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오! 마이 어버이[기고]오! 마이 어버이

Posted at 2016.05.04 10:34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오! 마이 어버이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은 서러움과 경고의 여운을 남긴다. 몇 살을 경계로 노인이 되는 것일까…. 자각 못하는 새 중년이 되었다. 그렇게 노년도 올 것임을 깨달았다. ‘밝고 빛나는 청춘’일 때는 몰랐다. 소리 없이 사라지고 나서야, 청춘에 대한 찬사가 클리셰가 아님을 깨달았다. 한 발짝 늦게 알고 깨닫는 새,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 소멸의 대가로 경험과 지혜를 선물받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을 보자. 사회학자와 정치인들이 나서 “사회보장 적자는 노인들 때문이며, 의사들이 노인을 살리는 것은 공익은 뒷전이고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한 이윤 행위”라고 비난한다. 정부는 노인을 위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노인들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법적으로 제한되고, 수용소로 끌려가기에 이른다. 잡혀가기 직전 탈출한 주인공에 의해 반란이 조직된다. 그러나 정부의 바이러스 유포로 반란은 좌절된다. 살해당하는 순간 주인공은 말한다. “너희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이다.”


“65살은 괜찮아요. 70살은요? 손해의 시작이죠.” 손익분기점 위에 놓인 순간 늙음은 손해의 시작이다. 노인의 지혜는 계산에 포함되지 못한다. 생산으로부터 배제된 인간에 대한 경멸이 담겨 있다. 생산의 가능성을 가졌으나 아직 성장 중인 아동에 대한 오래된 ‘하대’ 역시 그 때문 아니던가.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물론 소비할 수 있는 노인은 예외다. 노인이라 불리지도 않는다. ‘박근혜’ ‘이건희’ 등의 고유명사는 ‘노인’이라는 일반명사에 포함된 적이 없다. 그들의 손익분기점은 늘 충만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노년은 폐지를 수렴하거나 가족에게 부양 책임이 된다. 육아와 가사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남성 노인일 때는 어휴, 말도 하지 말자. 그래서 이렇게 되었을까? 충만함보다 박탈감이 앞섰기 때문일까? 애국심을 2만원으로 충분히 보상받았기 때문일까? 연일 신문 기사에 오르는 ‘어버이’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툭 튀어나온 말에는 혐오감이 담겨 있다. 캠페인 할 때 나이 든 남성 노인이 다가오면 본능적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 욕설, 멱살이라도 잡히는 모욕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런 노인들에게 벌어진 일이다. 추문은 연일 이어진다. 아직 납득할 만한 해명조차 듣지 못했으나 새로운 사실이 쏟아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청와대, 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진 커넥션. 서로 간의 변명은 책임 전가로 이어진다.


노인의 지혜를 들을 수 있는 사회였다면, 추잡한 스캔들 한가운데서 ‘어버이’이라는 이름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가 나서 국민을 이리저리 찢어놓으려 그 어버이들을 앞세우는 꼴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오! 마이 어버이’들이 연출하는 블랙코미디는 최악의 예능이다. 베르베르의 같은 소설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도서관이 되었을 그들의 자리를 훼손하는 국가와 돈 있는 자들의 탐욕을 단죄해야 한다. 노인들의 명예를 살해하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한겨레 21/ '노 땡큐'/ 2016.5.2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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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어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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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잘 가라, 오렌지[기고] 잘 가라, 오렌지

Posted at 2015.06.19 13:53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12살 소년이 있었다.


