 청각장애인이 모여 있는 농아학교였다. 비리재단 피해자인 장애인이 재단을 비호하는 상황, 소리 없는 그들의 눈빛이 만만치 않았다. 쉽게 끝날 싸움 같지 않았다. 그런데 싸움이 시작된 지 6년째라고 했다. 그 후로도 1년간 싸움은 계속되었고, 2003년에서야 에바다는 정상화됐다. 싸움의 중심에 섰던 권오일 선생님을 10년 만에 만났다. 그는 현재 에바다 학교 교장이다.
"96년 11월 27일 새벽 5시 농아원생 26명이 농성을 시작했어요. 5분 만에 경찰들이 출동해 전원 연행해 가는데 경찰이 학생 가슴에 권총을 겨누고 세 명이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전쟁 상황이었죠."
"아침에 출근했는데 기숙사 입구 문이 부서져 있고 교실 여기저기선 아이들이 울고 있었어요. 이런 상황인데 학교에서는 이번 일에 나서는 교사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때 학생부장이었는데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죠. 교사가 21명이었는데 두 시간 격론 끝에 11명의 교사가 결의했어요. 파면, 해임 아니 이 정도 비리라면 경찰, 관청 할 것 없이 모두 연관돼 있으니 우리를 그냥 두지 않을 거다, 하지만 평생 양심의 가책을 받고 사는 것 보다 낫다, 법정에 서는 한이 있더라도 당당하게 살자. 그건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교사로서의 양심,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 권오일 에바다 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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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념 인권콘서트 출연진 소개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념 인권콘서트 출연진 소개
Posted at 2012. 10. 23. 16:03 | Posted in 20주년소식10월 27일(토) 오후 5시부터 진행되는
인권콘서트의 빵빵한 출연진을 소개합니다!
■ 옹알스
옹알스가 뭐야?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국내 보다 해외에서 더욱 유명한 분들이라고 합니다.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2년 연속 초대되고 에든버러 페스티벌 쪽에서 TOP 12에 선정되기도 했답니다. 영국 BBC 방송이 극찬한 한류 개그^^<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퍼포디언’ 그룹 ‘옹알스’ (‘퍼포디언’이란 말은 ‘퍼포먼스’와 ‘코미디언’의 합성어). 조수원, 조준우, 최기섭 세 사람이 의기투합한 ‘옹알스는 SBS와 KBS 공채 출신의 개그맨인 이들은, 말 대신 행동과 소리로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어느 날 한 보육시설에 위문공연을 하러 갔는데, 청력 장애가 있거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는 시설이었다고 하네요. 당시 큰 인기를 누리던 개그맨들도 함께 공연했지만, 보육시설의 아이들을 웃기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옹알스가 공연을 시작하자 들리지 않고,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반응을 보였답니다.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대고, 재미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웃음을 주는 데 꼭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고 하는 옹알스. 이 분들 꼭 만나고 싶었는데요, 이번 콘서트에서 만날 수 있답니다.
■ 강허달림
가수 강허달림은 지난 <2009지역운동포럼 in 수원>에서 진행된 콘서트에 초청된바 있습니다. 최근 2집앨범 '넌 나의 바다'를 내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왕따들에게만 인기있는 가수"라 자평하지만 감성적인 블루스음악을 통해 많은 분들이 강허달림의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돕는 ‘이야기 해주세요’ 음반에도 참여하는 등 사회적 활동 역시 꾸준히 해 오면서 이번 다산인권센터 20주년 콘서트에도 출연을 흔쾌히 허락해주셨습니다.
■ 이한철
가수 이한철님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괜찮아 잘될꺼야~'로 시작되는 <슈퍼스타>와 요즘에 나온 <흘러간다> 등 감성을 촉촉히 적시는 노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이한철 님은 가수활동 뿐만 아니라 장애인 관련 행사 등 사회적 약자의 삶도 함께 노래하였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이 가을과 더욱 어울릴 것 같네요.
