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래군들, 아직 우리가 감옥에 가지 않았을 뿐이다[기고]박래군들, 아직 우리가 감옥에 가지 않았을 뿐이다

Posted at 2015.07.31 14:56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진실을 짓밟는 이들과 세월호 참사


역사에는 야사가 있기 마련. 최근 몇 년 동안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들이 많았다. 어쩌다 보니 태풍의 눈 같은 역사 속에 있었다. 인권운동이라는 같은 업계에 있다 보니 박래군과 나는 사건 들 속에서 자주 만났다. 대부분 선배인 그가 불렀고 때로는 내가 엉겼다. 야사를 함께 만들었고 가끔 술자리에서 소회를 나누며 웃기도 했다.


    ▲ 15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16연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래군 상임운영위원(가운데)이 '416연대를 

        지켜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미디어스


희망버스 야사. 어떻게 처음 희망버스가 구상되었는지, 짚어 보니 그것도 우연 같다. 광주에서 1박 2일 회의 마치고 승합차 한 대에 우겨 타 서울로 올라오던 길이었다. 어디쯤인지 멈춰 점심을 먹을 때였다. 송경동 시인이 먼저 말을 건넸다. “김진숙 누이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녀요. 뭐라도 해 봅시다.” 당시 몇 일째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진 중공업 크레인 농성이 장기화되고 있었다. 모두 김진숙님 안부를 걱정하고 있는 차였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어떤 형태일지 알 수 없었다.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기차를 타자, 버스를 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송시인은 말 떨어지기 무서운 사람이다. “래군형은 통장을 만들고 박진은 글을 쓰고. 그렇게 사람을 모아 봅시다.”


박래군이 희망버스 통장에 이름을 내고, 오랫동안 법정에 서게 된 계기는 그것이었다. 그가 희망버스 법정에 서게 될 때, 가서 꼭 증언해주겠다고 했던 이유도 그래서다. 아쉽게도 다른 일들이 몰려, 박래군은 통장 개설 외에는 한 일이 별로 없었다. 검찰은 그날 자리를 사전 모의로 삼겠다고 덤빌지 모르지만… 단지 ‘우리 무엇이라도 합시다,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는 마음이 모였을 뿐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점심 먹은 모두를 형사 처벌하던지. 희망버스 타자고 선동 글 쓴 나는 왜 잡아가지 않는지. 어떤 경우든, 화살은 박래군이 먼저 맞았다. 대추리에서도 용산에서도 희망버스, 세월호에서도 그랬다. 현장에 함께 했던 동료들 마음은 그래서 더 아프다. 또 래군이 형이야…


    ▲ 인권 헌장 공청회 현장에서 박래군 소장은 밑도 끝도 없는 모욕과 구체적 폭력에 시달렸다. (사진=오마이뉴스)


세월호 참사 집회로 그가 다시 구속되었다. 실체적 법리는 사실, 소용없다. 집회가 차벽에 막히고 과격해 졌다. 과격해지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청와대 앞까지 간들, 도대체 무슨 위험이 있겠는가? 무릇 민주사회라는 것이 소란해야 하며 누구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는 것이 아닌가. 민주사회 통치자들은 마땅히 귀를 열고 들어야 하는 것이다. 막힌 길 끝에서 누군가 경찰차를 흔들었을 것이다. 책임을 모두 박래군이 져야 하는가? 그가 속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나 4.16연대가 집회 신고를 냈다 한들, 수 천 사람 행위를 다 책임질 수 없다. 책임져야 한다면 그를 구속시킬 것이 아니라, 왜 사람들이 그토록 청와대로 가려했는지 물었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문제라서 사람이 모이는가, 그렇다면 같이 해결해보자, 당신이 책임 있게 나설텐가? 라고 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 통치자들은 틀려먹었다. 어떤 것이 책임인지 법정에서 따지려 들 뿐, 사회를 열어 듣지 않는다. 하긴 그러면, 박근혜 정부가 아니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독재의 유산이라 누가 욕하겠는가.


