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으로 보는 세상] 선거 참여,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다름으로 보는 세상] 선거 참여,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

Posted at 2012. 4. 17. 15:14 | Posted in 격주간 <다산인권>/다름으로 보는 세상




4년마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끝났다. 한숨 소리도 나오고, 이것 밖에 안되는가 하는 목멘 소리도 들리고, 그리고 또 4년을 기약하기도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의 최종 투표율을 잠정적으로 54.3%라고 발표하였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투표율인 54.5%와 비슷하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의 46.1%보다는 많이 높았다고 하나,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의 60.6%보다는 낮았다. 수원지역에는 총 네개의 선거구가 있었는데, 각각의 투표율은 전국의 그것보다 조금 많거나 작았다. 수원갑(장안)이 55.1%, 수원을(권선)이 51.2%, 수원병(팔달)이 49.6%, 그리고 수원정(영통)이 56.7%였다.  

전국적으로나 수원지역으로나 50% 을 조금 상회하는 투표율이다. 즉, 대략 두명 중 한명의 국민 또는 수원시민이 투표에 참가하였다는 것이다. 당선된 국회의원 개개인이 받은 득표율의 의미는 더 낮아진다. 50%의 투표율 중 51%을 받고 당선되었다고 할 때, 단순한 산술적 계산으로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4명 중 1명—정확하게는 1.1명이 되겠지만—의 유권자로부터 지지를 받은 것이다. 1명은 반대했고, 그리고 나머지 두명은 투표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런 단순한 산술적 계산을 떠 올리는 것은 선거 참여의 중요성 때문이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즉, 선거를 통해 국민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낮은 투표율은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민주주의 실현이나 그 과정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투표가 매우 중요하다.      

더구나, 그런 투표권—또는 보통선거—을 쟁취하기 위하여 지난 몇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투쟁해 왔다. 2010년도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지식채널e>가 투표권에 관련된 그러한 역사적 노력과 희생들 중 몇 개의 사례들을 모아 보여주었다. 아래에 나오는 사건들과 숫자들은 그 해 5월 24일에 방영된 <지식채널e>의 ‘38,841,909명’에 소개된 것이다. 



1848년 프랑스에서는 170명중 1명만이 투표할 수 있었는데, 그 해에 일어난 혁명으로 처음으로 보통선거권—여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을 가지게 되었다. 1913년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이 ‘여성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외치며 경마 경기 도중에 왕실 소유의 말 앞에 뛰어들어서 나흘 뒤에 죽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국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을 때인1928년은 최초의 선거법 개정으로부터 90년이 지난 후였다. 1965년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의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캠페인에서 흑인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은 경찰의 폭력에 맞서며 87km라는 거리를 행진해야만 했다. 현재의 우리는 일정한 이상의 나이가 되면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90년 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87km를 걷지 않아도, 그리고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된다는 자막과 함께 선거 참여를 홍보하면서 보여준 38,841,909명이라는 총 유권자의 숫자. 

그 유권자의 숫자는 투표권의 쟁취만큼 유권자 개개인의 실천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린다. 유권자가 참가하는 선거는 국민을 대변하는 대표를 선출할뿐만 아니라,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반영한다. 이번 선거에 즈음하여 등장한 사건들이나 정책들은 지난 몇년 동안 계속 논쟁이 되어 온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민간인 불법사찰, 한미FTA, 4대강, 언론장악, 정리해고, 민생경제, 복지사회, 무상급식 등은 선거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쟁점들이었다. 사실, 이러한 쟁점들은 아주 밀접하게 또는 상당한 정도로 인권과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면, 불법사찰은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언론장악은 의사표현 및 언론의 자유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미FTA와 정리해고나 경제와 관련된 정책들은 최소한의 삶의 유지권, 노동할 권리, 양호한 노동조건 등과 연관되어 있으며, 무상급식과 복지사회는 어린이/청소년의 보호와 지원 그리고 보건/의료 권리 등을 실현하는데 중요한 정책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쟁점들보다는 공천 잡음, 선심성 개발정책—예를 들면, 평창동계올림픽, 지역성 등과 같은 이슈들이 선거 도중에 더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투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기사들이 많이 보인다. 이러한 분석은 결국 선거가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쟁점이나 정책들보다 지엽적이고 일회성의 선거 전략적 이슈에 의해 종종 좌지우지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그러한 선거전략에 밀려 인권과 관련된 쟁점이나 정책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권 그 자체에 대한 관심도 선거 도중에 낮아지거나 아예 사라지는 현상이 생긴다.     