■ 김칠준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다산인권센터의 전신인 '다산인권상담소'를 만드신 분. 지금도 인권의 현장에서 법률가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현장파 변호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냈고, 이명박 집권 후 국가인권위가 망가지는 상황을 처절히(?) 겪었던 김칠준 변호사님은 다시 법무법인 다산으로 복귀 한 후 변호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20주년 콘서트에서는 직접 편지를 낭송하신다고 하는데...혹자는 재판에서 변호하는 분위기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도....^^
■ 문정현
사진출처 : 민중의소리
문.정.현.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없는 분이죠. 저 허연 수염과 웃음...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시면서 지금도 제주강정마을에서 생명평화를 위한 현장활동을 멈추지 않는 길위의 신부님. 2012생명평화대행진을 하고 계시지만 잠시 짬을 내서 다산인권센터 20주년을 축하해주시러 오신답니다. 물론...축하노래도 해주신다는 소문이...파다합니다...^^
■ 그리고 다산인권센터 사람들
먼 길, 바쁜 길 오셨을 많은 분들께 그냥 보내드리면 안되겠죠? 다산인권센터 상임, 자원활동가들이 준비한 상상을 초월(?)하는 공연도 준비되어 있습니다......라고 하면 너무 기대를 하실려나...^^; 아무튼, 이번 콘서트는 다산인권센터를 사랑해주시는 바로 여러분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우리, 27일날 꼭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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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2012. 10. 22. 14:51 | Posted in 20주년소식/그때 그 사람다산인권센터가 올해로 20주년이 됐다. 10월 27일 인권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한 인권단체의 20년을 추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야만적인 인권현실 앞에서 무엇을 향해 가야 세상이 좀 더 나아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2012년이다. 다산인권센터는 지난 20년이라는 과거를 더듬어 현재 또는 미래를 안아보려 한다. 20년 전 다산인권상담소 시절부터 현재까지 만났던 인권피해자들과 인권의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보려 한다. 단지 기념하거나 추억하기에는 치열하기만 한 현재가 과거를 거울삼아 성큼 한걸음 내딛고 그리고 사실은 위로받기 위해서, 그때 그 사람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인터넷매체 <프레시안>과 함께 한다. <편집자>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인기가 대단했다. HOT를 좋아한 여고생과 그 친구들이 성장기. '응답하라1997'은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들었고, 그 추억은 아련한 과거를 돌아보게 했다. 워크맨과 삐삐의 아날로그 감수성은 지금의 것과는 다른 무엇이었고, 누군가를 사심 없이 좋아했던 그 과거는 기억만으로도 아름다웠을테니까. 나도 바로 그 세대다.
▲ 탁충남 씨. ⓒ다산인권센터
"1996년 노개투 총파업이 있었어요. 노동법 개악안이 날치기 통과 된 것을 회사 가는 버스 안에서 알게 되었어요. 그때 파업을 했어요. 안산지역에 한국 후꼬꾸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덕부진흥과 한국후꼬구는 안산에서 유명한 회사였어요. 노동조합도 탄탄하고, 결속력도 좋았으니까요. 이날 민주노총 파업지침은 11시였는데 우리는 먼저 파업을 했어요. 그만큼 열심히 싸우는 회사였죠. 이것 때문에 97년 2월 결국 해고되긴 했지만요. 그때 해고되고 나서 다산을 만났어요. 다산에서 해고 싸움을 맡아줬는데… 안타깝게도 대법에서 패소했어요. 노개투 총파업 관련 해고는 복직 사례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29살에 익산에서 올라와 덕부진흥에 취직했어요. 남들보다 수완이 좋았는지 잘 보였는지 한 달 반 만에 정규직이 되고. 그길로 노동조합 활동을 했죠. 그러면서 좋은 사람만나 결혼도 했죠. 첫 아이가 태어날 무렵에 해고가 된거죠. 아내는 만삭인데 해고가 돼서 집에 들어갈 수도 없는 거예요. 회사에서 미행하니까. 그때는 미행, 납치, 감금 이런 게 우스웠으니까. 집에 아내 혼자 있는 게 걱정 되는 거예요. 그래서 누가 찾아오면 '영장 제시해라' 요구하라고 미리 귀띔을 해줬죠.
그런데 진짜 경찰이 찾아온 거예요. 아내는 내 얘기만 듣고 '영장 제시해라'라고 하는데 영장이 있어야지. 그때 당시만 해도 노동부랑 경찰이랑 안기부가 다 짜고 일 처리하고 그랬으니까. 아내가 문을 안 열어주니까 만삭인 아내를 집안에 놓고 대문을 발로차고 난리가 아니었나 봐요. 그때 언론에도 이 기사가 실렸죠. 그만큼 잔인했어요."
"해고 싸움하니까 생계가 어렵죠. 아내는 마트에서 일했어요. 명동성당 천막투쟁. 회사 앞 투쟁으로 6개월 동안 집에 못 갔죠. 그때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라는 게 있었어요. IMF 때문에. 나도 어떻게 그게 됐죠. 한 달에 29만 원씩 나오더라구요.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연대하러가서 덕부 해고잡니다 하면 다들 고생많다며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했어요. 벌이도 없고. 투쟁은 해야겠고. 집에 돈도 못 갖다 주는데 손도 못 벌리고. 조합원들이 생계비를 마련해주고, 이렇게 열심히 싸운다고 주변에서 도와줘서 대법원까지 간 거죠. 그때 한창 IMF때고, 저희가 그 즈음 싸움을 했으니까. 언론에서 취재도 많이 나오고 TV에도 많이 나왔어요. 근데 TV에 나온 제목이 '고개숙인 남자' 하면서 정리해고 돼서 그네타고 있는 남자로 나온 거예요.(웃음)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IMF때 정리해고로 한창 시끄러웠으니까."