박래군 구속 이후 많은 이들이 그를 부른다. 소중한 목소리다. 먼저 잡혀가 아직도 구속 중인 이들이 떠올랐다. 함형재, 김현식, 강광철 등 6명이 여전히 감옥에 있다. 얼마 전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도 있었다. 작년부터 세월호 집회 구속자는 12명이다. 올 5월까지 연행자 수는  551명이다. 정부는 바다 속에 빠진 진실을 알고 싶어 거리로 나온 이들에게 죄를 물었다. 왜 궁금해 하는가? 왜 알려 하는가? 왜 정부에게 책임을 지라 하는가? 구속된 이들, 연행된 이들, 소환장 받은 이들, 거리에 나온 이들, 거리에 있지 못했으나 마음 아파 동동 거린 이들, 그런 모든 이들에게 진실을 알 권리는 죄가 되었다. 카카오 톡을 뒤졌고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다. 집회 현장에서 잡힌 현행범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감시와 사찰이 일상화되었다. 참사의 피해는 자유의 억압으로 확대되었다. 이 막막한 바다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일까.



         ▲ `용산참사'와 관련 불법 집회 주도 등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종회, 박래군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과 남경남 전철연 의장 등 수배자 3명이 2010년 1월 11일 오후 명동성당에서 경찰에 자진 출두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 발표와 나온 유족과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호송차에 오르는 모습 (사진=민중의소리)


맞벌이로 아이 키우는 김현식 구속은 벌써 5개월이 되어 간다. 남편 없는 빈자리를 채우며 종종거릴 아내와 아빠 얼굴 보지 못하는 아이가 떠오른다. 집회 현장이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던 함형재 구속 기간도 같다. 묵묵하던 그이는 한 뼘 구치소 창밖으로 어떤 풍경을 담고 있을까. 일산 킨텍스에서 환경미화업무 하던 강광철은 구치소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80세 넘으신 아버지 병세가 위독해 졌다. 그러나 그의 구속은 정지되지 않았고 아버님은 돌아가셨다. 경찰 방패를 뺏고 폭행했다는 것이 구속 이유였지만 그는 방패를 뺏지 않았다. 그의 행위는 영장실질심사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있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어떨까.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며 누군가의 친구였을 이들. 그들이 모두 감옥에 있다. 박래군과 같이.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아직, 감옥에 갇히지 않았을 뿐이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로 사라진 304명과 그의 가족들, 살아나온 이들의 고통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그들 곁에 서있었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형사 입건 된 사람은 셀 수도 없다. 그들 가족, 염려하는 친구까지… 참사 범위는 하루가 다르게 확대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인권 및 기본적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평화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국가는 이 선언문에 언급된 권리를 합법적으로 행사했다는 이유로 받게 되는 어떤 폭력이나 위협, 보복, 사실상 또는 법률상의 불이익, 압력, 기타 자의적 행위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이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

1998년 12월 9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인권옹호자 선언 일부다. 한국정부는 인권옹호자들에게 도전하고 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자들, 기본권과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온몸으로 막는 자들에 대해 보복하고 불이익을 주고 있다.


박래군을 감옥에 보낸 날, 밤새 뒤척였다. 수면 무호흡으로 양압기 없으면 제대로 자지 못하는 그가 걱정되었다. 몇 해 만에 다시 감옥으로 아빠와 남편을 보낸 가족들 얼굴도 떠올랐다.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 심정은 어떨지…. 그러나 비단 그 때문만 아니었다. 박래군으로 인해 잊고 있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너무 잊고 있었구나, 함형재와 김현식들을…. 어쩌면 내일 당장 압수수색 영장 들고 우리 집 문 밀고 들어올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두려움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감당하며 살아야지 생각할 때마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 얼굴을 들여다본다. 얼마 전부터 고장 난 압력밥솥도 생각났다. 고무 패킹을 갈아야하는데…. 다산인권센터 후원행사는 어쩌지…. 자유를 빼앗긴 다는 것, 일상이 툭하며 깨져 버리는 것.