한편으로는 낮은 선거 참여도 걱정거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인권과 관련된 쟁점이나 정책들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감이 더 앞선다. 올해 말에 있을 대통령선거에서는 투표율이 아주 높아지기를 기대하며, 그리고 인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인권과 관련된 정책들이 이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참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식채널e>의 ‘38,841,909명,’ 2010년 5월 24일 방영  
■ 글 : 이광훈(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입니다.) 
■ 사진 : 오렌지가좋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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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으로 보는 세상] 세계 여성의 날과 성평등[다름으로 보는 세상] 세계 여성의 날과 성평등

Posted at 2012. 3. 20. 17:05 | Posted in 격주간 <다산인권>/다름으로 보는 세상

세계 여성의 날과 성평등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하루 전인 3월 7일 수원시에 있는 여성단체들은 수원역 남쪽 광장에서 ‘제8회 경기여성한마당’을 열어 이 날을 기념하였다. 그 행사는 경기여성연대, 경기여성단체연합, 경기자주여성연대, 전국여성노동조합경기지부, 민주노총경기본부 여성위원회, 및 한국노총경기지역본부 여성위원회가 주최했고, 문화공연, 여성정책 요구, 및 선언서 낭독이 있었다. 게다가, 이 날의 행사는 제222차 수원촛불,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의 선전전 및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 물려주기 같은 다채로운 연대 행사들이 함께 열렸다.   
 
전국적으로도 기념행사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행사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한 ‘올해의 성평등 디딤돌’과 ‘걸림돌’ 그리고 ‘여성운동상’ 선정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작년 한해 동안 성평등에 도움이 된 개인이나 단체에 ‘성평등 디딤돌’을 수상했는데, 올해는 한 분의 여성노동자와 두 단체가 선정되었다. 먼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작은꽃'(가명)님이 디딤돌 수상자가 되었는데, 작은꽃님은 직장내에서의 성희롱 사건을 공론화하고, 부당한 해고에 맞서 투쟁하여, 결국 원직 복직과 가해자 해고, 재발방지 대책수립 등 합의를 얻어냈단다. 두번째 디딤돌 수상자는 공공노조 서경지부 홍익대분회였다. 홍익대의 청소 노동자들—대부분 여성노동자—이 갑작스러운 계약해지 사태를 맞아서, 농성과 투쟁으로서 전원 고용을 달성했으며, 또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지막 수상자로 선정된 고려대 반성폭력연대회의는 같은 학교 의대생이 동기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한 사건에 대응하여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학내에서 변화시키고자 노력해왔다. 또, 올해의 여성운동상에는 전국민간서비스산업연맹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가 선정되었다. 대부분의 노조원들과 간부들이 여성인 재능교육지부는 4년 이상 농성을 하고 있으며, 특수고용노동직의 부당한 노동실태를 알리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이에 반해, 대전지방법원 가정지원의 나상훈 판사는 지적장애 여중생을 성폭행한 고등학생들에게 가중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판결하여 성폭력 범죄를 묵인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성평등 걸림돌의 수상자가 되었다. 두번째 성평등 걸림돌의 수상자는 포항남부경찰서였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8명의 여성이 자살을 했는데, 포항남부경찰서는 이 사건들을 숨기려거나 날조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유흥업주들의 불법행위를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것이 결국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의원을 두둔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제명안에 무기명 비밀투표로 반대한 134명 국회의원이 마지막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되었다.  
 
