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글] 314 모두가 굴뚝인이다.[사진글] 314 모두가 굴뚝인이다.

Posted at 2015.03.16 10:33 | Posted in 활동소식/이슈&사람


ⓒ 안병주


보자, 그러니까 '희망버스'란 단어가 2011년 한진중공업에 내려간게 시작이었으니, 올해로 4년이 시간이 흘렀습다. 아직 희망버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평택입니다. '굴뚝인' 이창근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지난 3월 14일 토요일, 봄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그 날, 조그만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희망의 봄'이라는 단어가 목에 걸립니다. 안그래도 저 현수막을 버스에 다는 것도 우여곡절끝에...여튼 낯익은 얼굴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 안병주



7년전, 공장위로 헬기가 떠다녔던 그 때 그 시간에도 보였던 저 간판은 그대롭니다.


ⓒ 안병주


저 출입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고 싶다고, 7년의 긴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벽마다 출근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밖에서 싸우는 동료들을 보면서 안에 있는 동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온갖 잡념이 스치는 정문.



ⓒ 안병주


회계조작도 들어나고, 조작된 서류로 정리해고 했다면 그 정리해고도 당연히 무효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은 것이지요. 법의 잣대는 고무줄인가 봅니다. 아니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닐까요.


ⓒ 안병주


굴뚝밖 곳곳에는 마음들이 모아져 있었습니다. 응원하고 사랑하고 연대하겠다는 글귀가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 안병주


오늘도 내일도 함께 할게요.


ⓒ 안병주


쌍용차 정문 앞에는 여전히도 분향소가 차려져 있습니다. 7년전 정리해고 이후 돌아가신 26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이 소박한 분향소는 여전히 쌍용차 정문앞에 있습니다.


ⓒ 안병주


수백대의 팔려나갈 자동차와 그 공장안을 순찰하는 경찰. 저렇게 생산된 차는 유유히도 도로를 질주할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피와 땀은 저 쌔끈한 자동차에 흔적도 남지 않습니다. 


ⓒ 안병주


공장안 굴뚝에서는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이창근이 피우는 담배연기 같아 보입니다. 나 여기 있다고 알리는 봉화연기 같았습니다. 


ⓒ 안병주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무대에 섰습니다. 기나긴 싸움끝에 얼마전에야 비로서 복직이 완료됐다고 합니다. 길고 지루한 싸움은 해고의 고통보다 어쩌면 더 고통스럽니다. 쌍차 노동자들은 7년을 싸우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 안병주


가족을 잃은 슬픔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도 무대에 올랐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간절함을 눈물로 말합니다. 이 아픔들이 쌍용차 공장 앞에 있습니다.


ⓒ 안병주


밀양 주민이 이창근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밀양에 왔던 쌍차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 아픔에 밀양의 할머니들도 함께 하고 있다고, 모두가 아파도 그 아픔을 나누면 희망이 보일 것이라고, 이창근에게 편지를 올렸다.


ⓒ 안병주


공장 앞 거리는 금새 북적이는 장터로 변했습니다. 아이들은 줄을 넘고 그림을 기르고, 여기저기 노랫소리와 물건 파는 소리에 사람냄새가 가득합니다. 고통의 에너지보다 흥겨움이 가득합니다.


ⓒ 안병주


아이들이 그리는 굴뚝, 무슨 생각을 하며 그릴까...그래도 정성들여 색깔을 칠하는 손이 마냥 곱습니다.


ⓒ 안병주

 

한땀 한땀 바느질로 글자를 완성하는 사람들. '굴뚝같은' 그 뒤로 무슨 글자인지 사뭇 궁금해지는 바느질입니다. 완성된 글자를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


ⓒ 안병주


꽃밭에 누운 사람들. 진짜 한번 환한 꽃밭에 누워 하늘을 마음편히 쳐다보고 싶은 노동자. 그 노동자들은 하염없이 굴뚝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 안병주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아픔이 아픔을 아는 법입니다. 


ⓒ 안병주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 안병주


가수 지민주님은 굴뚝을 향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가 바람을 타고 굴뚝으로 흘러갑니다. 마음을 울리는 노래는 공장의 벽을 넘어 굴뚝으로 흘러갑니다.


ⓒ 안병주


이제 굴뚝엔 이창근 혼자입니다. 김정욱님은 교섭을 위해 내려왔습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만든 티볼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 안병주


선을 만든 이들은 누구고, 선을 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누굴까요. 선을 넘어 굴뚝을 올라간 이창근은 범법자 일까요? 저들이 쳐놓은 선은 '넘으라고' 만든 선이 아닐까요?