      ▲ 2014년 5월 28일 KBS 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촛불(길환영 퇴진)에서 박래군 인권활동가가 "승리했다는 소식 듣고 

         싶다"는 유가족들의 말을 대신 전했다ⓒ미디어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매번 바뀌었지만 박래군 구속은 으레 그래야 하는 일처럼 되돌이표다. 육십이면 은퇴하고 소설 쓰겠다는 그는 열 살 차이 나는 내게 종종 말했다. “나는 5년 남았다. 너는 10년 남은거야. 아니다. 너는 15년만 더 해라.”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퉁명스레 대답했지만 내 소원도 그것이다. 래군형이 매번 주장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에로 소설’을 쓰면 독자로써 읽고 싶다. 어쩌면 그때, 부재를 감당한 누군가 감옥에서 소설을 읽을지도 모른다. 내 몫이어서 래군형이 다시는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다면 영광이겠지. 은퇴 전까지 역사에 남을 야사 몇 개 더 쓰고 싶다. 함께 쓰고 싶다. 그가 빨리 감옥에서 나와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60세까지 5년밖에 안 남았다. 후배 된 도리로 그를 좀 더 부려먹어야 한다.


박래군과 함형재, 김현식들은 빨리 돌아와야 한다. 물론 기다리는 것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만은 아니다. 은혜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일감들도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는 어서 그들을 과로의 세계로 석방하라!


2015. 7. 30. 미디어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진실을 짓밟는 이들과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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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다시 진실] 그날도 그 이후로도 책임지는 국가는 없다[용산, 다시 진실] 그날도 그 이후로도 책임지는 국가는 없다

Posted at 2015.01.26 11:33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 2009년 1월 용산참사 현장.


허허벌판인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몇 명이 기억할까. ‘용산참사’라는 고유명사는 들어봤지만 ‘여기가 거기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은 여전히, 아직도 6년째 개발 중일 뿐이다. 2009년 1월 20일 서울 한복판 한강로 대로변, 남일당 건물에서 망루 농성 중이던 철거민 5명과 진압 경찰 한명이 사망했다. 거대한 화재와 함께 사라졌다. 참사 이후 검찰은 철거민만 기소했고 그들은 4년에서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경찰 특공대 1명의 사망사건에 대한 재판만 있었고 아직 철거민 5명 사망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았다. 정당한 공무집행이기 때문에 기소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대법원은 2010년 11월 11일 기소 철거민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약 1년 10개월 만에 사법부의 최종 확정 판결로 용산참사 진실은 묻혔다. 그런데 그게 끝일 수 있을까? 6년이 지났지만 아직 아는 것이 없다. 대법원이 끝났다 한들, 진실이 밝혀졌다고 믿을 수도 없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려고 한다. “용산참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누가 그들을 죽였고 누가 그들 죽음의 진실을 은폐했는가…” 참사와 재난이 반복되는 한국 사회에서 1월 20일 화재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처럼. 원인도 밝힐 수 없고, 진실도 알 수 없다면 되돌이표처럼 돌아오는 슬픔 앞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냥 이대로 비탄을 기다리면 되는지 물어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6년 전 사건을 다시 들춘다. 먼지 덮인 서류들을 새로 읽었고 참사의 증인들을 만났다. 뚜벅뚜벅 참사의 새벽으로 걸어 들어간 걸음은 6년 전 그때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다시 진실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면 기꺼이 정면으로 마주하려고 한다. 의혹의 첫 출발은 참사를 지휘한 배후는 누구였으며, 그들은 책임졌는지 물어 보려 한다.

첫째 청와대는 몰랐는가

집권 초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선택은 공권력을 통한 강제 진압이었다. 법질서 확립을 주장하며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고 ‘합법보장·불법필벌’을 강조했다. 이런 과정에서 집권 2년차 이명박 정부는 서울경찰청장 김석기를 차기 경찰청장 후보자로 내정했다. 다음날 2009년 1월 19일 전철연 소속 용산4구역 철거민들과 전철연 회원들이 한강대로변의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옥상에 망루를 지으면서 농성에 들어갔다. 이명박 정권의 법질서 확립이라는 대원칙에 대한 정면도전 행위였다. 청와대로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원칙에 도전하는 전철연의 농성을 좌시할 수 없었고, 김석기 경찰청장 후보자로서도 이를 조기에 진압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망루 농성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지기도 전에 경찰 특공대를 투입하는 조기 강제진압 계획이 마련되었고, 이에 따라 농성 철거민들과 대화나 협상은 추진 하지 않았다. 곧바로 경찰력을 투입한 강제진압에 들어갔다.

쌍용차 진압, 청와대 직접보고 그렇다면 용산참사는?


