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명환아, 오렌지야... 너 참 잘 살다 갔구나[기고] 명환아, 오렌지야... 너 참 잘 살다 갔구나

Posted at 2015.06.15 13:09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오렌지야, 명환아.

너 때문에 청소 안 했던 것도 아닌데, 삼우제 마치고 돌아와 변기 밑까지 손을 넣어 닦았다. 너 때문에 미뤄뒀던 것도 아닌데, 세탁소에 맡길 겨울 옷들을 모두 꺼냈다. 몇 시간째 쓸고 닦고 꺼내고 넣고 수선을 피웠더니 모든 게 새삼스럽다. 그 사이 우리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애써 생각하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는구나. 지난 몇 주, 네 심장을 대신하던 에크모(ECMO)와 깨어날 듯하던 순간들과 포기하던 순간들 간격이 너무나 짧았던 기억까지 모두….

임종의 시간과 장례를 시작하던 시간, 너를 찾아온 많은 이들의 눈물과 입관하러 들어가던 네 낯선 얼굴들까지 모두, 정말, 있었던 일인가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네가 없다는 것. 그게 또 떠오르니 뭐 더 청소할 것은 없는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별이란 원래 갑작스럽다 하더라. 준비된 이별이라고 느긋할 수 없다더라. 이별 앞에 후회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더라. 후회는 그래서 뒤늦다 하더라. 이렇게 말하게 돼서 미안하다. 잘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미안하다. 한 겨울 얼음 씹으며 와삭거리는 이유도 묻지 않았다. 다만 유별스럽다 생각했다. 묻기만 했어도 만성신부전증 환자들은 물 한 모금 벌컥 마시지 못해 얼음 씹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말이다.

전화 받지 않는 너를 구박했었다. 부탁한 일인데 책임감 없다 생각했었다. 투석이 얼마나 피 말리는 고통인지 좀 더 세심했으면 알았을 것이다. 괜찮다고 하니까, 진짜 괜찮다 생각하고 말았다. 무엇이든 눈을 빛내며 궁금해 했다. "박진, 이건 뭐냐?"고 늘 조심스레 물었다.

지나친 진지함과 남다른 따뜻함이 부담스러워 건성으로 대답했다. 뭐든지 오지랖이고 언제나 넘친다 생각했다. 12살에 걸린 병, 16살에 홀로 상경해 살아내기 위해 쌓은 조심스러움인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이 자상했던 것을, 사람들 추억을 통해 재구성하고 알았다.

그러지 말 것을... 부질없는 후회의 순간들



▲ 고 엄명환('오렌지가 좋아')님의 빈소 ⓒ 박김형준




각막과 장기 기증 딱지가 네 주민증에 붙어 있었다. '아무렴, 오렌지 답네…' 그런데 2주 동안 제 기능 하지 못한 장기는 남에게 줄 수 없는 상태였다. 숨넘어가던 순간 네 운명을 지키기 위해서 안구 적출 위한 수술대에 올리지 못했다. 살아온 삶만으로도 안구나 장기보다 더 많은 것을 남겼기에 네 유지를 받들지 못했다.

네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장례기간 내내 확인했다.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마웠고 너를 찾게 한 네 삶에 감사했다.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죽는가,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장례 오신 분들이 말했다. 죽는 순간까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런 네가 자랑스러웠다.

2008년 너를 만났다. 광화문 촛불 열기가 잠잠해졌던 때, 수원 작은 촛불에 찾아왔다. 신장병 환자며 수급자라 소개했다. 신장 이식 받았지만 다시 투석중이라 얘기했고 검도 사범이라 말했다. 의료민영화에 반대해서 나왔다 말했다. 꼬박꼬박 출석부에 도장 찍는 너를 보며 다산인권센터에서 자원활동 해 보지 않겠냐 물었다.