ⓒ 안병주


굴뚝이 보이는 철망앞에 자물쇠가 걸렸습니다. 함께 살자 약속을 걸었습니다. 우리 함께 살 수 있을까? 오늘, 우리 모두가 굴뚝인이 되었습니다.


ⓒ 안병주

 

 

어떤 경우 | 이문재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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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쌍용차 평택공장 굴뚝에 봄을 올리러 갑니다.[3/14] 쌍용차 평택공장 굴뚝에 봄을 올리러 갑니다.

Posted at 2015.03.10 18:18 | Posted in 공지사항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이창근과 김정욱님이 올라가 있는 굴뚝에도 봄은 오겠지요?

사람은 내려오고 봄이 올라가야 합니다.


봄을 올리러 3월 14일 쌍용자동차 굴뚝앞으로 출발합니다.

수원에서 함께 출발하실 분들을 기다립니다.


■ 출발시간 : 3월 14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 출발장소 : 수원역 파출소 앞 (오산방향)

■ 참가신청 : 장혜진 010-2014-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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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빠 말 믿은 딸아이, 세월호 타고 떠났다[기고] 아빠 말 믿은 딸아이, 세월호 타고 떠났다

Posted at 2015.03.10 15:00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쌍용차 자전거 희망 행진 나선 세월호 유가족 세희아빠 임종호씨


오는 14일 쌍용차 희망행진이 김정욱, 이창근 굴뚝 농성장 앞에서 열립니다. 이를 앞두고 지난 8일 서울에서 평택까지 응원 행렬이 자전거를 타고 굴뚝을 향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세월호 유가족 고 임세희양의 아빠 임종호님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굴뚝 앞으로 갔던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 출발하는자전거행진단 ⓒ 안병주


세희 아빠 임종호씨에게 자전거 타기를 권유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그러자"고 대답했다. 전날(지난 7일) 강릉에서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 콘서트 일정이 있어 잠시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때문에 그가 낼 수 있는 시간은 주말과 밤 시간밖에 없다. 혹시라도 약속된 일정이 있는지 생각했던 것이다. 잠시도 쉴 시간 없는 그가 수원에서 평택까지 짧지 않은 거리, 자전거를 탔다. 세월호와 직접 관련된 일도 아닌데 고마웠다. 그러나 고맙다는 인사를 그는 가볍게 거절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서는 사람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마울 게 뭐가 있어요. 이게 내 일인데. 내가 금속노조 조합원이기도 하지만, 저기 굴뚝에 올라간 사람 일이 남의 일인가, 내 일이지. 간담회나 북콘서트 가서 늘 하는 얘기지만, 내 일이라 생각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1등 하면 좋겠다 하지만,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는 2등이고 3등, 10등, 40등인데. 다 재벌 회장 되는 거 아니잖아요. 회장만 있어서도 안 되고. 대부분 사회 나와서 노동자 되고, 비정규직 되잖아. 그럼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가 남 일인가, 내 자식 일이고 내 일이지요.

그래서 나는 남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월호) 사고 있기 전에 쌍용차에도 많이 왔었어요. 희망 텐트하던 해에는 공장 앞에서 노숙도 했었어요. 그때 정말 추웠는데... 그래서 낯설지도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해야지요.


세희 아빠가 근무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는 금속노조 인천지부 소속의 사업장이다. 그는 기술직으로 입사해 10년째 근무 중이다. 2007년부터 노조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그 해 산업 안전 담당으로 일했고, 2년 뒤에는 노조 사무장, 그 다음에는 노조 지회장도 역임했다. 노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 자전거행진에참여한 세희아빠 ⓒ 안병주


열심히 했지요. 뭔가 바꿔보고 싶었어요. 우리 회사 노조는 굉장히 단단해요. 단체 협약이 잘되어 있어서 회사가 외주 문제 결정할 때도 노조랑 상의해야 할 정도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하면 할수록 답답한 게 있었어요. 우리 회사 노조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전체적으로 너무 어려워졌어요. 쌍용차 문제도 있고, 여기 저기 정리해고다, 비정규직 문제다... 해결되지 않고 산적한 문제들이 자꾸 생기더라고요. 그게 노조 활동하면서 내내 부대꼈어요. 그런데 노동운동한다는 분들 만나면 막걸리 먹으면서 과거 타령이나 하고...

