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③] 불량교사-되기[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③] 불량교사-되기

Posted at 2012.09.04 17:36 | Posted in 칼럼/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

푸른솔님은 내년 졸업을 앞둔 예비교사입니다. 요즘엔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팀에서 바쁜 시간 쪼개가며 인권교육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민이 많습니다. 졸업하면 어떻해야 하나, 또 대한민국 교육현실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예비교사 푸른솔님의 고민, 함께 들어주실래요?

 

그림출처 : 한겨레신문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

아마 많은 분들께서 나주에서 일어난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들으셨을 것이고, 분노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요즘 ‘인간 괴물’에 대한 뉴스들이 유독 자주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 맞습니다. 정권 말기에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꼼수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저 이탈리아 작가는 그런 ‘인간 괴물’보다 저나 여러분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더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네요. 아니 도대체 왜?

저를 포함하여, 우리나라에서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또는 살아가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 평범하기로는 손에 꼽을 정도일 겁니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공부 좀 한다 소리 들으면서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사범대에 들어가서 별 탈 없이 대학교에 다니고, 평범하게 교사 생활을 하고 있을 겁니다. 

학교에는 소위 ‘조직 논리’라는 게 존재합니다. 하도 자주 나오는 얘기라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학교는 근대에 들어와서 탄생했다고 하죠. 순응적인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라고도 하고, ‘국가’라는 체계가 잡히면서 그때까지 가정 내지는 마을의 역할이었던 교육을 국가에서 가져간 것이라고도 하더라구요. 지금의 학교도 그런 모습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기본 지식을 전수해주기도 하고,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도 해주지만, 그 과정에서 애국주의의 가치관, 기계적 중립, 경쟁중심주의, 위에서 하라면 한다(?) 등의 굳이 필요 없는 것들도 함께 흡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육을 교육이 아니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등장하는 책이죠(그런데, 책에서는 사실 이 말이 딱 한 번 밖에 등장을 안 한다네요). 예루살렘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나치 전범이었습니다. 수많은 유대인을 죽게 만든 사람이었죠.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기로 한 의사는 ‘적어도 그를 진찰한 후의 내 상태보다도 더 정상’이라고 아이히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그의 모든 정신적 상태가 정상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도 나오죠.  

이 얘기를 하는 것이, ‘교사들은 아이히만이나 다름없다! 나빴다!’라며 돌을 던지자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도 죄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 자신이 없네요...^^ 다만 반성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구조를 이야기합니다. 학벌주의를 만드는 구조, 교사가 학생과 눈을 마주보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 교육에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전달만 있게 하는 구조.. 구조, 구조, 구조... 그러나 그 구조는 결국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강화되는 것이 아닐까요? 

앞에서도 말했듯, 교육을 교육이 아니게 하는 ‘구조’가 있고, ‘조직 논리’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구조와 조직 논리는 평범한 사람들, 기계적 인간들에 의해서 다시 강화되고 몸집을 불려갑니다. 고장나도 한참 고장난 것 같은 근대교육이란 기계가 계속해서 잘만 돌아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옴팡지게 노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던 이번 방학에서 제가 유일하게 공부하겠다고 듣게 된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의 소개글이 생각납니다.
 
미쳐서 돌아가는 기계를 멈추는 법은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물질’을 껴 넣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꺼이 그런 ‘이물질’이 되어 학교의 견고한 질서를 삐거덕거리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늘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꿈꿔온 저이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만 조금은 이물질이 되어 보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 글 : 푸른솔 (인권교육팀 자원활동가) 


  1. 글쎄요... 현직에 있지만, 물론 그런 조직의 문제점을 모르는 것만은 아니지만...

    조직을 바꾸기 위해서 그런 조직의 이물질이 되겠다...

    글쎄...요,,.라는 말 밖에 안나옵니다.

    인권이란 것을 핑계로...그냥 월급쟁이 교사 하나 더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 일도 안하고 수업도 별볼일 없고

    조직을 와해시키겠다는 생각만으로 월급만 타가는 교사

    열심히 근무하는 "평범한"교사가 제일 싫어하죠
  2. 비올
    현직교사님.
    여기서 불량교사되기라는 것은 `나조차 월급쟁이 교사 하나 더 되지 않겠다`는 예비교사의 각오로 읽혀지는데요.
    인권은 부수적인 것이라 하고,
    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시스템에 아무 문제제기하지 않는 현재가
    조직을 와해시키고 교육을 붕괴시키고 있지 않은가요?