그러지 말 것을 그랬다. 그러지 않았다면, 네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꾸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토록 거칠고 메마른 땅에 널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촛불 들다 사그러질 때 쯤 다른 흥미 거리 찾아 떠났을지 모른다. 네 한 몸 건사하며 하고 싶은 것 하며 살도록 했어야 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을 만나거나, 쌍용차, 용산, 안산, 세상의 모든 현장 속으로… 무거운 사진 가방 메고 이리 뛰고 저리 뛰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난 5월 1일과 2일 세월호 시행령 폐기 촉구 밤샘 집회 사이 캡사이신 흠뻑 맞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 이후 붓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말했는데 그것도 깊이 듣지 못했다. 네 짧은 생에 기름을 부었던 것은 아닌지 아프다. 부질없는 후회의 순간이 너무 많다.

현장을 돌아다니다 피곤하면 피자 한판 먹고 잠든다 말할 때 눈치 챘어야 했다. 신장 환자는 피로하면 안 되고 짠 음식 피해야하는 것을 다 늦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가방 무게 줄이라고 잔소리 더 했어야 했고, 잠 못 잘 부탁은 하지 말아야 했다. 혹시라도 이렇게 떠나면 어떻게 해줘야 했는지 소상히 들어야 했다. 그 중에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구나.

네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 우리에게 남겨두렴



▲ 오렌지가 떠나기 전, 다산인권센터 앞에서 그의 동료들이 마지막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 ⓒ 박김형준



지인 만나러 갔다 병원 벤치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2주간 깊은 잠에 든 너를 보며, 살려고 그랬나 싶었다. 살려고 오렌지가 병원에서 쓰러진 거야….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시간 동안 보고 싶은 사람들 불러 모으려고 그랬던가 보다. 좋아지는 소식 없이 조금씩 스러지는 네 생명의 시간들, 많은 이들이 다녀갔고 많은 이들이 치료비를 모아주었다. 회복을 기원했다.

쓰러진 지 딱 2주, 6월 10일 오후 2시 40분 영원히 깊은 잠에 들 때 쯤 깨달았다. 오렌지가 보고 싶은 이들이 참 많았음을.

"이 눔의 시키. 민중항쟁의 날 갔네…. 4시 16분…. 4.16시간에 맞추지는 못했네…. 그거 맞출려고 버텼을 거야, 오렌지 답다, 참…"

그렇게 우리를 한 번 더 웃게 해 주었다. 너는.

네 장례식은 발 디딜 틈 없었다. 다산인권, 인권교육 온다, 반올림 식구들, 수원촛불, 수원지역 선후배, 골목잡지 사이다, 인권활동가, 사진작가, 맘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 쌍차, 기륭전자, 삼성전자서비스, 금속노조 삼성지회, 민주노총, 아 뭐 그리 아는 사람들이 많던지… 네 덕분에 알게 된 샘터야학, 신장병 환우회(메르스 때문에 정작 제대로 병문안도, 조문도 못 온 이 분들이 가장 마음 아팠다).

아프고 병중이던 삶이 언제나 걱정과 근심거리였을 가족들에게 마지막 순간, 점수 모두 만회했기를…. 가수 박준씨는 추모제에 달려와 너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꽃다지의 '당부'였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직 많으니. 후회도 말아라, 친구여. 다시 돌아간대도 우린 그 자리에서 만날 것을."

35살. 살아갈 날은 더 이상 없지만, 다시 돌아간대도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될 수 있겠지….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거기 언제나, 누군가 분명히 있었음을 알게 해준 친구. 그래서 위대한 친구."

누군가 그러더구나. 너를 위한 추모제를 모두 마쳤을 때…. 사실 너는 그렇더구나. 영정들고 다산인권센터 사무실과 수원역, 네가 살던 집, 삼성전자 앞을 지날 때… 너를 모신 유골함 들고 납골묘로 걸어갈 때. 오렌지가 있었으면 이 모든 순간을 빨빨 뛰어다니며 기록했을 거야. 언제나 거기 있었기에 있는 줄도 몰랐던, 너의 부재를 하나씩 발견하며, 웃는 연습도 해야겠지.

참 열심히 살다간 친구, 참 치열하게 싸웠던 동지, 무수한 수식으로 장식할 수 있음을 보내고야 깨달았다. 고맙다. 오렌지. 네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 우리에게 남겨두렴. 다시는 아프지도 말고 다시는 가난하지도 말고 다시는 외롭지도 않을, 그 세상에서 쉬고 있으렴. 연화장 추모의 집에서 그토록 마음 아파했던 단원고 친구들 만나면 사진 예쁘게 찍어주고… 세상이 그들과 너를 기억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해주렴.

