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④] 장애학생 강단영·이종선[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④] 장애학생 강단영·이종선

Posted at 2012.09.28 16:28 | Posted in 활동소식/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
"애들이 외모 갖고 자꾸 놀려서 힘들어요"

[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④] 장애학생 강단영·이종선


오는 10월 5일이면 경기도교육청이 전국에서 최초로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지 2년이 된다. 이후 서울, 광주 등 다른 지역 교육청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시행 중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 존중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학교 문화를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는 데에는 대체로 공감한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의 안과 밖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위태롭다. 이런 상황을 점검해보기 위해 경기학생인권조례 공포 2년을 맞아 다문화, 성소수자, 장애, 탈학교 등의 학생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권 현실을 짚어보는 기사를 4차례에 걸쳐 준비했다.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로 살아가는 학생,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학생인권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경기도에서 가장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 2주년이 지났다. 학생(청소년) 인권이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던 우리나라에서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여러가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조례 제정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학생 인권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됐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고 있는 지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실제 장애학생 인권은, 청소년 인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전부터 논의돼 왔다. 장애학생 인권에 대한 논의는 장애인운동의 일부로 꽤 오랫동안 지속돼 왔고, 이것이 학교에도 영향을 미쳐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과 같은 관련된 법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장애인은 학교 현장에서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집단 중 하나다. 

학생인권조례를 잘 모르는 장애학생과 부모들 

▲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강단영 학생(왼쪽)과 이종선 학생 ⓒ 푸른솔


가을이 시작될 무렵 한 장애인 부모단체 사무실에서 강단영(부천 상록학교 전공과 1학년)학생과 이종선(시흥 은행고 2학년) 학생과 그들의 어머니를 만났다. 발달장애 학생들인 까닭에 소통에 다소 어려움이 있거나 세세한 설명이 필요할 때는 두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다. 

가장 궁금한 것은 학생인권조례 통과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학교생활의 어려움은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생인권조례를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두 학생과 어머니 모두 잘 모른다고 답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그들에게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단영 모 : "특별한 건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놀리는 아이들은 있어요. 아이들이 표현을 못해주니까, 엄마들이 모르는 부분도 있고요. 그래도 분위기가 초중고가 다 달라요. 아이들 생각이 커서인지 고등학교에 가니까 놀리는 게 덜하고 돌봐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엄마들 입장에서 보자면 아직은 많이 부족하죠. 그래도 그전보다는 노력은 하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우리 아이한테 도우미도 붙여줘서 알림장 쓸 때도 도와주는 등 노력은 해요. 다만 그 과정에서 장애 학생들에게 안 맞게 해주는 경우가 있기도 해요."
단영 : "고등학교 때 힘들었던 점은, 동생들이 입술 크다고 외모 때문에 놀릴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종선 : "다 좋은데...친구가 놀려서 화났어요."

장애학생들, 특히 발달장애 학생들의 경우 특이한 외모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인권의 틀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괴롭힘'도 차별이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인터뷰에서 드러나기로는 많은 학교에서 '도우미' 제도를 통해 장애학생들의 이러한 어려움을 지원해주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은 권리에 포함될 수 있지만,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까지 권리에 포함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끼어든다.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친구가 '되어 준다'면, 진정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까? 여기에는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이고 동정적인 시선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들은 '좋은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이런 어려움들을 해결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선생님 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장애인 교육권 
 

▲ 강단영 학생. ⓒ 푸른솔

종선 모 : "해 바뀔 때마다 좋은 선생님 만나기를, 좋은 아이들 만나기를 바라는 거죠. 아이가 밝은 편이라 비장애아이들하고 잘 지내는 편임에도 그 아이들과 감정을 교류한다거나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건 힘든 것 같아요."
단영 모 : "좋은 선생님들도 많아요. 그래서 좋은 선생님 만나면, 이제 1년은 편하게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거고."

좋은 교사, 나와 잘 맞는 교사를 만나기를 바라는 거야 모든 학생과 학부모들의 심리다. 그런데 장애학생들은 '좋은 교사'를 만나지 못하면 기본적인 교육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교사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이 좌우된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변수에 인권을 맡기는 불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중고등학교는 과목별 담당 교사가 다르기 때문에 더 힘들다. 담임교사는 학생에게 긍정적이더라도 교과 교사가 부정적이라면, 해당 교과 시간은 장애 학생에게 힘든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어떤 교사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수련회나 체험학습, 운동회 같은 학교 교육과정에서 이뤄지는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정해지기도 한다. 

