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안보’에 깔려버린 양심의 실현‘국가’와 ‘안보’에 깔려버린 양심의 실현

Posted at 2011.09.20 15:00 | Posted in 격주간 <다산인권>/인권이슈/현장
승규

사진출처 : 전쟁없는 세상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중요한 판결을 기다리고 있어 집중을 할 수 없었던 지난 30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초조하게 만지작거리고 있던 중 한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두 건 모두 합헌 났어요 - 참담 합니다’

그리고 퇴근길에 관련 기사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핑 돌게 한 이 사진...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병역법 88조 1항과 향토예비군설치법 15조 8항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병역법 88조 1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입대나 소집에 불응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을, 향토예비군 설치법 15조 8항은 예비군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2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태료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 조항이다.

특히 병역법 88조 1항의 경우 2004년 8월에 이미 합헌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그러나 7년 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라 일말의 희망을 갖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역시 2004년에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수감 생활을 견뎌야 했었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던 터라 이번에는 새로운 판결이 내려져 병역거부를 선택하려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6대 2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헌법에 합당하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마지막 입장이었다.

결과를 접한 직후 답답한 마음에 ‘그럼 공개변론은 왜 하였느냐!’란 트윗을 날렸다. 작년 11월, 앞선 두 조항의 위헌제청에 대한 공개변론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 당시 참석한 이들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와 관련된 긴 동영상을 지켜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의미 있는 과정들이 헌법 재판소의 결정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다수의 재판관들에게 느낀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UN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 18조는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라고 되어있다.

헌법재판소에선 B규약 18조에 대해 병역거부에 관한 법적인 구속력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병역거부권을 명문으로 인정한 국제인권조약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므로 국제법 존중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 헌법 6조 1항에도 위반되지 않는다는 걸 판시했다. 그렇지만 UN에서는 B규약 18조에 따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도출할 수 있다고 밝히며 2004년을 비롯하여 오랫동안 수차례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 회원국에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못하여 구금당하는 이들에 대해 전과의 말소와 충분한 배상을 해줄 것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이 정당한 것이라면 UN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히 헌법재판소에선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서 ‘양심실현의 자유’를 도출하고 있다는 판례가 있는데 그럼 UN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헌법재판소에선 안보와 병력자원 문제를 들먹이고 있는데 그럼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라는 37조 1항은 무엇인가. 편의에 따라 적용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이 진정한 법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앞선 2004년 판결에선 다수 재판관이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입법부와 행정부에 도입하라는 요구라도 하였는데, 이번엔 그런 언급조차 없었다. 헌재 판결문상에선 병역거부에 대한 심사의 곤란성을 언급하였는데 병역 거부자에 대한 판결은 처벌을 목적으로 두는 것이라 법정에서 심사하고 있고, 대체로 선고하는 징역이 (금고) 1년 6월로 중형이긴 하지만 현역복무기간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그 역시도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관계가 간단하기 때문에 공소장은 가볍지만, 젊은이에게 쉽사리 족쇄를 채워줄 수 없어 일선 판사들이 위헌제청을 한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그러한 요청에 정당한 사유가 아니니 고민하지 말고 법대로 처리하라고 냉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예비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비군과 관련된 조항의 경우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서 다루게 된 상황이고 현역이나 보충역과 달리 병역의 의무를 다한 경우라서 현실과 형평성 문제에선 자유로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병역거부운동을 하는 많은 이들이 이 사안에 대해선 병역거부자에 대한 판결과 달리 헌법 불일치 정도는 기대해볼 만하다고 예측을 했었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소 다수 재판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소집통지서를 받은 예비군 훈련에 불응한 것이므로 양심적 예비군훈련 거부자에 대하여 이전에 유죄의 판결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이 부과된 예비군 훈련을 또다시 거부하는 경우 그에 대한 형사 처벌은 가능’ 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다시 말해서 예비군 훈련에 불참한 이유로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수차례 맞더라도 이중처벌금지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2007년 국가인권위에선 이에 대하여 더는 처벌하지 말라고 하며 실제로 총 예비군 복무기간이 얼마 되지 않고 이미 의무를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그 기간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사회봉사로 돌려서 복무해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에선 국가안보를 빌미로 장년들에게까지 끝까지 총을 쥐여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앞선 사진에서 울부짖는 주인공은 이달 14일 법정구속을 당할 예정이었다. 이들처럼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수많은 병역 거부자들이 행형시설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역의 세월은 5년 이상 지속될 수도 있다.

올해 8월 현재 수감 중인 병역 거부자들은 8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지속적인 이중삼중의 감시 속에서 남은 복역기간을 채워야 하고 그 이후에도 전과자로서 사회의 눈총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사회통합만이 가치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 한 사람도 스스로의 양심과 사상 때문에 비국민으로 버려지지 않아야 한다. 병역거부권은 시기상조의 대상이 아니라 만시지탄의 대상임을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할 때가 아닐까.

참조) 병역거부 관련동영상 http://tln.kr/63an5 입니다.

* 승규 님은 다산인권센터 벗바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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