고마웠다. 샘터 야학 작은 새 반 명환아, 신장 환우회 1등 팔뚝감 엄명환, 다산인권센터와 수원촛불, 반올림의 오렌지.

굿나잇 굿럭(Good Night Good Luck). 참 잘 살다 갔구나. 명환아, 오렌지야.


2015. 6. 15 오마이뉴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명환아, 오렌지야... 너 참 잘 살다 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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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수원대 정상화를 위한 길거리 특강 안내[10/29] 수원대 정상화를 위한 길거리 특강 안내

Posted at 2014.10.27 14:16 | Posted in 공지사항



수원대 정상화를 위한 길거리 특강


- 일시 : 10월 29일(수) 오전 10시부터

- 장소 : 수원대학교 정문앞

- 주최 : 수원대학교 교수협의회, 다산인권센터


정의와 민주주의가 실종된 대학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가르치고 있는 걸까요.

이 근원적 질문 앞에 우리는 왜 머뭇거리고 있는 걸까요.

수원대학교 교수협의회 구성 이후 촉발된 현재의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에 수원대학교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이유로 파면, 해직된 교수님들과 

마음 깊이 응원하는 동문, 재학생들이 수원대학교 정문 앞에서 만납니다. 

 

침묵은 ‘금’이 아닙니다. 29일 수원대 정문 앞에서 만납시다!


<길거리 특강 주제 및 시간표>


10:00~11:00 수원대학교 정상화를 위한 캠페인

11:00~12:00 특강1. <표절의 역사> 박상규 (오마이뉴스 기자. 사학과95)

12:00~13:00 힘내세요, 교수님! (파면, 해직된 교수님들과의 점심식사)

13:00~14:00 교내 홍보활동

14:00~15:00 특강2. <청춘, 희망은 어디에> 안병주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환경92)

16:00~17:00 특강3. <이 길을 선택한 이유> 이상훈 (환경공학과 교수. 교수협의회 대표)

17:00~18:00 수원대학교 정상화를 위한 캠페인


● 본 행사는 집회신고 등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진행되는 것인 만큼 누구도 방해하거나 참여를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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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③] 탈학교 선택한 정우현씨[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③] 탈학교 선택한 정우현씨

Posted at 2012.09.28 16:17 | Posted in 활동소식/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
"드럼 치고 싶어서, 학교 자퇴했습니다"

[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③] 탈학교 선택한 정우현씨


오는 10월 5일이면 경기도교육청이 전국에서 최초로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지 2년이 된다. 이후 서울, 광주 등 다른 지역 교육청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시행 중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 존중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학교 문화를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는 데에는 대체로 공감한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의 안과 밖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위태롭다. 이런 상황을 점검해보기 위해 경기학생인권조례 공포 2년을 맞아 다문화, 성소수자, 장애, 탈학교 등의 학생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권 현실을 짚어보는 기사를 4차례에 걸쳐 준비했다.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로 살아가는 학생,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학생인권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최근 '탈학교 청소년', '홈스쿨링', '로드스쿨러' 등의 이름으로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을 지칭하는 말들이 여럿 생겼다. 언어가 새롭게 생겨난다는 것은 그 언어로 불리는 무언가가 지금 사회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영향을 반영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다지만, 여전히 '다녀야 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은 '자퇴·퇴학생', '탈선·비행·불량 학생'의 울타리 안에 가둬지기도 한다. 

경기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시행·추진하는 과정에서, 학생뿐 아니라 '학교에 적을 두지 않은' 여러 청소년들의 삶도 함께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학교 안팎을 불문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청소년들은 많다. 그러나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소수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잘 들리지 않으니 관심이 없다. 실제로 학교를 떠나 생활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고민과 궁금증을 안은 채, 지인의 소개로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태풍 '볼라벤'이 수원에 도착했던 날, 거센 바람을 뚫고 정우현씨(가명·18)를 만났다. 

- 자기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정우현이구요. 나이는 18살이고, 학교는 안 다니고, 드럼 치고 있습니다."