단영 모 : "아이 6학년 때, 운동회를 하는데 제 아이가 못 뛰지를 않잖아요. 아니 설사 못 뛰어도 세워서 뛰어야죠. 학교 운동회에 갔는데 달리기해야 되는데 줄에 안 세워주는 거예요.  왜 안 서냐고 하니까 선생님이 조를 안 짜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줄을 세워서 뛴 적도 있어요."
종선 모 :  "수련회에 장애아들을 안 데리고 가려는 분들도 계세요. 특히 초등학교 때는 그랬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특수학급이 생겨난 이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일반교사들이 장애 학생을 자신의 학급 소속으로 생각하지 않고 행사가 있으면 장애학생을 특수교사에게 '떠맡기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원칙적으로는 장애학생도 특수학급 소속이 아니라 비장애학생들과 같은 반 소속이기 때문에 일반교사가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 함에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 이종선 학생.ⓒ 푸른솔



가장 큰 어려움은 아무래도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서 알 통로가 많지 않다는 점인 것 같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다'고 했고, 부모님들도 장애학생의 권리나 부모의 권리에 대해 학교를 통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장애인 부모단체에 가입하면 내부에서 실시되는 교육을 통해 권리를 알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런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권리를 '잘 몰라서' 요구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알아서 보장해주지도 않는 상황에 처해 있는 셈이다.

종선 : "졸업하면 취직하고 싶어요. 취업해야 돈을 벌 수 있어요. 제과제빵과 바리스타를 공부하고 있어요."  
단영 : "서비스업 하고 싶어요. 커피 만드는 거." 

두 학생들이 졸업 이후 하고 싶은 일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5~10% 정도는 장애인이다. 장애를 '숨기는' 분위기가 줄어들면서 학교에 입학하는 장애학생도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관련법도 제정되었고, 장애교육이  어느 정도 정착되어가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장애학생들이 학교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충분히 누리기란 너무나 어려워 보인다.

지적장애학생이 학교에서 행복하게 지내지 못한다면, 그건 지적장애학생의 인지발달이 느려서가 아니라 학교의 구조가 지적장애학생에게 억압적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학생인권조례가 이런 구조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글 : 푸른솔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오마이뉴스 원글 보기(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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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③] 불량교사-되기[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③] 불량교사-되기

Posted at 2012.09.04 17:36 | Posted in 칼럼/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

푸른솔님은 내년 졸업을 앞둔 예비교사입니다. 요즘엔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팀에서 바쁜 시간 쪼개가며 인권교육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민이 많습니다. 졸업하면 어떻해야 하나, 또 대한민국 교육현실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예비교사 푸른솔님의 고민, 함께 들어주실래요?

 

그림출처 : 한겨레신문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

아마 많은 분들께서 나주에서 일어난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들으셨을 것이고, 분노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요즘 ‘인간 괴물’에 대한 뉴스들이 유독 자주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 맞습니다. 정권 말기에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꼼수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저 이탈리아 작가는 그런 ‘인간 괴물’보다 저나 여러분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더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네요. 아니 도대체 왜?

저를 포함하여, 우리나라에서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또는 살아가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 평범하기로는 손에 꼽을 정도일 겁니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공부 좀 한다 소리 들으면서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사범대에 들어가서 별 탈 없이 대학교에 다니고, 평범하게 교사 생활을 하고 있을 겁니다. 

학교에는 소위 ‘조직 논리’라는 게 존재합니다. 하도 자주 나오는 얘기라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학교는 근대에 들어와서 탄생했다고 하죠.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라고도 하고, ‘국가’라는 체계가 잡히면서 그때까지 가정 내지는 마을의 역할이었던 교육을 국가에서 가져간 것이라고도 하더라구요. 지금의 학교도 그런 모습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기본 지식을 전수해주기도 하고,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도 해주지만, 그 과정에서 애국주의의 가치관, 기계적 중립, 경쟁중심주의, 위에서 하라면 한다(?) 등의 굳이 필요 없는 것들도 함께 흡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육을 교육이 아니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등장하는 책이죠(그런데, 책에서는 사실 이 말이 딱 한 번 밖에 등장을 안 한다네요). 예루살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나치 전범이었습니다. 수많은 유대인을 죽게 만든 사람이었죠.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기로 한 의사는 ‘적어도 그를 진찰한 후의 내 상태보다도 더 정상’이라고 아이히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그의 모든 정신적 상태가 정상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도 나오죠.  

이 얘기를 하는 것이, ‘교사들은 아이히만이나 다름없다! 나빴다!’라며 돌을 던지자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도 죄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 자신이 없네요...^^ 다만 반성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구조를 이야기합니다. 학벌주의를 만드는 구조, 교사가 학생과 눈을 마주보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 교육에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전달만 있게 하는 구조.. 구조, 구조, 구조... 그러나 그 구조는 결국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강화되는 것이 아닐까요? 

