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사람 ③] 권오일 교장을 만나다[그때 그사람 ③] 권오일 교장을 만나다

Posted at 2012.10.25 10:26 | Posted in 20주년소식/그때 그 사람

다산인권센터가 올해로 20주년이 됐다. 10월 27일 인권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한 인권단체의 20년을 추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야만적인 인권현실 앞에서 무엇을 향해 가야 세상이 좀 더 나아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2012년이다. 다산인권센터는 지난 20년이라는 과거를 더듬어 현재 또는 미래를 안아보려 한다. 20년 전 다산인권상담소 시절부터 현재까지 만났던 인권피해자들과 인권의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보려 한다. 단지 기념하거나 추억하기에는 치열하기만 한 현재가 과거를 거울삼아 성큼 한걸음 내딛고 그리고 사실은 위로받기 위해서, 그때 그 사람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인터넷매체 <프레시안>과 함께 한다. <편집자> 



에바다 학교, 계란으로 바위 깬 사연
[기고] 권오일 교장을 만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법무법인 다산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다. 평택 에바다 농아원생들이 다산을 향해 오물을 날렸다. 돌도 날렸던 것 같다. 에바다 학교는 청각장애인이 모여 있는 농아학교였다. 비리재단 피해자인 장애인이 재단을 비호하는 상황, 소리 없는 그들의 눈빛이 만만치 않았다. 쉽게 끝날 싸움 같지 않았다. 그런데 싸움이 시작된 지 6년째라고 했다. 그 후로도 1년간 싸움은 계속되었고, 2003년에서야 에바다는 정상화됐다. 싸움의 중심에 섰던 권오일 선생님을 10년 만에 만났다. 그는 현재 에바다 학교 교장이다.

인터넷에서 '에바다 학교'를 찾아보면 농아인 탁구 국가대표를 배출한 학교, 모범적인 장애인 학교로 나온다. 한때 '장애인 교육비리 재단' '에바다 사태'라는 오명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렸던 에바다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권오일 선생님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싸움,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거다.

"96년 11월 27일 새벽 5시 농아원생 26명이 농성을 시작했어요. 5분 만에 경찰들이 출동해 전원 연행해 가는데 경찰이 학생 가슴에 권총을 겨누고 세 명이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전쟁 상황이었죠."

농아원생 70여 명을 미국으로 돈 받고 팔고, 이름 바꿔치기해서 시청으로부터 이중 지원받고, 학교 옆에 있는 제본공장에 새벽까지 강제 노동시키고, 말 안 들으면 두들겨 패는 극한의 인권유린 속에서 농아원생들의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들은 당시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아침에 출근했는데 기숙사 입구 문이 부서져 있고 교실 여기저기선 아이들이 울고 있었어요. 이런 상황인데 학교에서는 이번 일에 나서는 교사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때 학생부장이었는데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죠. 교사가 21명이었는데 두 시간 격론 끝에 11명의 교사가 결의했어요. 파면, 해임 아니 이 정도 비리라면 경찰, 관청 할 것 없이 모두 연관돼 있으니 우리를 그냥 두지 않을 거다, 하지만 평생 양심의 가책을 받고 사는 것 보다 낫다, 법정에 서는 한이 있더라도 당당하게 살자. 그건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교사로서의 양심,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이렇게 11명의 교사가 모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2개월, 길어도 3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싸움은 장장 7년에 걸쳐 진행됐다. 교사와 원생은 둘로 쪼개졌다. 재단 쪽과 반대 쪽으로 나뉘어 대립했다. 제자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해 머리끄덩이를 잡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이쪽 아이들이 저쪽 아이들로부터 만신창이가 되도록 맞기도 했다. 급기야 허위 사실로 고소 고발이 남발되는 상황으로 확대되면서 에바다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해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무렵 <경인일보> 노영란 기자가 주한미군의 에바다 학생 성추행 사건을 사회면 톱으로 보도하면서 에바다 사건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사건 초기부터 다산인권센터의 김칠준 변호사, 박진 간사, 송원찬 소장 등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기자가 파헤치고 인권 활동가들이 뛰고 변호사가 법률지원을 하던 숨 가쁜 상황이었다. 당시 에바다 사람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다산으로 달려갔다. 그들에게 다산 활동가들은 지원병이 아니라 함께 뛰는 동료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돈이 떨어지고 기력이 쇠할 때마다 원군이 나타났다. 1997년 1월 장애인단체와 인권단체 중심으로 전국 공대위가 만들어졌고 그해 겨울 혹한 속에서 '에바다 대학생 비상대책위원회'가 탄생해 평택역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또 1998년 여름에는 참여연대, 민노총 등 33개의 단체들이 모여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를 꾸렸다. 이제 에바다 정상화 투쟁은 평택과 서울을 넘어 전국 곳곳으로 확산됐다.