2009년 8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농성 진압과 관련해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2012년 9월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이 강제진압에 반대하자 “대통령께 직보 해, 허락받았다”고 밝혔다. 쌍용자동차와 관련한 강제진압은 청와대에 직접 보고해 허락 받을 정도의 중대한 사안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철거민들의 망루 농성은 다를까? 평택에서 노동자들의 공장안 농성을 진입하는데 청와대가 개입했다면, 서울 도심 한복판 농성에 대한 태도는 어떠했을까. 서슬 퍼런 집권 2년차를 앞두고 있었다. 진압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매우 서툰 진압 전 과정, 집회시위진압 매뉴얼에도 어긋나는 진압…이것이 과연 김석기 경찰청장 후보자와 경찰 자체 판단만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청와대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개입하지 않았을까? 검찰 수사본부는 청와대의 개입설은 아예 수사대상에도 포함하지 않았다.



▲ 2009년 1월 용산참사 현장.



청와대는 왜 군포연쇄살인사건으로 용산참사를 덮으려 했을까?

2009년 1월 24일,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강호순이 검거되자 언론은 대대적으로 이 사건 보도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곧 청와대가 언론사들에 이메일로 보도 지시했음이 드러났다. 부인하던 청와대는 ‘보도지침’ 내용이 공개되자 이를 시인하고, 이메일 보낸 것으로 확인된 청와대 행정관을 해임했다. 이메일에는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랍니다. …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라는 내용들이 있었다. 이 신종 보도지침 사건은 국회에서 잠깐 따지다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지금이라도 다시 짚어보아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청와대 행정관 외에 책임질 윗선이 없다는 것인가?

둘째, “김석기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모든 현장 상황을 총괄하고 있었다”


참사 당시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는 검찰에 제출한 '사실관계 확인서'에서 "사건 당시 서울경찰청 집무실에 있었으며, 진압 작전 전후 휴대전화를 통해 보고받았을 뿐 실시간으로 직접 보고를 받거나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 검찰은 서면 질의서를 보내 무전 지시를 들었는지에 대해 "무전기는 있었지만 안 켜 놨다"고 답변서를 받았다. 무전기 전원을 켜 놓았는지 유무에 대해서는 추측할 부분이 아니라 객관적 자료로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며 결론적으로 "관련 로그자료 기록이 확보되지 않아 사실 관계를 알 수 없다"고 발표했다. 참사 초기 김석기 내정자가 현장에 있었는지, 현장의 상황을 지휘했는지는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검찰은 김석기 내정자를 단 한 번도 소환조사하지 않았고 결론적으로 “보고만 받았지 승인하지 않았다”(김석기 국회 답변)로 결론 내렸다. 참사 발생 1년이 지난 2010년 2월경 국가인권위는 "용산참사에 대한 경찰력 행사는 위법했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러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국가에 의한 범죄행위의 불처벌' 현상이 발생하고 법치주의에 심대한 장애가 발생한다"며 엄중한 처벌을 주장했다.

그러나 단 한명의 경찰도 책임 지지 않았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조 제2항의 경찰비례원칙에 어긋나는 경찰권 행사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른 정당한 직무집행이라고 할 수 없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위반된 다수 사안에 대해 대법원 등은 경찰관의 공무집행 위법성, 과실 등을 인정하여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용산참사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경찰의 위법한 과잉 진압이 주요 원인이었다. 따라서 철거민의 사망에 대한 경찰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설득과 대화과정 생략, 경찰특공대 투입요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찰력 투입으로 극단적 상황을 초래, 화재발생 물질 완전 소진 전 진압, 유류화재에 대한 미대책, 안전매트 등 안전장비 구비 없는 등 진압과정 안전조치 미실행)가 성립한다. 또한 경찰은 업무상 중대한 과실에 책임이 있다. 진압시 안전수칙 및 고도 주의 의무 위반 책임이 있다. 사망 등에 대한 예견 가능성 및 사망과 주의의무 위반 등의 상당인과관계가 존재 했다. 그러나 검찰은 모든 경찰책임자에 대해 무혐의로, 법원은 재정신청에 대해 기각함으로써 경찰의 법적 책임을 면책했다. 이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한다.





김석기는 현장의 상황을 지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하지 않으려던 3000천 쪽 기록 속에는 참사당시 무전녹취 대화가 누구의 것인지 드러난다. 사건 초기 확보된 경찰 무전녹취록의 대화와 현장 지휘부의 무선 내용은 누구의 대화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추가 수사기록을 보면 검찰의 경찰지휘부 신문내용과 무전녹취록 교차 비교로 무전 대화 나눈 이들이 일부 확인된다.