앞에서도 말했듯, 교육을 교육이 아니게 하는 ‘구조’가 있고, ‘조직 논리’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구조와 조직 논리는 평범한 사람들, 기계적 인간들에 의해서 다시 강화되고 몸집을 불려갑니다. 고장나도 한참 고장난 것 같은 근대교육이란 기계가 계속해서 잘만 돌아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옴팡지게 노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던 이번 방학에서 제가 유일하게 공부하겠다고 듣게 된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의 소개글이 생각납니다.
 
미쳐서 돌아가는 기계를 멈추는 법은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물질’을 껴 넣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꺼이 그런 ‘이물질’이 되어 학교의 견고한 질서를 삐거덕거리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늘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꿈꿔온 저이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만 조금은 이물질이 되어 보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 글 : 푸른솔 (인권교육팀 자원활동가) 


  1. 글쎄요... 현직에 있지만, 물론 그런 조직의 문제점을 모르는 것만은 아니지만...

    조직을 바꾸기 위해서 그런 조직의 이물질이 되겠다...

    글쎄...요,,.라는 말 밖에 안나옵니다.

    인권이란 것을 핑계로...그냥 월급쟁이 교사 하나 더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 일도 안하고 수업도 별볼일 없고

    조직을 와해시키겠다는 생각만으로 월급만 타가는 교사

    열심히 근무하는 "평범한"교사가 제일 싫어하죠
  2. 비올
    현직교사님.
    여기서 불량교사되기라는 것은 `나조차 월급쟁이 교사 하나 더 되지 않겠다`는 예비교사의 각오로 읽혀지는데요.
    인권은 부수적인 것이라 하고,
    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시스템에 아무 문제제기하지 않는 현재가
    조직을 와해시키고 교육을 붕괴시키고 있지 않은가요?

    열심히 근무만 하면 되겠습니까? 잘못된 조직에 문제를 제기해야죠. 왜냐, 그 현장에는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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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 ②] 이것은 왜 교육이 아니란 말인가?[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 ②] 이것은 왜 교육이 아니란 말인가?

Posted at 2012.08.06 11:22 | Posted in 칼럼/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

푸른솔님은 내년 졸업을 앞둔 예비교사입니다. 요즘엔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팀에서 바쁜 시간 쪼개가며 인권교육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민이 많습니다. 졸업하면 어떻해야 하나, 또 대한민국 교육현실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예비교사 푸른솔님의 고민, 함께 들어주실래요?



사진출처 : 실상사 작은학교 홈페이지




지난 번 글에서, ‘대안’교육이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기본’으로 돌아가고 있는 교육을 이야기 했었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 썼다 지웠다 하다 보니, 교육이 아니었던 것을 교육으로 끌고 들어온 ‘실상사 작은 학교’가 떠올랐다. 

요즘 페이스북에서 지리산 사진을 종종 마주친다. 지인들이 다녀온 ‘실상사 작은 학교’(작은학교)의 여름 계절학교의 흔적이다. 작은학교는 중등 과정의 대안학교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학교이고, 우리 나라의 첫 불교계 대안학교이다. 방학마다 열리는 계절학교는 학교 생활을 체험하고 이 학교를 선택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겨울이었던가, 나도 계절학교에 자원교사로 참여한 적이 있다. 날씨는 무진장 추웠지만 몇 가지 불편함 때문에 여러 생각과 고민을 얻고 돌아왔었다.
 
그 중 하나는 가기 전에 읽은 ‘여우처럼 걸어라’는 책이 시작이었다. 분명히 학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고 했는데, 내가 예상한 내용과는 완전히 달랐다. 산에서 동물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걷기, 나무로 생활도구 만들기, 흙 다루기 같은 내용들이 담겨 있었고, 그것도 저자의 회상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멋드러진 철학이나, 잘 짜인 교육과정 같은 것들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이게 뭐지? 이런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짜야하는 건가(계절학교 중 몇 시간은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구상한다)? 이게 교육이라는 건가? 이걸 왜 하는 거지? 
 