    열심히 근무만 하면 되겠습니까? 잘못된 조직에 문제를 제기해야죠. 왜냐, 그 현장에는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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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 ②] 이것은 왜 교육이 아니란 말인가?[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 ②] 이것은 왜 교육이 아니란 말인가?

Posted at 2012.08.06 11:22 | Posted in 칼럼/예비교사 푸른솔의 교육희망

푸른솔님은 내년 졸업을 앞둔 예비교사입니다. 요즘엔 다산인권센터 인권교육팀에서 바쁜 시간 쪼개가며 인권교육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민이 많습니다. 졸업하면 어떻해야 하나, 또 대한민국 교육현실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예비교사 푸른솔님의 고민, 함께 들어주실래요?



사진출처 : 실상사 작은학교 홈페이지




지난 번 글에서, ‘대안’교육이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기본’으로 돌아가고 있는 교육을 이야기 했었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 썼다 지웠다 하다 보니, 교육이 아니었던 것을 교육으로 끌고 들어온 ‘실상사 작은 학교’가 떠올랐다. 

요즘 페이스북에서 지리산 사진을 종종 마주친다. 지인들이 다녀온 ‘실상사 작은 학교’(작은학교)의 여름 계절학교의 흔적이다. 작은학교는 중등 과정의 대안학교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학교이고, 우리 나라의 첫 불교계 대안학교이다. 방학마다 열리는 계절학교는 학교 생활을 체험하고 이 학교를 선택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겨울이었던가, 나도 계절학교에 자원교사로 참여한 적이 있다. 날씨는 무진장 추웠지만 몇 가지 불편함 때문에 여러 생각과 고민을 얻고 돌아왔었다.
 
그 중 하나는 가기 전에 읽은 ‘여우처럼 걸어라’는 책이 시작이었다. 분명히 학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고 했는데, 내가 예상한 내용과는 완전히 달랐다. 산에서 동물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걷기, 나무로 생활도구 만들기, 흙 다루기 같은 내용들이 담겨 있었고, 그것도 저자의 회상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멋드러진 철학이나, 잘 짜인 교육과정 같은 것들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이게 뭐지? 이런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짜야하는 건가(계절학교 중 몇 시간은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구상한다)? 이게 교육이라는 건가? 이걸 왜 하는 거지? 
 
지금은 다시 이렇게 묻는다. ‘이것은 왜 교육이 아니란 말인가?’ 지금의 공교육에서 배우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이것들은 교육이고 왜 흙과 나무를 다루는 것은 교육이 아니란 말인가? 내가 ‘여우처럼 걸어라’를 처음 마주쳤을 때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공교육을 받는 대부분의 학생들도 국어, 수학, 사회 등을 왜 배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내가 느낀 불편함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 중심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의 불편함일 뿐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지금의 학교 교육은 인간중심, 합리주의,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한다. 그런 학교에서 자연은 이용의 대상, 기껏해야 보호해야 할 대상이며, 감성이나 몸의 영역은 현저히 줄어든다. 자본주의적 경쟁체제도 당연히 도입된다. 반면 실상사 작은 학교는 자립, 생태,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학교에서는 자립적 삶에 필요한 기능, 생태적인 삶에 필요한 신념을 담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삶을 조여 오는 신자유주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발전소,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이 속에서 정말 국어, 수학, 영어만 가르치고 있어도 되겠냐는 문제제기를 읽은 적이 있다. 십분 공감한다. 정말 이대로 좋은가?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며 거의 매년 교육과정을 개정하고 있지만 실상 바뀌는 건 수업의 양과 진도의 빠르기 정도이고, 내용에는 좀처럼 변화가 없다. 
 
정말 새로운 사회를 지향한다면, 우리의 학교가 바꾸어야 할 것은 뭘까. 지금까지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담은 학교는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럼 지금의 학교가 ‘교육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것들을 살펴 끌어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글 : 푸른솔 (인권교육팀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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