ⓒ다산인권센터
"97년 2월에 해고되고 대법까지 해고투쟁을 했죠. 그 무렵 덕부진흥이 천안 쪽으로 공장을 이전한다고 했어요. 정리해고 한다는 소문은 돌고 단체협약에서도 이주대책 보상도 못해주고, 직원들도 못 데리고 가고, 현지인을 채용하겠다고 해요. 고용불안 형태를 만들었죠. 그때 노조가 회사 측 문서를 입수했는데 거기에 잔업 거부 시 물량대응방안, 노조 대응에 대한 이론전개 방안, 노동부 및 경찰 등에 대한 협조방안 등 정리해고에 따른 노조반발을 예상해 치밀한 대응계획을 다 세워 놓았더라구요.
천안 공장 이전이후에 순환배치하고, 무급 휴직하는 건 다반사였고, 희망퇴직도 받고…. 그러니 자연 퇴사하는 사람도 늘어났죠. 그렇게 노조를 와해시켰어요. 요즘 문제 되고 있는 노조파괴 시나리오랑 비슷하죠? 이때 이런 것들이 쌓여서 지금 더 치밀한 노조파괴 전략을 세우는 것 같아요. 그때 근처에 한국 후꼬꾸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용역이 상주하고 엄청나게 폭력을 휘둘렀어요. 이런 공포감이 주변 노동조합으로 퍼져나갔죠. 요즘 창조컨설팅에서 노조 와해 하는 거 보면 꼭 옛날이랑 똑같아요."
"그렇다고 회사는 잘 됐을까요? 노동조합 와해시키는 데는 성공했죠. 근데 회사도 망했어요. 나중에는 현대모비스에 흡수되어버렸어요. 요즘 들어 그런 생각도 해요. IMF 이후 대기업들이 중견기업들 다 흡수하고 그랬는데 노동조합 무너뜨리고 하는 게 다 인수하기 쉽게 하려고 한건 아닌지. 최근 창조컨설팅 뭐 이런 거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들더라구요. 그때 이후 법은 계속 개악되고 작은 기업들은 무너지고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그래서 사회자체가 개인적으로 변했죠. 노동자들도 하도 노동자를 천대하니까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게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 글 :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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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 ①] "우리에게 사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때 그사람 ①] "우리에게 사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osted at 2012. 10. 16. 11:32 | Posted in 20주년소식/그때 그 사람다산인권센터가 올해로 20주년이 됐다. 10월 27일 인권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한 인권단체의 20년을 추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야만적인 인권현실 앞에서 무엇을 향해 가야 세상이 좀 더 나아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2012년이다. 다산인권센터는 지난 20년이라는 과거를 더듬어 현재 또는 미래를 안아보려 한다. 20년 전 다산인권상담소 시절부터 현재까지 만났던 인권피해자들과 인권의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보려 한다. 단지 기념하거나 추억하기에는 치열하기만 한 현재가 과거를 거울삼아 성큼 한걸음 내딛고 그리고 사실은 위로받기 위해서, 그때 그 사람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인터넷매체 <프레시안>과 함께한다. <편집자>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제작 노트에 써 있는 글이다. 영화는 경찰들의 눈으로 만났던 살인범에 대한 추억을 되짚고 있다. 정부가 시국사건에 경찰들을 떼로 몰고 다니던 그때 시골마을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한 힘없는 여성들의 비극을 보여주었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영화처럼 현실에서도 진범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1986-1991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반경 2Km 이내에서 6년 동안 10차례의 강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71세 노인에서부터 13세 여중생까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한국사회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컸다. 태안 지서에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도경, 시경의 모든 베테랑 형사들이 투입되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금전 관계나 강도여부, 치정관계 등에 혐의를 두고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 화성연쇄살인사건은 한국 경찰에게 그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미국 FBI처럼 프로파일링(Profiling) 수사도 없었고, 철저한 현장 보존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수사의 노하우도 없었다. 그저 형사들의 사명감과 지구력에 의존한 끊임없는 탐문 수사만이 있을 뿐이었다. 부조리한 시대, 조악한 경찰조직의 말단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끔찍한 사건에 맞닥뜨린 그들에게 기댈 곳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그들이 간절히 원한 것은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유력한 용의자를 검거하고도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늘 기각되고 만다. 180만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고 3천여 명의 용의자가 조사를 받았지만 결국 단 1명의 범인을 잡는데 실패하고 만다.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단추공장 다닐 때 만났어요. 애들 아빠는 2층 섬유공장에 다녔어요. 사장님들끼리 서로 소개해 줬는데… 그때는 뭐 그런 거 있었나요. 그냥 사람 좋아 보이고 그러면 마음잡고 결혼해서 사는 거죠. 26살 때, 그 사람이 한 살 많으니까 27살이었어요. 전쟁 때 아버지 잃고 원호 대상자로 어렵게 살았다고 했어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사람이 듬직하고 좋아서 결혼 했어요."