지금은 다시 이렇게 묻는다. ‘이것은 왜 교육이 아니란 말인가?’ 지금의 공교육에서 배우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이것들은 교육이고 왜 흙과 나무를 다루는 것은 교육이 아니란 말인가? 내가 ‘여우처럼 걸어라’를 처음 마주쳤을 때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공교육을 받는 대부분의 학생들도 국어, 수학, 사회 등을 왜 배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내가 느낀 불편함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 중심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의 불편함일 뿐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지금의 학교 교육은 인간중심, 합리주의,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한다. 그런 학교에서 자연은 이용의 대상, 기껏해야 보호해야 할 대상이며, 감성이나 몸의 영역은 현저히 줄어든다. 자본주의적 경쟁체제도 당연히 도입된다. 반면 실상사 작은 학교는 자립, 생태,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학교에서는 자립적 삶에 필요한 기능, 생태적인 삶에 필요한 신념을 담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삶을 조여 오는 신자유주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발전소,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이 속에서 정말 국어, 수학, 영어만 가르치고 있어도 되겠냐는 문제제기를 읽은 적이 있다. 십분 공감한다. 정말 이대로 좋은가?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며 거의 매년 교육과정을 개정하고 있지만 실상 바뀌는 건 수업의 양과 진도의 빠르기 정도이고, 내용에는 좀처럼 변화가 없다. 
 
정말 새로운 사회를 지향한다면, 우리의 학교가 바꾸어야 할 것은 뭘까. 지금까지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담은 학교는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럼 지금의 학교가 ‘교육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것들을 살펴 끌어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글 : 푸른솔 (인권교육팀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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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①] 기본으로 돌아가는 학교[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①] 기본으로 돌아가는 학교

Posted at 2012.07.10 14:11 | Posted in 칼럼/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

푸른솔님은 내년 졸업을 앞둔 예비교사입니다. 요즘엔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팀에서 바쁜 시간 쪼개가며 인권교육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민이 많습니다. 졸업하면 어떻해야 하나, 또 대한민국 교육현실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예비교사 푸른솔님의 고민, 함께 들어주실래요?



그 학교에서는 학생이 교사의 이름(별명)을 대놓고 부른다. 말할 때도 반말을 쓴다. 교무실에 학생들이 마음대로 들락날락하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긴 아이들도 많다. 아니, 그런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교권이 무너지는 현장, 무력한 교사, 거친 아이들... 뭐 이런 용어들이 떠오른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쓴 건 아니다. 6월부터 내가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산어린이학교-초등대안학교-의 이야기다. 

산어린이 학교를 비롯한 많은 대안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반말을 쓴다. 고학년 아이들의 경우 먼저 존대말을 쓰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반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서로 반말을 쓰는 이유가 존대말/반말과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하니까. 아이들 역시 교사를 좋아하고 의지하고 잘 따른다. 학교에 처음 와서 뭘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이것저것 잘 가르쳐준다. 

물론 대안학교라고 해서 학생들이 모두 친절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동시에 타인을 배려하는, ‘민주적’이고, ‘친환경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툭하면 욕하고, 싸우고, 때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얄미울 만큼 자기 것 챙기려들고, 탄산음료도 과자도 좋아하는 천상 아이들이다. 
 
이게 무슨 ‘받아올림이 있는 덧셈을 하는 방법을 알 수 있어요’도 아니고, ‘대안적 삶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초등과정 6년 만에 나타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집에 돌아가면 소비를 조장하는 삐까번쩍한 쇼핑몰에, 컴퓨터 게임에, 텔레비전 등등 전혀 ‘대안적이지 않은’ 삶의 모습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데 말이다.
 
다만 제도권 학교 학생들에 비해서 밝고, 자기 표현도 잘하고, 잘 논다. 축구든, 전통놀이든, 목공이든,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갇히지 않고 잘 노는 것이 보기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정말 ‘애 같아서’ 좋다! ‘요즘 애들’은 애들이 아니라느니, 때 묻었다느니 이야기하지만, 산어린이학교의 넓고 시원한 평상에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양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건 다 학교와 학원 때문인 것만 같다. 쓸 데 없는 간섭과 욕심만 거두어내면, 이렇게들 순수하고 예쁜데 말이다. 
 
‘대안’이라고 말하지만, ‘기본’을 지키는 교육. 대표교사가 이야기해준 산어린이학교의 ‘모토’다. 그렇다. 산어린이 학교 아이들은 정말 ‘초딩답다’. 초등학교 시절에 ‘초딩답게’ 클 수 있게 해주는 것. 미래를 위해 지금 불행하라고 을러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행복하게 해주는 것. 대안교육운동은 전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는 교육이기 이전에,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운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글 : 푸른솔 (인권교육팀 자원활동가) 


  1. 푸른솔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2년후에 우리 아이는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나 고민중입니다. 그래서 산어린이학교에 대해 쓰신 글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한가지, 이렇게 댓글을 남기는 이유는, 반말을 쓰는게 아니라 평어를 쓴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반말의 국어개념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반말이라는 말은 상대를 낮추어서 말하거나 하는 하대의 의미로 많이 쓰여서 말이지요. 저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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