1월 20일 작전 당시 경찰 지휘부 위치를 보면, 용산 현장에는 김수정 서울청 차장 등이 있었다. 서울청에는 이송범 서울청 경비부장과 김원준 경비1과장이 경비계 상황실에 위치하면서 상황에 대한 총괄 지휘를 하고 있다. 상황실 옆방은 김석기 집무실이었다. 이송범은 진술조서에서 중요한 작전변경을 김원준 경비과장 혼자 했다고 진술한다. 김원준 경비과장 역시 “제 개인적으로 판단해서 용산경비과장에게 지시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현장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 김수정 서울경찰청 차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비과장이 단독으로 작전 변경을 지시했던 것이다. 심지어 작전변경은 근본적 변경이라고 언급되기도 한다.

당시 김석기 내정자는 사건 지휘 책임이 없음을 ‘무전기를 꺼 놓았다’는 납득할 수 없는 해명으로 회피했다. 진압 지휘 책임자 모두 법적 책임을 면책 받은 지금, 김석기 지휘책임을 묻는 것이 의미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건 초기에 김석기의 지휘 책임 추론이 가능한 이 상황이 밝혀졌다면, 어떠했을까. 정말 재판은 철거민들 책임만으로 끝날 수 있었을까. 무리하고 위험한 강제진압 책임을 진 경찰이 단 한명도 없는 상황이 가능했을까? 그래서 여전히 김석기 당시 내정자가 참사 당시 상황을 지휘했는지 여부는 중요한 쟁점이다. 현재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김석기는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참사의 책임자가 낙하산으로 정부기관에 버젓이 취임하고, 참사 이후 6년 동안 국가는 단 한명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반성하지 않는 국가 폭력 악순환은 다시 되돌이표로 돌아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새롭게 용산참사 진상규명 작업을 하면서, 우리가 발견한, 여전한 핵심은 그것이었다. “그날도 그 이후로도 책임지는 국가는 없다” 진압이 아니고 구조였다면, 살릴 수 있는 생명들에 대해서 말이다.


2015. 1. 22. 인권오름/프레시안 공동게재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인권오름] 그날도 그 이후로도 책임지는 국가는 없다

[프레시안] 용산참사, MB는 진정 몰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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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올해의 인권 10대 뉴스2012년, 올해의 인권 10대 뉴스

Posted at 2012.12.11 11:38 | Posted in 활동소식

2012년, 인권활동가들이 뽑은 

'올해의 인권 10대 뉴스'


본 결과는 <인권단체연석회의>가 12월 3일부터 7일까지 전국의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회원들이 50여가지의 인권이슈 중 투표를 거쳐 선정한 것입니다. 무순입니다.


◆ 2012년에만 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거리농성, 단식농성에 고공농성까지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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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럼비 바위 발파, 끝나지 않은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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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인권인물 현병철 인권위원장,국내외 반대운동 일어나. 청와대, 시민사회 반대 무시하고 연임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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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인권 발목 잡는 교과부, 초․증등교육법 시행령 개악으로 또다시 민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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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등급제 폐지와 활동지원 하루 24시간 보장을 요구하던 중증장애여성 김주영씨, 활동지원이 없는 사이 화재로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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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복지공단, 삼성전자 반도체 조립공정 ‘재생불량성 빈혈’을 산업재해로 첫 인정. 뇌종양 투병하던 삼성반도체 노동자 이윤정 씨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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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도, SJM에 기습 노조탄압 직장폐쇄 용역 수백 명 투입.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서 용역에 의한 폭력문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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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노동자 복직,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SKYACT_스카이공동행동이 출범. 2012생명평화대행진을 마치고 함께살자 농성촌 농성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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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와 공권력의 문제를 담은 <두 개의 문> 개봉. 개봉 3개월 만에 7만 3천여 관객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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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노조, '김재철 사장 퇴진' 170일 최장기 파업 (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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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고발] '시민 고발인단'을 모집합니다.[김석기 고발] '시민 고발인단'을 모집합니다.