"처음 화성경찰서에 잡혀갔을 때는 큰 걱정 안했어요. 워낙 소문난 사건이었고 인근에 있는 남자들은 다 조사받기도 하고 그래서.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은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런 믿음이 있었어요. 몇 년 뒤에… 93년이던가…. 범죄와의 전쟁 선포한다고 할 때… 서대문 경찰서에서 사람들이 처음 올 때만 해도… 그때만 해도 이렇게 지금까지… 우리한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 김영아 씨의 남편과 아이들 사진. ⓒ다산인권센터
"뭐라고 해도 믿지 못 할 거예요. 그 3일 이후 애들 아빠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닫혀있는 방문을 보고도 문을 꼭 잠그라고 했어요. 경찰들이 또 아빠 잡으러 온다, 문 잠궈라… 삶에 대한 애착 이런 게 다 없어졌어요. 회사도 다니지 않았고… 애들은 아직 초등학교 다니고 있었는데… 단칸방에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고문 받고 와서는 일도 안하고 술로 버텼어요. 그렇게 견디다 못해 자살한 거지…."
"본인도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저도 속이 상해서 술만 먹지 말고 이겨냈으면 했는데… 신랑 원망도 많이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나라도 못살겠다 싶어요… 애들도 다 어렸을 때라… 한없이 불쌍하죠…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랬을까… 그걸 달래주고, 치료해주고… 요즘 같기만 했어도, 그렇게 도와줄 수 있었을텐데…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우린 아무것도 몰랐어요. 험한 일 당해서 국가배상해서 위자료를 받았지만 그걸로 우리 생활이 보상되는 건 아니었어요. 얼마나 힘들었을지 달래주지 못하고…."
"애들이 셋이나 되니까.…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죽도록 일할 수밖에 없었고… 오늘도 1시까지 일했어요. 저녁에도 또 일하러 나가야 해요."
"그때 당시에 누명 쓴 사람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저희 같이 끝까지 죽을 때까지 이렇게 당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경찰들하고 그 놈이 같이 다니면서 괴롭혔어요. 처음엔 그 놈이 경찰인 줄 알았어요. 살인사건… 피해자들 사진… 정말 끔찍해서 볼 수 없는 걸, 책으로 만들어서 저한테 보여줬어요. 니 남편이 이렇게 죽였다. 이걸 인정하면 돈 5000만 원 줘서 너희들은 살게 하겠다… 뭐 이랬는데, 내가 내 남편을 몰라요? 말도 안 되는 소리한다고 쫓아냈죠. 그런데 그놈이 지금도 우리를 이토록 괴롭힐 줄 그때는 몰랐던 거죠."
"어느 날 장가간 아들이 책을 들고 온 거예요. 엄마 이게 뭐야… 그러면서 따져 물어요. 그때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들이 엄마를 불신한 거지. 너무 놀라서 애가 손을 벌벌 떨어요… 내가 말을 할 수가 없었어…."
"그 놈도 너무 나쁜 놈이고… 우리를 이 지경까지 만든 국가가 너무 미워요. 그때 그 경찰관들… 나쁜 놈한테 현혹돼서 같이 우리를 망쳐놨어. 반성도 없어. 우리는 죽거나 말거나 무차별적으로 그런거잖아요. 진정으로 사과라도 받으면 속이라도 편할텐데… 지금까지 우리한테 사과하러 온 사람 단 하나도 없었어요."
▲ 김영아 씨를 인터뷰 중인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다산인권센터
■ 글 :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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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2012. 10. 14. 22:14 | Posted in 20주년소식초코파이 무서워요. ^^ 꼭 오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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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념...과거사(?) 정리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념...과거사(?) 정리
Posted at 2012. 10. 12. 16:12 | Posted in 20주년소식1992년 8월 30일 한겨레 기사
<다산인권상담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어요.
하시는 역할도 많이 변화되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법무법인 다산에서 인권변호사로서의 역할을
계속 하고 계십니다.
사진 : 참세상
(원고 좀 제때 주세요ㅠㅠ)
노숙단식농성 이레째 소식 - 송원찬 활동가 탈진으로 쓰러져 중
(체력을 기르셔야...^^;)
고민과 활동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사진 : YTN 영상 캡쳐
(사진에 태클걸지 마셈...^^;)
인권운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이 사람들을 10월 27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안 오시면...
ㅠㅠ...
우리....27일날 꼭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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