물놀이하다 발에 난 작은 상처는 아이의 온몸을 독으로 덮었다. 죽음의 고비를 넘었다. 겨우 살아난 소년은 후유증으로 콩팥이 망가졌다. 다행히 신장을 이식했지만 하루 걸러 하루, 피를 걸러내는 투석과 합병증이 따라붙었다. 병은 몸을 괴롭혔고 병원비는 가족을 괴롭혔다. 소년은 어린 나이에 가족과 헤어져 사는 길을 선택했다. 수급자가 되어야만 의료비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홀로 상경한 소년은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병원 식당 같은 곳에서 새우잠도 잤다. 그러나 야학을 찾았고 검정고시를 보았다. 걷기조차 힘든 자신이 싫어 검도를 배우다 사범까지 했다. 소년은 참 열심히 살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소년이 청년이 되었을 때 만났다. 2008년 가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 ‘수원 촛불’을 찾아왔다. 환자로서 수급자로서 의료민영화를 반대해서 거리에 나왔다 했다. 투석하는 팔뚝은 엄청나게 두꺼웠다. 팔뚝은 굵어졌지만 심장 쪽 혈관은 좁아지고 있었다. 투석환자들에게 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질환 중 하나였다. 심장에 인공적인 시술을 두 번이나 했지만 버티지 못한 심장이 정지했다. 좁아진 혈관으로 흐르지 못하는 피가 심장에 닿지 않았다. 2주일간 기계를 달고 누워 있었다. 마침 나라에는 중동에서 넘어온 ‘메르스’라 불리는 전염병이 창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누군가 ‘어륀지’라는 발음으로 국민들 영어 발음 교정에 나서 헛웃음을 산 적이 있었다. 청년은 ‘오렌지가 좋아’라는 별칭을 쓰기 시작했다. ‘어륀지’가 아니라 ‘오렌지’가 좋다는 저항이었다. 우리는 그를 그냥 오렌지로 부르게 되었다. “오렌지! 다산인권센터에서 자원활동 해볼래?” 인연은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지원 반올림 활동, 빈곤 당사자 운동까지 그를 안내했다. 해고된 노동자, 쫓겨난 철거민, 산재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현장을 다녔다. 사진을 배우고 싶다 했다. 수급비를 알뜰히 모아 카메라를 샀고 방송통신대에 입학했다. 이후 그와 그의 무거운 사진기는 어느 현장에나 있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의 황상기 아버님은 그의 카메라가 있어 삼성 본관 앞에서 경찰과 삼성 경비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했다. 그는 소박하나마 개인전을 두 번 치른 작가도 되었다.

그런데 어제 오렌지가 죽었다. 거짓말처럼 떠났다. 함께 활동한 동료뿐 아니라 야학 교사, 방통대 동기, 동료 사진작가와 시민사회 선후배들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34살,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살았기에 더 아픈, 더 살리고 싶었던 슬픔이 흐른다. 그러나 누구보다 가까운 환우회 동료들은 찾아오지 못한다. 그에게 사회적 의식을 최초로 심어준 양어머니도 오지 못한다. ‘메르스’ 때문이다. 치사율이 낮아 만성질환자가 아니라면 걱정하지 말라는 ‘메르스’는 그들에게 치명적이다. 반올림 피해자들도 올 수 없다. 정부가 통제 못한 전염병은 오렌지와 같은 이들에게 괜찮지 않다. 아플수록 보호받지 못하고 가난할수록 병들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도대체 얼마나 괜찮지 않은가.

어수선하게 장례 치르다, 정신 차려보니 노 땡큐 마감이다. 나누던 이야기 잦아들고 모두 잠든 시간 글 앞에 앉았다. 동료들의 숨죽여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엄명환. 외롭지 않게 가는구나. 가난과 병, 모두 어깨에 짊어졌으나 너는 지지 않았다. 씩씩하게 살아줘서 고맙다. 잘 가라, 오렌지!


2015. 6. 18 한겨레21 [제1066호]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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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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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외면 당한 아픔[기고] 외면 당한 아픔

Posted at 2015.05.11 10:26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누가 아프다고?” 대통령 와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는 순간, 불경하게도 생뚱맞았다. 재임 중 대통령이 아프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 없었다. 우산을 직접 드시던데, 무거웠나? 누리꾼들은 신속하게 국가원수가 아픈 것은 ‘국가 기밀’에 해당한다고 알려줬다. 누리꾼들은 4·29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절대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보도자료를 왜 내는지 의심스럽다 선동했다. 나쁜 사람들! 아프다잖아! 위경련과 인두염.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이미지=한겨레21)