그게 별로더라고. 과거 얘기가 아니라, 현재를 바꿔야 하는데, 의기투합이 잘 안 돼서 답답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노조 활동을 중단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어요. 노조 활동하면서 매 주말마다 집회다, 수련회다, 뭐한다 하면서 시간을 못 보냈거든. 세희랑 세희 동생 경원이는 점점 커가는데,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별로 없겠더라고. 그래서 노조 활동 접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 그런데 세희가 그렇게 된 거예요. 내가 팔자가 그런가 봐(웃음). 결국 요즘은 어디랄 것도 없이 주말이고 할 것 없이 다니고 있잖아.


세희는 아빠 말이 맞다고 믿는 아이였다. 자기 고집 세우던 일도 지나고 보면 아빠 말이 맞았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부터 늘 아빠 말을 따랐다. 수학여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에도 담겨 있다. 가기 싫다던 수학 여행을 떠난 길에도 아빠의 조언이 있었다. 그래서 아빠는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세희는 아빠 말을 믿는 아이였어요. 아빠 조언이 맞다는 경험을 많이 하고서 더 그랬지. 아빠 생각에는 이럴 거 같아 라고 하면, 그걸 따랐지. 강요하지 않았는데 세희는 그랬어. 수학 여행갈 때도 배 타고 가기 싫다고 하는데 내가 그랬거든. 배 타고 가면서 친구들하고 친해지고 좋은 거다. 그리고 그렇게 큰 배는 위험하지 않아. 무슨 일이 생겨도 하라는 대로 잘 따르면 별 일 없을 거야.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와... 그런데 그 일이 생겼잖아요. 내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 이후로는 세희 동생 경원이한테 아빠 말대로 하라는 말을 못하겠어. 미치겠어.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지.


그는 수원에서 평택까지 익숙했던 길을 달렸다. 굴뚝이 보이는 쌍용차 정문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김정욱과 이창근, 그리고 그의 동료들 앞에 섰다. 힘차게 '투쟁' 구호도 외쳤다. 노조 위원장으로 외쳤던 구호였고 세월호 가족으로 외치고 있는 구호다.



▲ 쌍용차자전거행진 마치고 발언하는 세희아빠 ⓒ 정택용


 

제가 여기를 자주 왔어요.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왔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세월호 가족으로 왔습니다. 늘 함께 해 왔지만 오늘은 남다릅니다. 누구나 함께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일로 겪게 되는 일 앞에서는 또 달라집니다.

세월호가 그렇고 쌍용차 해고 문제가 그렇습니다. 사건을 겪으면서 더 뚜렷하고 아프게 와 닿는 게 있습니다. 이런 일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남의 일이지만 내 일처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런 일은 닥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김득중 지부장과 세희아빠 ⓒ 노순택



    

그가 '행진'에 동참한 이유

세희가 없는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 그와 가족들은 그 사실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지난해 초에 네 가족이 함께 떠났던 일본 여행 같은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곳 온천에서 엄마와 세희가 함께 보았던 별도 이제 볼 수 없음을 안다. 아빠는 일을 할 때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잊혀지지 않는 것을 계속 잊지 않기 위해서 간담회를 다니고, 집회를 다니고,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그를 요청하지 않아도 필요하면 간다. 지난해 4월 말 세희를 일찍 찾았지만 팽목항에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 곁에 누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오랫동안 그 곁을 지키기도 했다. 의경으로 근무하던 21년 전 서해 페리호 사고로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지 겪기도 했고, 비슷한 참사로 사랑하는 세희를 잃기도 했기 때문에 그는 잘 안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 잊지 않는 사람들이 없으면 모든 것은 너무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을 안다. 그래서 쌍용차 희망행진을 위한 자전거 길에 나섰다.

경원이는 누나가 다니던 단원고에 입학했다. 누나를 잘 따르던 아이. 맞벌이 부모님 대신 자신의 밥을 챙기고 보살피던 누나를 잊지 못하는 경원이가 단원고 1학년이 되었다. 우연하게도 누나의 2학년 반, 번호와 같다.

그런 경원이에게 아빠가 자신있게 다시 "아빠 말을 믿고 따라도 된다"고 말하는 시간이 와야할 텐데. 좋은 세상을 위해서,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그가 웃는 세상이 되어야 할 텐데...

