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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구)웹진_<다산인권>

때려야 한다고 한 당신, 틀렸습니다 _ 김경미

전국 최초로 제정된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10월 5일이면 1주년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 흐름은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학생인권조례제정 운동에 급물살을 타게 했다. 경기도의 변화가 다른 지역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1년 동안 학교가 변했을까. 변했다면 얼마나 변했을까. 부족하다면 무엇이 더 바뀌어야 할까 찾아봐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그동안 무엇이 변했을까? 학생들의 겉모습을 포함해서 많은 것이 변했다고 말하는 반면 여전히 학생인권조례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특히 학생들이 그렇다. 학생인권의 신호는 아직은 약하기만 하다. 어떤 점이 변했는지 좀 더 꼼꼼히 살펴보자.

첫째, 학교가 체질을 바꾸고 있다. 그동안 몸에 안 좋다는 것을 알고도 습관적으로 먹어왔던 것을 과감히 버리고 인권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아직은 힘들고 낯설지만 조금씩 건강한 학교로 체질을 개선 중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후 <조선일보> 등 일부 신문이 한 교원단체의 자료를 바탕으로 '체벌 갈등의 원인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는 식의 기사를 보도했다.

보도 후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와 교권보호헌장 시행 100일(지난 6월 27일)을 맞아 공개한 조사 자료(대상: 중고교생 2736명, 교사 3778명, 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학생 ±1.86%, 교사 ±1.54%) 결과를 보면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학교와 본인에게 나타난 변화가 어느 정도인가'를 묻는 물음에 '체벌 문제로 선생님과 갈등 상황이 줄었다'고 답한 학생은 82.2%였다. 교사도 64.8%가 '그렇다'고 답했다. 두발 문제나 핸드폰 문제로도 과거보다는 갈등이 줄었다고 답한 학생들이 많았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나는 행복해졌다'고 '학생인권조례는 앞으로 잘 정착될 것이다'고 보는 응답도 학생 84.6%, 교사 70.7%였다. 1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조금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학생인권조례로 학교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로 학교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둘째, 학생인권 정착을 위한 여러 제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조사하고 각 학교에 시정조치 권고를 내릴 수 있는 학생인권옹호관이 있다. 경기도학생인권 옹호관은 현재 3명으로 3권역별로 나누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참여위원회와 학생인권심의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학생참여위원회는 경기지역 초·중·고 학생 중 학생인권정책과 활동에 관심 있는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추첨을 통해 100명을 선발하는데 1년 동안 활동할 수 있다. 학생인권심의위원회는 경기도 교육청의 학생인권 정책계획을 심의하고 평가하는 위원회다. 현재 학생인권옹호관을 포함하여 경기도지역에 학생인권 고민을 함께하는 20명의 학생인권심의위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초반에 이 제도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경기도 교육청의 미흡한 태도에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이 있었다. 제도를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제도를 만드는 과정이나 내용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하나의 요식행위로 그치는 위원회는 필요 없다. 이 제도에 대한 경기도 교육청의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은 학생인권 정착에 반드시 필요하다.



'인권'이란 말이 들어갔다고 해서, 모두 '인권교육'은 아니다

셋째, 인권교육을 통한 인권문화 형성이다. 1년 동안 활동의 반 이상을 인권교육으로 보냈다. 평균 한 달에 3번 이상은 학교 현장에 인권교육을 나갔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전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이 늘었다. 제도화에 대한 힘을 느끼는 반면 학생인권교육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의뢰가 들어 온 교육을 보면 대부분이 1시간의 1회성 교육이다. 그것도 몇 백 명이 넘는 학생을 강당에 몰아넣고 전체적으로 해달라는 요구이거나 방송을 통해 설명하는 1회성 교육으로 하자는 것이다.

어쩌다 한번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는 인권교육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 고민이 들면서 나름 교육에 대한 원칙을 세웠다. 인권이라는 말이 들어간 교육이 모두 인권교육이 아니란 거다. 인권교육은 그 내용도 형식도 환경도 인권적이어야 한다. 1년 동안 그런 인권교육을 왜 할 수 없는지 이야기를 하니 요즘은 그래도 변한 광경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외부에서 인권교육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문제는 학생들과 일상적으로 만나는 교사들이 어떤 마음인지가 중요하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처음으로 아주대 교육대학원에서 인권교사 직무연수를 개최하였다. 그 직무연수에 함께 참여하면서 보고 느꼈다. 직무연수에 참가한 선생님들 중에는 학생인권에 관심이 있어서 온 분들도 있었지만 생활인권 담당자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채운 분도 있었다. 하지만 다 같이 하는 말이 학생인권조례가 들어온 후 도대체 학생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런데 그것은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그렇다. 인권이 뭔지 잘 모르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기저기 '인권'을 갖다 붙인다. 그렇다. 아직은 모두가 서툴고 낯설다. 그러나 어쨌든 억눌린 당사자였던 학생들은 지금의 억압된 경쟁교육이 아닌 새로운 교육과 삶을 살기 위해서 학생인권이 필요하다. 적어도 자신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규정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옹호자를 만나본 적이 없는 학생들에게 학생인권조례는 가히 혁명적인 선물이 아니겠는가. 그걸 바라보는 교사는 어떤가. '인권교육'은 학생과 함께 있는 교사가 해야 한다

교사들은 학생인권이라는 규정이 들어온 교실에서 정말 권력을 빼앗긴 피해자이기만 할까? 자신이 꿈꾸던 교육자의 길, 경쟁과 배제가 아닌 교육이 선택할 길을 찾던 교사에게 학생인권조례는 어떤 의미인가. 교육이 살아 있는 일터에서 일하고 싶은 교사에게 학생인권조례는 독인가, 약인가. 이런 질문에 답을 하면서 길을 찾지 않는 한, 학생인권은 낯설고 불편하고 쓸모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하지 않을까.

사실 '인권' 교육은 활동가가 할 수 있지만 '인권교육'은 학생들과 함께 있는 교사들이 해야 한다. 인권의 답은 없다. 답을 찾아가는 거다. 누구에게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찾아 나설 때만이 답을 만날 수 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1주년,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배움터인 학교에서 차별과 폭력에서 벗어난 삶을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권리가 존중되는 경험을 통해 타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권리가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기를 때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나아가 노동자의 권리, 소수자의 인권에 관해 배우고 존중하는 경험을 통해 인권의 가치가 힘차게 살아 숨 쉴 수 있다. 교사에게도 눈 마주치며 공부할 수 있는 적정한 학생 수와 수업을 자신의 의지와 교육철학대로 할 수 있는 권한, 그 수업을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물론 그것은 학생인권과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다. 학생인권의 와이파이가 짱짱하게 뜰 수 있도록 우리안의 인권 안테나를 쫑긋 세워보자.

* 김경미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이자, 경기도학생인권심의위원입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