Posted at 2012.07.25 15:02 | Posted in 공지사항



지난 7월 18일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 대관상영을 했습니다. 하루에 총 5개관에서 1200여명이 동시에 관람을 했습니다. 진실은 가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법'의 이름으로 정의를 뭉갤수는 없습니다. 용산참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이에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 위원회>에서는 김석기(용산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를 시민의 이름으로 고발하고자 '시민 고발인단'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김석기는 용산참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지난 4.11 총선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까지 나오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두개의 문> 관람객이 5만명을 넘었습니다. <두개의 문>을 봤던 분들께 시민 고발인단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해주세요. 어렵지 않습니다. 오는 8월 20일(월) 서울지방검찰청에 시민 고발인의 이름으로 모인다고 합니다. 모이기 어려운 분들은 고발장을 작성하셔서 아래 주소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다’며 “나는 고발한다!”는 격문으로 진실을 외친 100년 전 에밀졸라와 같이, 우리도 역사의 공범자가 아닌 그 날의 진실을 목격한 목격자로, 용산참사 책임자들 고발합시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1898년 <나는 고발한다> 에밀졸라)

※ 방법 : 아래 첨부된 고발장을 다운받아 작성 후 보내주세요.
    우편 : 서울 용산구 원효로 1가 75번지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 위원회> 앞
    팩스 : 02. 6008. 0273  
    메일 : mbout@jinbo.net
※ 기한 : 8월 16일(목) 까지
※ 문의 : 02-3147-1444 / 010-4258-0614(이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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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두개의 문> 수원상영, 1천여명 동시 관람[활동소식] <두개의 문> 수원상영, 1천여명 동시 관람

Posted at 2012.07.19 11:30 | Posted in 활동소식


용산참사의 진실을 다룬 <두개의 문> 수원상영회가 어제(18일) 수원CGV에서 진행됐습니다. 애초 4시, 7시 30분 두 개관을 대관했으나...밀려드는 예매를 감당하기 힘들어 결국 총 5개관을 대관하게됐습니다. 천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두개의 문>을 함께 관람했습니다. 수원시의 염태영 시장님을 비롯해 시청 공무원 3백여명도 함께 관람해 주셨습니다. 

 
김일란 감독님과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가 영화에 대한 소개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영화 시작전에 진행되는 관계로 관객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 그리고 다시는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모으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 <두개의 문> 수원상영회를 위해 힘써주신 천주교대리구청 양기석 신부님과 민주노총수원지부의 이선희 차장님 그리고 출연자 중 한명인 박진 활동가와 김일란 감독님의 기념촬영 ^^

 
전국적으로 5만여명이 관람한 <두개의 문>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용산참사의 진실의 문을 여는 출발입니다. 뿐만아니라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현장, 두물머리 등 제2, 제3의 용산참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꿔내는 시발점입니다. 함께 보고, 함께 기억하고, 함께 마음을 모아내는 계기입니다.

※ 이번 수원 상영회에서 남은 수익금과 현장에서 십시일반 모금된 금액은 전액 용산참사 유가족분들께 전달할 예정입니다. 

※ 함께 관람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주변분들에게 <두개의 문> 꼭 추천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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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용산유족과의 면담, 공식거절한 현병철을 규탄한다![논평] 용산유족과의 면담, 공식거절한 현병철을 규탄한다!

Posted at 2012.07.10 10:09 | Posted in 논평,성명,보도자료

어제(9일) 국가인권위원회앞에서 진행된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유가족, 구속된 철거민들의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에게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후 면담을 요청했으나 4시간을 기다린 끝에 나온 대답은 "2009년에 입장을 밝혔기에 유가족들을 만날 이유가 없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용산유족과의 면담, 공식거절한 현병철을 규탄한다!
4시간 동안 문전박대 끝에 준 답변은  “용산 건으로는 만나지 않겠다”


사진출처 : 민중의 소리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이제 뻔뻔함의 대명사에서 인면수심의 대명사로 등극하려는가! 어제 용산유족들이 면담을 하자고, 면담날짜를 잡아달라고 4시간이나 인권위원회에서 기다렸지만 문전박대를 당하였다. 용산 유족들이 4시간을 기다린 끝에 위원장으로부터 들은 답변은 “2009년 사건과 관련해서는 용산 유족과 만나지 않겠다”는 공식 거절이었다. 현병철은 2009년 용산 유족들과 구속자들에게 대못을 박았던 것을 참회하기는커녕, 자신은 당시에 입장을 밝혔다며 할 말이 없다는 후안무치의 태도를 보였다. 