‘아픈 사람이 있다’ 소리쳤지만

비슷한 때, 엄마 한 명도 병원으로 실려갔다. 네 개의 갈비뼈에 금이 갔지. 그녀 아이가 지난해 이맘때 바다에 빠진 날이었지. 엄마가 한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남미 순방 같은 어마어마한 일은커녕, 밤늦은 서울 종로 거리에서 광화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지. 이 길도 막고 저 길도 막고. 가는 길목마다 알뜰히도 서 있던 경찰들의 촘촘한 경비구역을 뺑뺑 돌고 있었지. 어느 곳에서 경찰과 밀고 밀리다 넘어진 거야. 말에 따르면 경찰이 엄마를 손으로 확 밀쳤다고. 엄마는 화단 모서리에 옆구리를 부딪치며 넘어졌고. 그때 이미 골절이 시작되었는지 고통을 호소하며 울었지. 다른 이가 엄마를 안고 유리문에 기대서 119에 전화했겠지. 누워서 울고 있는 엄마를 분명히 보고도 경찰은 방패로 밀어붙였다지. ‘아픈 사람이 있다’ 소리쳤지만 아랑곳없이 밀어붙였다지. 밑에 깔린 엄마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고. 화난 사람들이 울부짖자 지휘관은 이렇게 말했다지. “입 닥치고 그 안에 가만히 있으라.”

누가 그런 말을 하더군. “대통령은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그는 대통령일 때 국가의 얼굴이다. 국가가 아프고 국가가 울기도 하는가, 기묘한 일이지….”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만, 국민이 그걸 보게 해. 몰라도 되는 사실을 자꾸 알게 한다는 거지. 정말 알고 싶은 건 알 수가 없는데. 죽은 자의 유서에 등장한 정부 전·현직 각료들이 돈 봉투를 받았다는데, 그게 대통령과 무관한지 알고 싶거든. 살아 있던 목숨들이 눈앞에서 서서히 사라졌는데, 그 순간 국가는 무얼 했는지, 긴박했던 7시간 동안 당신은 도대체 어디 계셨는지. 사실 국민이 알아야 할 것들은 그런 것이거든. 그런데 그건 알면 안 된다는 거지. 알고 싶어서 만들어낸 특별법은 대통령 시행령으로 짓뭉개버리고 있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1주기 날 “그분들이 원하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충고를 하고 허겁지겁 공항을 빠져나가는 그토록 인간적인 모습 말고.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책임지는 국가의 모습인데, 그건 영 보여주지도 알려주지도 않아.

철옹성 같은 차벽에 산산이 깨진 마음

아프시다니까, 사람들은 어김없이 여당에 투표하잖아. 존재감으로 치자면 부끄럽기 한량없는 어느 야당은 말도 말자고. 선거라는 게 웃기기 그지없어서 민심의 반영으로 읽히지. 그러니 그걸 믿고 밀어붙인다고 해. 그렇게 되면 다음은 이른바 ‘공안 정국’ 같은 거 아니겠어. 아픈 대통령 모함하고 최고 존엄에 항거한 자들에 대한 구속과 손해배상 청구 같은 것이지. 아, 그렇긴 해… 아프다는데, 병문안 못 갈망정 그러면 안 되지. 한데 지난 1년간 당신들 철옹성 같은 차벽에 산산이 깨진 마음은 어떻게 배상해주려나. 비통함을 계산기로 두드릴 수 있다면, 나는 저 청와대 뒤 인왕산을 청구하겠어. 그 산에 살고 죽어, 민심을 못 살피는 통치자의 꿈에 밤마다 시뻘건 피 흘리며 찾아가려고. 국가로부터 구조 못 받고 죽은 자식 기일 날, 또한 국가에 의해 뼈가 부러진 엄마의 고통이 바로 진짜 인간의 얼굴이라는 걸 누군가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어?