- 학교를 그만두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그 때 저는 드럼을 치고 있었어요. 작년 6월 경이었구요. 이게 연습을 좀 많이 해야 되는데, 학교가 오후 5시40분에 끝났거든요. 밥 먹고 연습하러 가면 많아야 4시간? 적으면 2시간 이렇게 연습을 했어요. 아침 일찍 가서 오후 5시 40분까지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어요. 극단적인 생각일 수도 있는데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드럼연습에 좀 많이 투자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구요." 

- 학교를 그만둔지 1년이 조금 넘었네요. (학교를) 나가고 난 후의 삶은 어땠는지? 
"자퇴하고 나서 처음엔 그래도 생활이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이루어졌는데, 나중에 되니까 사람인지라 좀 망가지기도 했어요. 그럴 때 드럼 샘이 많이 도와주셨죠." 

학교 밖에서 바라본 학교

▲ 탈학교 청소년 정우현(가명. 18)씨 ⓒ 난다



나도 고등학교 2학년 때 다니던 학교를 그만뒀다. 작은 계기는 '휴대폰'이었고, 큰 계기는 '학교 생활 전반'이었다. 당시 내가 자퇴를 결심하기까지는 아주 여러 번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해야 했지만, 한 번 결심하고 나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자퇴 이후, 그 사건은 나의 인생을 뒤흔드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일상을 꽉 채워버렸던' 학교를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래서 궁금했다. 우현씨에게는 학교가 어떤 의미였는지, 평범한 그리고 필수적 코스인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경험한 그는 '학교'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궁금했다. 

- 자퇴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학교 다닐 때 학교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학교에 공부하러 간 건 아닌 거 같아요. 학교에서 자고 나중에 나와서 드럼 치고. 학교에선 거의 다 그랬던 것 같아요. 자거나, 친구들이랑 쉬는 시간에 얘기하거나. 학교 하면 그냥 떠오르는 게 '가둬져 있다'라는 거예요. 제가 딱 고등학교 가서 운동장에 앉아있는데, 그냥 드는 생각이, 교도소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 공부가 재미없었나요? 
"공부가 재미없기도 했고, 생각이 좀 그랬던 게 드럼을 치니까 공부를 안 해도 된다, 뭐 그런 식으로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해요." 

- 그럼 요즘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거의 매일 음악학원으로 가요. 음악학원이 저한테는 학교 같은 거죠. 내가 배울 것이 있고, 또 나름의 학원 생활도 있으니까요. 주위에도 학교 그만두고, 이거(음악)에 집중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 학교를 다니지 않는 친구들도 있을 것 같은데 자주 만나나요?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하죠. 그래도 가끔 만나면 똑같이 놀아요. 얘기도 하고... (학교 이야기 하면) 답답해하죠. 저도 만약 드럼 아니었으면 그냥 계속 다녔을 것 같아요."

당신에게 '공부'는 무엇입니까 

우현씨는 현재 본인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그에게서, 또래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유쾌한 여유로움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두는 것 자체에 대해 걱정부터 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본인의 의지나 떳떳함과는 상관없이 사회의 편견 때문에 스스로 움츠러들기도 한다. 학업, 기타 학교생활의 문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학교를 그만둔 한 청소년은 "학교를 안 다니면 죽는 건 줄 알았다" 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정씨에게는 그런 두려움은 없었을까. 

- 주위의 시선 때문에 힘든 적이 있었나요? 
"저도 처음엔 말하기 좀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냥 상관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떳떳하게 말할 수도 있고요. 처음 막 그만두고 나서는 그게 말하기가 좀 죄송하다 해야 하나, 쑥스럽다 해야 하나... 그런데 검정고시도 보고, 지금은 아무래도 확신이 있는 편이니까, 친척 분들께도 나중에는 잘 말씀드렸어요."  

-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학교 선생님 하고는 생각보다 많이 얘기를 못했어요. 그래서 선생님도 아마 좀 기분이 나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부모님하고만 이야기를 했어요. 음...처음엔 안 된다고 하셨는데, 제가 확고하니까 아버지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해를 해주셨어요. 도움을 많이 받았죠." 