현병철은 2009년 1월 진정된 사건을 1년을 끌어온 것도 모자라 재판을 받고 있는 용산참사 철거민에 대해 의견서를 제출하자는 안건을 다루던 2009년 12월 28일 전원위원회에서 11명의 전원위원 중 6명이 찬성했음에도 가결처리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회의를 페회시킨 바 있다. 이때 그는 유명한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며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위원장 연임에 따른 청문회를 준비하기 위해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두개의 문>을 보러갔다 관객에 의해 쫓겨났다. 이에 유족들은 어제(7.9.)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유족에게 사과하고 해명하라며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면담을 요청한 오후 1시경에는 사전에 면담요청을 하지 않았고, 3시 전원위원회가 있으니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회견을 마친 2시 9분경 용산 유족들과 구속자 가족들은 위원장실이 있는 13층을 가려했으나 엘리베이터를 꺼서 13층도 가지 못해 사무총장실이 있는 12층에서 기다리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2시 30분경 용산유족들은 한발 양보해서 위원장과의 면담날짜라도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실무담당자는 사무총장이 없다며 면담날짜를 질질 끌었으며, 나중에는 전원위원회가 끝나면 말해주겠다고 하였다. 비서실에 전화해도 비서실에서는 직접 날짜를 잡지 않는다며 면담약속을 잡는 것을 회피하였다. 용산 유족들은 전원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으나 아무 답변이 오지 않았다. 오후 5시30분경 전원위원회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위원장 면담약속을 듣기 위해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렸으나 인권위원들과 인권위원장은 용산 유족들에게 답변도 하지 않고 계단으로 도망치듯 건물을 빠져 나갔다.

그러다 만난 인권위원장 면담을 담당한 실무자와 홍보협력과장에게 용산유족들은 “면담 약속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그동안 위원회는 이 사안에 대해 의견을 밝혔으므로 면담은 하지 않겠다”는 공식 거절이었다. 유족이 “2009년 왜 안건처리를 막았는지와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고 한 것에 대해 사과를 들은 적이 없다, 왜 당사자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자기들은 모르겠다며 “위원장님은 용산유족과 당시 사건과 사과를 내용으로 하는 면담은 거절한다”고 하였다. 기가 막힌 일이다.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돌아볼 줄도, 상대에게 미안함조차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아직 용산참사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2009년 용산 유족들에게 사죄해야할 인물들은 아직까지 사과조차 없다. 현병철 위원장마저 용산유족에게 사과하지 않겠다고 하니 아직 진실을 향한 여정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알 수 있어 안타깝다. 나아가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인권이 아닌 권력에 충성하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영혼마저 버린 인물임을 만천하에 밝힌 셈이다. 또한 그가 연임된다면 얼마나 많은 힘없는 약자들이 피눈물을 흘릴지 증명한 것이다. 더 이상 약자들을 밟고 서는 인권위원장은 필요 없다. 현병철은 즉각 사퇴하고 용산유족과 구속자에게 사과하라!   


2012.7.10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반대와 국가인권위 바로세우기 긴급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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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 <두개의 문> 수원상영 안내[7/18] <두개의 문> 수원상영 안내

Posted at 2012.07.04 13:34 | Posted in 공지사항



용산참사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 수원상영 안내

- 일시 : 7월 18일(수) 오후4시 / 저녁 7시 30분
- 극장 : 수원역 CGV (6관)
- 예매 : 천주교수원대리구청 031-248-8311 
- 입금계좌 : 신협 132-071-194587 (예금주 : 양기석)
- 관람료 : 8,000원
- 문의 : 다산인권센터 031-213-2105 

* (급수정) <두개의 문>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18일 저녁 7시30분. 매진의 매진을 거듭한 끝에 추가대관 또 했습니다.
7시 30분에는 수원역 CGV 총 4개관에서 <두개의 문> 동시상영합니다.
1000여명의 수원시민이 함께 관람합니다.
 

예약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위 전화번호로 신청해주세요.
오늘(10일)부터는 천주교수원대리구청에서만 예약 받습니다.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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