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남의 연대[기고] 여·남의 연대

Posted at 2016.06.21 11:47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성폭력은 일상이었다. 중학생이었다. 기차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 몇 살인지, 어디로 가는지 말 걸더니 어느새 다리 사이로 손을 넣었다. 그의 행동이 무언지 해석할 수 없었다. 팔짱 끼는 척, 손을 뻗어 가슴을 꾹 누르던 버스 옆 좌석 남자애. 이상한 기척에 눈을 떴더니 택시 기사가 치마 속을 더듬고 있기도 했다. 낯모르는 남자들만 그랬을까. 첫 직장 상사는 “남자랑 자봤어?”라고 물었다. 음담패설을 농담처럼 하는 이는 많았다. 문제제기를 하자 까다롭다 말했다. 연인의 절친은 술 취해 잠든 내 몸을 더듬고 있었다. 그 모든 기억들. 그러나 자책이 앞섰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과 분노 속에서도 조심하지 못한, 그들을 혼내주지 못한 나를 원망했다. 불편한 자리에 놓일 일이 벌어지지 않기만 바랐다.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자 어떤 남자친구는 그랬다. “그러니 술 좀 그만 먹고 다녀.”


여성들이 죽는다


강남역과 섬마을에서 여성이 죽거나 다쳤다. 올레길, 등산길에서 여성들이 변사체로 발견되고 있다. 공감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였다. 그런데 ‘사건 정체’가 여성혐오 범죄다 아니다라는 논쟁으로 번지더니, 정신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혐오를 담은 공권력 대책이 발표됐다. 신임 여교사는 도서·벽지 학교에 발령 내지 않겠다, 한다. 중국동포 살인사건이 터졌을 때는 불법 이주민을 색출하는 인종조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강남역 발언은 특별한 놈들에게 전자발찌 채우고 DNA 채취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위험의 책임을 밤거리를 걷는 여성들, 짧은 치마 입은 여성들에게 지우지 말라는 것이다. 여성 피해는 특정 남자의 기이하고 나쁜 짓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안전하다 주장하는 집에서, 친족과 가족에게 성폭행당하는 여성이 다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여성들이 ‘나를 죽이지 말라’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들의 발언은 경험에서 시작된 연대이다. 부정하는 것은 여성들의 삶, 생활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얼마 전 여성으로 살아온 차별 사례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귀담아듣는 이와 선험으로 판단하는 이로 입장이 갈렸다. 역차별을 우려했다. 여성들 경험에 주목하기보다 결론을 먼저 내놓으려 했다. 남성과 연대하기 위해서 남성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주장했다. 물론이다. 여성 힘만으로 안 된다. ‘한남충’이라 부르며 적대시하고 비하하는 어떤 여성 커뮤니티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남자 너희들도 당해봐라, 똑같이 대하겠다는 주장은 생물학적 남녀 차이를 주제어로 만들 뿐이다. 차별 방식으로 차별을 넘을 수 없다. 거기엔 다름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서로 다른 경험, 감각으로 구성된 모두는 타인이다. ‘같기 때문에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연대’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러므로… 경험을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타인과 손잡기


한 남성 동료가 페미니즘 책을 추천해달라 말했다. 그 범죄가 여성혐오냐 아니냐 논하던 어떤 목소리보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했던 누구보다 좋았다.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피해자가 된 나는, 그렇지 않았기에 피해 입지 않은 당신들과 연대하고 싶다. 자신들의 경험으로부터 연대를 선택한 ‘비명’을 외면한다면 지금까지의 폭력과 살해를, 또다시 일어날 강남역, 섬마을 사건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비참을 넘는 연대, 발화하는 가능성과 손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2016. 6. 16 한겨레 21 노땡큐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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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남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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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범죄 감소를 위한 상식있는 법안 제출을 기대한다[논평] 범죄 감소를 위한 상식있는 법안 제출을 기대한다

Posted at 2012.09.06 12:08 | Posted in 논평,성명,보도자료

* 위 사진은 내용과 관련없습니다.



<성범죄자 물리적 거세 법안과 강력한 형벌정책에 대한 논평>

범죄 감소를 위한 상식있는 법안 제출을 기대한다


국회에서 교화나 재활을 기대할 수 없고 재범 발생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성범죄자에 대해 전문가 감정을 거쳐 사법부가 외과적 치료명령인 '물리적 거세'를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여권 대선주자는 사형제 존치 주장을 하고, 국회는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

이러한 법안이 범죄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신체 일부를 거세해서 성범죄를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고환이 아니라 뇌나 심장, 호르몬의 문제가 아닐까. 보복이 아니라 범죄근절을 원하는 게 진심이라면 그쪽을 적출하는 법안을 제출해야하라는 세간의 비아냥을 국회는 들어야 한다.

비인간적인 범죄에 대해 누구나 인지상정의 감정으로 뱉는 말은 실제 법안과 다를 수밖에 없다. 국회의 몫과 분노를 다스릴 수 없는 일반인의 몫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저잣거리의 분노가 법안으로 제출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아연실색하고 있다. 신체 절단형이 헌법을 위배하는 것은 분명해 보이니,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국민의 불안한 감정을 이용해, 불심검문 강화, 사형제 존치, 강력한 형벌적 장치를 마구 쏟아내는 정부와 국회의 태도는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빈곤한 환경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범죄 대책에서 경찰 등 공권력의 무능함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4월 수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당시 사의를 표명한 서천호 경기경찰청장이 강경량 현 경기경찰청장과 경찰대학장으로 자리 이동만 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자기 잘못을 일부 범죄자들에게 모두 덮어 씌우며 반인권의 날개를 달고 신이난 공권력이 더욱 불안하다.

우리는 인간을 쓰레기처럼 버리는 사회가 인간을 진짜 쓰레기로 만들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치안조차도 양극화되고 교정교화 프로그램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며, 112신고 조차 구실을 못하고 있음이 불안하다. 빈곤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안정망 없음도 불안하다.

강력범죄를 이유로 대다수의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강력한 형벌정책이 늘어나는 현실이 정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까. 보복과 격렬한 감정이 사회를 치유하고 범죄를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까. 불안을 불안으로 대처하는 방식에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이 불안은, 생명과 신체의 존엄을 반인권으로 대처하는 국가의 태도에 대한 불안일 수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과 존중이 없는 국가였기에 더욱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는 국민의 불안을 부추기며 범죄의 근본대책을 수립할 힘과 시간을 다른데 쓰지 말길 바란다.

2012. 9. 6.
다산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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