"오히려 잘 된 선생"

15만원이 전 재산이었던 시절, 밤 12시가 넘어 오산, 송탄 시장을 돌며 고철과 빈병을 모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새벽 4시쯤 되면 승용차에 가득할 만큼 폐품이 쌓였다. 6개월 된 아이의 우유 값을 벌기 위해 그런 고역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깜깜한 상황 속에서도 가슴 속에 은근히 솟구치는 뭔가가 있었다. 바닥을 치고 나면 차고 오를 일만 남는 법이다. 7년간 버틸 수 있었던 힘도 분노보다는 유쾌함이었다. 그때부터 권오일 교장의 별명은 '오히려 잘 된 선생'이었다. 극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오히려 잘 됐다"는 말이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그건 바닥을 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일 것이다. '오히려 잘된 선생'의 느낌은 학생, 교사들에게 빠르게 전이됐다. 그 시절 에바다 투쟁현장을 방문한 외부인들은 마치 실성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을 만큼 그들은 즐겁게 싸웠다.

권오일 선생님은 뼛속 깊이 유머가 밴 사람이다. 대학 입시 때 얘기다. 입시 2개월 앞두고 입시준비에 들어갔다. 대학에 대한 열망은 가득했으나 아는 것이 없던 시절, 권 선생 특유의 위트가 발동했다. 수학 지식이 전무했던 그가 선택한 것은 14년치 기출문제 분석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 분석이 아니라 정답 분석이었다. 사지선다 답변을 쭉 써놓고 비중별 분석을 했다. 시험 당일 문제지는 덮어두고 답지에 통계적, 동물적 감각을 살려 일필휘지로 체크해 갔다. 세계사 공부는 그때 한참 유행이었던 영화배우 이소룡 권법을 요소요소에 배치해 외웠다. 그때 외운 것들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결국 하늘도 그 유머를 알아 봐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에 합격했다. 이후 1993년 에바다 학교에 체육교사로 부임해 1996년부터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고, 7년 싸움 끝에 에바다를 정상화시킨 뒤 2011년 교장으로 부임했다. 좀처럼 믿기 힘든 그의 세상살이 이면에는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만의 에너지, 즉 깊이 있는 위트가 자리잡고 있었다.

사소한 것에도 눈물겨운 힘이 있다.


▲ 권오일 에바다 학교 교장.


교장이라고 해서 행여 무게 나가는 검정 차를 타지는 않았을까 했는데 역시나 덜컹거리는 노란 봉고차를 손수 몰고 나타났다. 게다가 '에바다 학교 탁구 선수단'이란 글자를 어찌나 크고 박아놓았는지 야광이 아닌데도 밤길에 눈이 부셨다. 7년의 싸움, 9년의 애정이 뒤섞인 그의 현재엔 사소한 것에도 눈물겹게 하는 힘이 있다.

전국 최초로 한옥 기숙사를 지었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장애인 국가대표 탁구선수를 배출했다고 얘기할 때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가끔씩 교육청 민원으로 곤란을 겪는단다. 학교에 대한 비리나 불만이 아니라 에바다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장애인 학부모들의 호소성 민원이다. 에바다가 걸어온 지난한 세월을 되새겨보면 가히 행복한 비명이다.

그가 어떤 자랑을 하던, 지금의 몇 배를 하던 밉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우리에게 계란이 바위를 깨는 현장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의 말처럼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계란으로 칠 때 바위는 기스 하나 남지 않지만 계란이 바위틈으로 흘러 씨앗의 양식이 되고, 씨앗이 커서 뿌리가 굵어지면 바위를 쪼갤 수 있다는 '생명론'이다. 다른 한 가지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모습에 다른 누군가가 돌을 던지거나 정과 망치로 깨트릴 수도 있다는 '선도론'이다.

운동합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쳐있다. 행사가 있다고 해서 가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일 때가 많다. 속 시원하게 이기는 싸움도 별로 없다. 그런데 가끔씩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승리를 맛본다.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들의 힘이다. 우리 주변 곳곳에 계란을 먹고 자라는 씨앗이 있을 것이다. 스무 살 생일을 맞은 다산이 뿌린 계란들도 도처에 잠복해 있을 것이다. 권오일 선생님의 삶속에서 '잠복의 힘'을 되새긴다. 
      
■ 글 : 정미현 다산인권센터 벗바리 
 프레시안 원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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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수원참여예산네트워크>의 장애인 농성 지지 성명[성명] <수원참여예산네트워크>의 장애인 농성 지지 성명

Posted at 2012.05.28 13:27 | Posted in 논평,성명,보도자료

* 수원지역 11개단체가 구성하고 있는 <수원참여예산네트워크>에서 발표한 성명입니다.