어떤 지역이 성평등 걸림돌에 선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상에 선정된다는 것은 수상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역에게도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즉, 그 상은 그 지역의 여성 처우가 타지역보다 열악하며 그리고 개선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성평등 디딤돌이나 여성운동상 수상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 상들이 지역의 성평등을 고양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 이면에는 그 지역에서 성차별이나 성희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수원에서는 그 누구도 또는 단체도 수상자로 선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상자가 없다고 해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성희롱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느 지역이든 성평등에 대한 문제는 있다. 예를 들면, 수원시민신문의 임이화기자는 수원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에서 2011년 한해 동안 했던 상담사례의 분석결과에 대한 기사를 썼다. 그 기사에 따르면, 2010년에 478건의 상담사례가 있었던 것에 비해, 2011년에는 30.5% 증가한 624건의 상담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산전후 휴가나 육아휴직 같은 모성보호관련 상담이 50.6%였는데, 이것은 임신, 출산 및 육아 때문에 여성들이 직장생활에서 불평등 또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성희롱과 성차별에 관련된 상담도 23.4%였다고 한다. 더구나, 괴롭힘과 해고 등을 당할 수 있기 떄문에,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기를 꺼려해 정신적 및 신체적 고통이 심각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례들은 직장내에서 성평등이 여전히 요원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언제라도 수원에서 성평등 걸림돌이나 디딤돌 수상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성평등 디딤돌이나 걸림돌, 또 여성운동상에 대상자가 없다는 소식을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또, 그러한 대상자가 수원에는 없다고 확신할 날은 언제나 될까? 그 날을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 글 : 이광훈(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입니다.) 
■ 사진 : <경기자주여성연대>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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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겨울나무 같던 그에게 - 동서공업 해고자 황영수 이야기[인터뷰] 겨울나무 같던 그에게 - 동서공업 해고자 황영수 이야기

Posted at 2012. 3. 8. 13:36 | Posted in 격주간 <다산인권>/다름으로 보는 세상
겨울나무 같던 그에게
동서공업 해고자 황영수 이야기

박진




건조하다는 건, 이런 느낌이다. 안산 반월공단에 들어서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무언가 손아귀 안에서 바스락거리면서 부서져 버리는 느낌. 작고 큰 건물 사이에 언뜻 보이는 사람, 차... 공장에서 들고 나는 거대한 물류...모두 추위를 비켜,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동서공업 해고자 황영수 그를 만나 이야기하는 내내 손가락 끝과 혀끝이 계속 버석거렸다. 해고가 오래된 이의 지나온 삶. 그런 것들이라면 짐작되는 여러 가지 신파 섞인 사연이 몇 번의 흔들림이나 분노, 급기야 서러움으로 진열될 법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는 마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마르코 폴로씨가 몇 년간 겪은 일을 들려주듯이 표정도 말투도 또박또박 지나치게 객관적이었다. 아, 그렇구나 이 건조함의 정체.

“우리가 잘 아는 현대, 기아에 중요부품을 납품하는 유성그룹이라는, 아...얼마 전 주야 이교대제 요구하는 노동조합 파괴하려고, 용역동원해서 별짓 다한 그 곳? 그렇습니다. 유성기업의 회장 둘째 아들이 경영하는 곳이 동서공업입니다. 그럼 아버지, 아들 모두 노조탄압...그것도 유전인가 보네요?”

그 동서공업에 2003년 입사했다. 구리 용해하는 회사를 다니다가 여기로 왔다. 그리고 2009년 해고되기 전까지 노조 대의원 3번 해본 것 외에 노동조합 활동 열심히 못했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집안에 아픈 분이 너무 많았다. 어머니는 암투병하다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쓰러지셨다. 그가 감당해야할 병원비가 너무 많았다. 다른데 눈 돌릴 틈이 없었다. 그때 생긴 마음 빚인지, 별로 열심히 노조 하지도 않았던 그만, 정작 홀로 남아 해고투쟁중이다.

“해고되고 나서 현장에서 조금만 더 동료들과 역할을 했었더라면...지금의 나보다, 지금의 현장보다 낫지 않았을까...생각하게 됩니다. 집안에 발목 잡힌 상황만 아니었으면, 민주적 집행부가 들어섰을 때, 그때...” 그가 말하는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난 일은 해고된 2008년보다 한참 전인 2005년부터 구술되었다. 노조를 바꿔보려고 시작된 당시의 노력이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한 그때, 만약 제대로 내가 힘만 보탤 수 있었어도 2008년의 직장폐쇄와 2009년의 정리해고를 막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그는 분명히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회사가 노동자들의 마음을 이리 찢고 저리 찢으며 장난질 칠 때, 그토록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을 그는 얼마나 오래 곱씹어 생각했을까.