- 학교를 그만두고 힘든 적은 없었나요? 
"학교를 그만둬서 힘들다기보다는 이게 드럼이라는 것도, 치다보면 치기 싫어지는 시기가 있어요. 저도 검정고시 끝나고, 5월 달부터는 좀 치기 싫었어요. 슬럼프 같은 거... 지금은 뭐 그런 건 없지만요." 

- 그만두고 나서의 생활에 스스로 만족하세요? 
"만족은 하는데 희한한 게 자퇴하고 난 다음 날이 제 일상 같은 느낌이었어요. 정말로. 어, 학교 가야지. 이런 생각도 안 들구요. 딱 제 일상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는 어쩌면 학교 안 다니는 게 딱 체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 대부분 학생들은 학교를 답답해하죠. 
"너무 공부해라, 공부해라, 이거 같아요, 좀 안 좋은 게 저 같은 경우는 드럼을 쳐요. 만약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는 학생들한테는 그걸 할 수 있게 시간을 줬으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못 나오더라도 말이죠."

학교에, 교실에,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쓰고 문제를 풀고… 하는 것을 '공부'라고 부른다. 학창시절의 추억이라 떠올려지는 것들은 쉬는 시간 몇 분 동안에 이루어진다. 그 외의 수많은 시간에는 '공부'라는 것을 한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다른 것을 더 하고 싶은지는 나중 문제이고, 공부 외에 다른 것을 하려면 알아서 찾아야 한다. 다른 공부를 위해 일반학교를 떠나는 것이 당연해지는 이유다. 

뛰어난 성적으로 하버드대에 입학한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 학생들이 진짜 공부하는 시간이 길긴 길더라고요." 

기나긴 공부 시간을 통해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이는 많지 않고, 모든 사람이 '한우물'만을 파고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많은 학교는 학생을 긴 시간 동안 자리에 앉혀두지 못해 안달이다. 그렇게 단 하나의 길 밖에 보이지 않을 때, '긴 시간 동안 공부-입시-대학'이 유일한 길이라고 배울 때, 다양한 배움으로 향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막힌다.  

그들에게 '시간'을 허하라

"학교는 공부하는 학생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따로 다른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좀 더 시간을 준다든지, 학교를 빠질 수 있게 한다든지 하면 좋겠어요."

이번에 만난 우현씨는 학교를 그만둔 다음 날부터 '딱 나의 일상' 같았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에 가던 시간이 너무 익숙해서 일찍 눈을 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학교에서는 내 '시간표'를 몽땅 만들어주고 그냥 하라는 대로 굴러가기만 하면 끝이었는데, 갑자기 주어진 '자유'는 설사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는 해도 많이 낯설었다. 그렇게 몇 주간은 텅 빈 시간으로 보내다가 조금씩 내 '시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시간도 써본 사람이 쓸 줄 안다고, 나는 시간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리고 얼마 후 수 년 간 내 시간을 학교에 빼앗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에서 못 배워 학교에서 못 배워 학교에서는 딴 걸 배워
친구를 밟고 올라서는 방법, 남들과 똑같아 지는 방법
적당히 거짓말 하는 방법, 반복 반복 it's a cycle
궁금해하지 않는 방법, 폭력에 익숙해지는 방법
몰래 숨어서 조는 방법, 반복 반복 it's a cycle" 
- 일리닛, "학교에서 뭘 배워" (2010)

내 시간을 내가 만들고 채워나간다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좋아하는 걸 하려면 가난을 결심해야 하는 게 왜 당연시 되는 걸까"('고등학교 옆 대나무숲(@bamboohigh)' 트위터에서) 라는 말이 툭툭 울음처럼 터져 나오는 교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의 깨달음이 큰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그 때와는 다른 의미로, 나의 시간은, 아직도 학교에 붙들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학교와 교육의 변화가 내 삶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거쳐 간다. 저마다의 기억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아주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는 것은 큰 공통점일 것이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던 사람들이 또다시 이 사회를 만들어나간다. 그렇기에 '학교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 '학교에서 뭘 배울 수 있는지' 혹은 '뭘 배우고 있는 건지' 같은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만들고자 했다. 그 변화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금만 더 학교 안팎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야할 것 같다.

※ 글 : 난다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오마이뉴스 원글 보기(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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