굴뚝 위에 있는 사람들, 세월호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함께 웃는 날이 온다면 그때 열심히 살아온 아빠 말이 맞다고, 아빠는 경원이에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세희도 아빠에게 "아빠 잘했어. 아빠 말은 언제나 늘 옳았어. 괜찮아요" 말해주지 않을까. 세희 아빠 임종호씨의 자전거 행진이 헛되지 않도록, 많은 이가 굴뚝을 향해, 세월호 진실을 위해 마음 모을 수 있기를.



▲ 굴뚝농성장 앞에서 발언하는 세희아빠 ⓒ 정택용



2015. 3. 10. 오마이뉴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오마이뉴스] 아빠 말 믿은 딸아이, 세월호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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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차] 고공농성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지원은 인권조치입니다.[쌍차] 고공농성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지원은 인권조치입니다.

Posted at 2014.12.24 16:16 | Posted in 활동소식/이슈&사람

지난 12월 22일 쌍용자동차 김정욱, 이창근 두 명의 해고자가 올라가 있는 70m 굴뚝을 찾았습니다.

사람 얼굴은커녕 그나마 손을 힘차게 흔들어야 '저기 사람이 있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이거라도 해야 겠다 싶어 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안보이는 2014년 겨울.

사진 몇장으로 대신합니다.


ⓒ 안병주


ⓒ 안병주


 

ⓒ 안병주



ⓒ 안병주



ⓒ 안병주



ⓒ 안병주



ⓒ 안병주


ⓒ 안병주



[관련기사]

"쌍용차 굴뚝 농성장에 하루 세끼 제공하라" | 오마이뉴스

"혹한 속 굴뚝 농성자에겐 '따뜻한 밥'도 사치?" | 프레시안

“쌍용차, 굴뚝 농성자 인도적 지원하라” | 한겨레


“고공 농성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지원은 인권조치입니다”
- 쌍용차의 인도적 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인권단체 요구사항 -


1. 인도적 조치의 필요성

농성 시작한지 만 하루가 되어서 식사와 약간의 물품이 전달되었습니다. 사측은 농성중인 동료들을 걱정하는 해고 노동자들이 방한용품과 통신수단 유지를 위한 배터리 충전을 요구하자 ‘농성이 길어질 수 있다’ ‘그 정도도 결의 못한 거냐’ ‘호텔처럼 다 갖추려 하느냐’는 등의 대답으로 거절했습니다. 15일 “절대 타협하지 않고 단호히 대처하기 위해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 밝힌 이후 ‘하루 단 한번 그것도 밥과 물 외에는 전달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고했습니다.

현재 상황은 하루 한번 식사가 올라가고 최소한의 온수만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두 농성자가 신뢰할 수 있는 이가 확인 가능한 굴뚝 앞에서 직접 전달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준비한 배터리는 당연히 한계가 있으며 그 마저도 온도가 낮아 쉽게 방전되고 있습니다. 가지고 올라간 1인용 텐트와 비닐은 비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입니다.

농성자들은 허리와 달팽이관 등의 치료를 받아오는 상황이었습니다. 혹한에 동상은 물론이거니와 지병이 악화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굴뚝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불완전 연소되는 유해 연기에도 노출되어있습니다.

이에 우리 인권단체들은 농성자들이 농성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꺽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기본물품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인도적인 조치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에 대해 쌍용자동차 사측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2. 요구사항

첫째 식사는 매번 끼니마다 제공되어야 합니다. 현재처럼 하루 한번만으로는 엄동설한의 추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둘째 식사등 물품 지원은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에 의해 전달되어야 합니다.
셋째 혹한의 고공에서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방한용품(텐트, 따뜻한 물과 방한기구 및 전기, 방한복과 침낭 등)은 제공되어야 합니다.
넷째 70미터 고공에서 필요한 의사소통은 절대적인 권리입니다. 의사소통에 필요한 통신수단(배터리와 전기)는 제공되어야합니다.
다섯째 농성이 일주일을 넘기고 있습니다. 의료진의 건강검진과 치료, 의약품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여섯째 생리현상을 해결 할 수 있는 간단한 위생시설이 공급되어야합니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제공은 농성자의 요구사항과 별도로, 어떤 상황과 어떤 처지에서도 모든 인간이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이며, 조건임을 확인합니다. 이를 요구하는 것은 절대 과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를 지키는 것이 아주 필수적이며 기본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쌍용자동차 사측이 이러한 인도적 조치를 빨리 시행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갈등과 반목은 절대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도적 시각으로 이를 요구하며 이에 대해 끝까지 주시할 것입니다.


2014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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