회사는 다, 그래야 하는 것일까.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자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민주노조의 싹을 자르고 노사합의 없는 일방적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의 목숨을 끊는 그들의 방식은 공식대로 비열했다. 해고회피 노력을 다했다는 시늉을 하기 위해서 해고자들중 12명에게 인원충원의 기회를 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때의 기억도 그는 아프다. “안될줄 뻔히 알면서도 저도 재고용 면접을 봤습니다. 그렇게 그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이라도 모두 하고, 나오고 싶었어요.”

다행히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해고 1000일을 넘는 지금, 고등법원에서도 2심까지 승소했다. 작년 7월. 그때 그는 정말 기뻤다. 2심까지 이겼으면 해고무효소송은 대법원에 가도 바뀔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혼자 남아 있지만, 대법원까지 끝나고 나면 함께 공장으로 돌아갈 그 동지들이 돌아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회사는 이런 와중에도 치사하게 나왔다.

“경제적으로 어렵죠. 그래서 2심 승소하고 밀린 임금을 지급받으면 숨통이 트이니까...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그 돈을 법원에 공탁해 버리더군요. 마지막까지 못살게 굴겠다는 겁니다.” 당기 순이익 70억을 넘는 회사는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지급되어야할 임금을, 이자까지 쳐서 주지는 못할망정 해고노동자 괴롭히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못됐다, 그놈들. 돈도 그토록 많은 놈들이.”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이럴 때 묻는 못된 질문이 있다. “그런데, 왜 싸우고 있는 거지요?” 미안하지만... 그냥 더럽다 생각하고 다른데 가면 되지 않아요? 아버지도 여전히 아프시고, 새롭게 만난 부인과 알콩달콩 살려면 여기서 싸우는 것보다 더 나은 길이 왜 없겠어요? 라는 훈계가 밑바닥에 깔린 그런 질문. 그걸 했다. 그때 마르코 폴로씨는 처음으로 급격히 흔들렸다. 그리고 날것대로 훅 뱉은 그의 말. “갈 데가 없어요.”

황영수씨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서 떠나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그렇게 그의 대답은 끝났다. 그런데 짧은 대답은 너무 많은 말들을 담고 있어서 귀로 들리지 않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마음속으로 쏟아졌다. 간과 위랑 비장까지 후두둑 떨렸다. 갈 곳이 없다는데, 여기서 떠나서 어디로 가야겠냐고 묻는데. 그 외의 무슨 이유가 더 필요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잔인했던 질문을 보충하는 답변을, 듣고 있는 나에게? 아니 자기 자신에게 후렴처럼 되풀이 변주했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꺼예요. 왜 싸우고 있는지, 왜 그래야하는지...그래요. 그걸 대답하기가, 그걸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아요. 이유가 없어 보이니까...그런데 나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부당하게 짤렸습니다, 이렇게 얘기한다고 이해할 수 없을테니까. 함께 했던 해고자들도 모두 이해시키지 못하는데...” 그날 인터뷰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새벽1시경 “갈데가 없어요.”라고 말하던 그의 눈동자가, 입술 근육이나 성대에서의 울림이 아니라 눈동자에서 쏟아진 말을 기억하고 후두둑 눈물 흘렸다. 마치 삼백년쯤 전에 만들어져, 십년에 한 번씩만 울리는 거대한 종탑의 둔중한 타종처럼 그렇게 가슴도 둥둥거렸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맞다. 노동자들이 왜 싸우고 있는지. 김진숙씨가 85호크레인 위에서 겨울과 봄, 가을과 여름 지나 또 다른 겨울을 맞을 때까지 삶과 죽음의 멀미를 왜 감당하는지. 노동자들이 단지에서 흐르는 피로 노동해방을 쓰고, 목을 매거나 약을 먹거나 자기 몸에 불을 붙이는지. 그깟 일자리가 뭐라고. 그만두고 털고,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찾으면 되는 것을. 그런데 마르코 폴로처럼 말하는 동서공업 해고자 황영수씨의 말대로, 이유는 설명되기보다 보여지는 것이다. 그 언어가 ‘해방’ 또는 ‘존재’ 또는 ‘계급’ 또는 ‘혁명’같은 어마어마한 단어들로 구성되지 않아도 말이다. 그냥 내가 노동자니까, 여기서 쫓겨났을 때, 함께 거리로 내 몰려 버린 나를 찾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