2015. 5. 6. 한겨레21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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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외면 당한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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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고맙습니다고맙고 고맙습니다

Posted at 2015.04.28 10:42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찬호 아빠 전명선씨. 그는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여름이 고개 디밀던 어느 날이었다. 경기도 미술관에 위치한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 공기는 그때까지 서늘했다. 유가족들은 낯선 이를 경계했다. 가족대책위 진상규명분과장 찬호 아빠를 만났다.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명함을 내밀었다. 그는 “존엄과 안전이오?”라고 되물었다. 존엄과 안전이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언어로 부유한 채 1년이 흘렀다. 정부 시행령안으로 인해, 세월호 특별법은 쓰레기가 될 판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 시간이다. 수사권, 기소권 있는 특별법이 안 된다던 정치와 알량한 조사권마저 갈가리 찢어대는 정부에 의해 “내 자식 죽은 이유를 밝혀달라”는 당연한 호소는 비명이 되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무엇이든 안 된다” 말하기 위해 법전이 동원되었다. 바다에서 돌아온 이들에게는 살아왔다는 죄책감,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는 살리지 못한 죄책감이 남았다. 전남 진도 앞바다를 목격한 이름 없는 시민들은 자신들이 일궈온 체제의 실패를 직관하며 “미안하다”는 고백을 쏟아냈다. 정작 미안하다 위로해야 할 국가만 사라졌다. 구조의 실패에서 끝나지 않았고 애도와 치유, 추모의 실패로 이어졌다. 찬호 아빠의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괜찮지 않아요, 아파요, 많이 아파요”

그는, 그들은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낯선 사람들에게 서명을 부탁했고 어색한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수십 일 단식을 했으며 물집 잡힌 발로 팽목항까지 걸었다. 국회, 청와대 앞, 광화문 앞에서 노숙으로 밤을 새웠다. 지금도 삼보일배 하며 서울로 오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진실인 것을 정말 모르냐”며 돈으로 모욕하는 정부에 머리카락을 밀며 대답했다. 내가 살아온 세상이 이런 것이냐, 가족을 위해 일하며 성실하게 세금 내고 살았는데 도대체 이 상황은 무언지 묻는다. 아빠에게는 찬호 없는 식탁의 부재가 304개의 비어버린 저녁 식사로 보인다. 그는 국가의 본질과 체제의 잔인함을 경험하며 앓고 있다. 입술이 퉁퉁 붓고 입안이 온통 헐어버린 그가 걱정돼서 물었다. “몸은 좀 괜찮아요?” “솔직히 말해도 돼요? 괜찮지 않아요. 아파요. 많이 아파요.”

문득 어떤 아빠가 떠올랐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의 아빠, 황상기.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수년 전이었다. “건강하던 딸이 일하다 죽었는데 회사는 개인 질병이라고 합니다. 억울해서 여기저기 찾아갔지만 듣지 않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의 손이 떨렸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어떤 전문가도 장담하지 못했던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이끌었다. 유미 아빠 황상기씨의 승리였다. 회사는 수십억원을 들고 찾아왔지만 문전박대당했다. 강원도 속초에서 서울까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7년을 오가며 승리를 일궈냈다. 유미의 죽음은 함께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닌 또 다른 유미의 불행을 끝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산재 인정 판결이 확정된 날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나는 유미에게 말했다. “당신은 훌륭한 아빠를 두었습니다.”

비통한 자들이 토닥여준 위로

모질고 잔혹했던 지난 1년은 찬호 아빠가 만들어낸 유미 아빠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했던 만큼, 앞으로 사랑할 시간만큼 용감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낸 1년, 유미에게 했듯이 말한다. “당신들은 정말 훌륭한 부모님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에 의해 훼손된 존엄을 세우는 중이다. 찬호 아빠가 “존엄과 안전이오?”라고 다시 묻는다면, 대답하려 한다. 그것은 당신들의 지난 1년이었습니다. 위로받지 못한 시간 비통한 자들이 토닥여준 위로에 깊은 울음으로 답한다. “고맙습니다.”


2015. 4. 15. 한겨레21 <1057호>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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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고맙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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