수원시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법정기준에 맞는
 
추가 예산을 편성하라.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활동보조생활시간 확대’를 위한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수원시청 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 요구의 핵심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 따른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을 법적 요건에 맞추어 확보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수원시는 농성 6일째인 오늘까지도 예산과 절차 문제를 들며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수원시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즉시 면담을 수용하고 조속히 예산편성을 해야 한다. 수원시가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근거로 제시한 예산부족은 수원시가 이에 대한 해결의지가 없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예산은 여러 가지 적절한 기준에 의해 편성되는 것이며, 이런 기준에 따라 위험성, 긴급사안, 사회적 약자 등에 우선적으로 편성되어야하는 우선권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시급히 추경예산에 반영하거나 2013년까지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활동보조 시자체 추가시간 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수원시의 자체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라 예산반영을 해야 한다.  

또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러한 주장을 담은 면담요구를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한다. 

수원시가 주요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시민참여는 어떤 제도나 틀로 규격화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의 의지가 표현되는 과정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특히나 장애인, 빈곤계층 등의 사회적 약자는 이러한 시민참여과정에서 배제되기 쉽기 때문에 더더욱 제도를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예산마련을 하겠다는 주민참여예산취지를 비추어도, 장애를 가진 주민의 구체적인 요구가 반영되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염태영 수원시장은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면담과 내용을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한다. 

-수원시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법정기준에 맞는 추가 예산을 편성하라.
-수원시는 장애인 활동보조 추가시간을 확대하라. 
-수원시장은 성의 있는 자세로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면담을 수용하라. 
-우리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확충을 요구하는 장애인농성을 지지한다.


2012. 5. 28
수원참여예산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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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수원시는 장애인들의 간절함을 ‘계산’하지 말라[성명] 수원시는 장애인들의 간절함을 ‘계산’하지 말라

Posted at 2012.05.27 17:53 | Posted in 논평,성명,보도자료

수원시는 장애인들의 간절함을 ‘계산’하지 말라
우리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확충을 요구하는 장애인농성을 지지한다 



오늘로써 <경기420 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12일째 경기지역의 시군을 누비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활동보조생활시간 확대’를 요구하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청에서 출정식을 시작으로 군포, 안산, 광명, 김포, 평택을 돌아 “두 바퀴로 가는 세상 보도 순회투쟁”의 마지막으로 23일 수원시청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수원시에 도착하기 전까지 방문한 모든 시에서 예산편성의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경기도 31개 시군중 가장 예산이 많다는 수원시는 ‘예산이 없다’ ‘작년에 수원단체들과 합의했다’는 이유로 장애인들의 요구와 면담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 앞에 예산과 형평성 논리로 완고하게 버티고 서있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요구는 너무도 간략하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 따른 44대의 특별교통수단 확보하라는 것이다. 예산이 부족하면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계획을 내오라는 것이다. 법을 지키라는 것이고, 장애인 차별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요구에 대해 수원시민사회단체들은 수원시가 장애인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바란다. 이번에 다른 시와 합의한 내용을 보면, 이들의 요구는 무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쉬운 모습이 하나 더 있었다. 수원시는 24일 오전 시청 본관에서 “장애인 생존권 외면하는 수원시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하려고 모인 장애인 당사자들과 연대단체 관계자들이 본관로비에 진입할 수 없도록 청사직원과 남성공무원 전원을 불러 모았다. 이들은 고압적인 자세로 휠체어 장애인을 가로 막았다. 민원인들과 외관상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이들의 입장은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들은 출입을 통제했다. 이것은 자신의 몸에 대한 원망으로 살아온 장애인들에게 수치심과 자괴감을 주었다. 이는 심각한 인권침해로 국가인권위에 진정해야할 사안이다. 

수원시는 장애인들의 면담요청에 성실히 임해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이들의 요구를 예산으로 셈할 수 없다. 작년 일부 단체와 합의했다는 것으로 수원시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장애인들의 간절함을 ‘계산’하는 것은 생존권을 유린하는 행위와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수원시는 시청본관봉쇄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침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라.
수원시장의 성의있는 면담을 요구한다.
수원시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법정기준에 맞는 추가 예산을 편성하라.
수원시는 의지를 가지고 장애인활동보조 추가시간을 확대하라.


2012년 5월 25일

수원지역시민사회단체 일동
(경기복지시민연대, 다산인권센터, 수원나눔의집, 수원민예총, 삶터, 수원여성회, 수원여성의전화, 수원이주민센터, 수원참교육학부모회, 수원환경운동센터, 수원환경운동연합, 민주노총수원지부, 수원KYC, 경기민언련, 경기여성단체연합, 경기한국노동보건연구소, 다함께경기지부, 붉은몫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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