집회 장소에서 종종 노래를 부른다는 그는, 가수다. 해고 된 후, 직장인 밴드를 하는 지인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장르가 다양해요. 대중가요 중심으로 하는데, 이용석 가요제가서 우유배달 황씨라는 노래 창작해서 상도 받았어요. 연영석씨 노래 간절히...이런거, 잘할 수 있는 거 쉬운 거...이런 걸 주로 불러요. 저는 혼자 많이 다녀요. 직장인밴드라 다들 같이 다니기 어렵고, 해고자 신분이라 좀 자유롭고...노래하면서 동서공업 이야기도 하고 다니고...그래요.”라고 말할 때 그는 웃었다. 이것도 마르코 폴로씨는 아니다. 황영수씨. 노래하는 노동자. 노래할 때 행복한 남자, 황영수씨. 그가 이 글을 읽을 것이 뻔하기에 쓴다. “참 노래가 고마워요. 동지를 웃게 하잖아요? 절대 노래를 놓지 마세요. 노래로 당신과 같은 이들에게 절망하지 말아야할 이유들을 꼭 알려주세요.”

회사 사진과 그를 함께 담기 위해 찾아간 동서공업. 그 곳에서 옛 동료를 만난 그는 반갑게 포옹을 했다. 그런데 후에 알게 된 사실. 그날 그와 악수했다는 죄로 동료는 잔업, 특근을 못하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당분간 연장근로를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이런 글이 남겨졌다. “형님은 크게 신경쓰지 말라하신다. 이참에 좀 쉬지 하시면서 오히려 날 더 걱정해주신다... 난 '형님 저 괜찮으니 공장 앞에서 출근 투쟁할 때 마주치면 눈 인사만 합시다' 형 맘은 충분히 알고 있기에... 그래도 갈 길은 가야하기에...”

버석거리는 것은 황영수씨가 아니었다. 황량한 공장 건물들 사이로 주야 맞교대, 야근, 철야, 연장을 뛰면서 유령처럼 흔들리는 노동자, 그들. 그리고 해고된 동료를 따뜻하게 안아준 선배에게 야박한 연장근로, 특근떼서 돈 몇 푼으로 존엄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본. 마침내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고 있기만 한, 노동과 이를 이용하고 쥐어짜는 자본의 건조함이 반월공단을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시종일관 묵묵했던 황영수씨는 사실 가장 뜨거운 사람이었다. 내가 왜 사람인지, 이윤으로 설득되지 않는, 지나가는 사람 모두 붙잡고 물어봐도 고개 저을 ‘갈데가 없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만으로도 1000일의 고난을 단단히 버틴 것은 그의 뜨거움때문이었다. “제가 마지막에 있던 곳이 용해작업하는 곳이예요. 알루미늄 들어오면 700도에서 녹여요. 그 뻘건 물을 받아서 주물에 넣으면...위험해요. 그게 잘못 튀면 옷에 구멍이 나요. 그때 생각이 많이 나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면 용해를 하고 싶다, 그런 생각해요.”그리고 또 그는 웃었다. 그를 웃게 한, 노래와 노동. 돌려줘야 하지 않겠나. 마땅히 그가 거처해야할 그곳으로 그는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겨울나무는 마른 잎 하나 남기지 않고 앙상하게 서 있다. 풍성했던 여름, 붉은 비단같았던 가을, 다시 올 그 모든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하지만 기실 겨울나무는 그 안에 머금은 생명, 앙상한 가지 끝에 한 숨 한 숨 매달린 겨울, 그 시간을 함께 지내는 중이다. 최선을 다해 가파른 바람을 품고, 가지를 꺾는 눈의 가혹함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그 모습 그대로 나무인, 겨울나무. 투쟁하기 때문에 이미 생명인 그대, 겨울나무. 

<이 글은 장기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람꽃을 만나다, 기획중의 인터뷰입니다. 이글은 다른 인터뷰들과 함께 곧 책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 박진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1.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ㅠ 부당해고란 네 글자가 정말 크다는 것 알게됩니다..
  2. 고고
    결국 대법원 판결은 회사의 승리 .....
    부당해고가 아니라는걸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장기투쟁은 일억천금을 노린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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