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늘 '현장'을 누비던 오렌지의 '휴가'를 기억하겠습니다[기고] 늘 '현장'을 누비던 오렌지의 '휴가'를 기억하겠습니다

Posted at 2015.06.17 17:49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5월 26일 ‘오렌지가 좋아’(이하 오렌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랫동안 신장병으로 투석을 받았던 그였기에, 때로는 일을 부탁하러, 때로는 그의 안부를 물으러 그에게 전화를 했더랬다. 그 날도 현장에 인터뷰를 가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했던 참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낯선 목소리는 오렌지가 쓰러졌고, 아주대학교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낯선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이야기들. 어쩌면 오래전부터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닥친 그 시간은 너무도 낯설었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의 모습(사진=다산인권센터)

          

2주 동안 오렌지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아주대병원에 지인을 만나러 와서 급작스레 심정지가 왔다고 했다. 만약 아주대병원으로 오는 버스 안이었으면, 집이었다면, 아마도 며칠 지나서야 그의 소식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병원에서 쓰러져 응급조치를 할 수 있었다. 늘 친절했고, 배려심이 많은 그였기에 주변 사람들이 마음을 준비할 시간을 주려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평생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을 고단한 자신에게 주는 마지막 휴가였을지도 모른다. 늘 곁에 있어왔지만 오렌지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다. 그가 오래도록 신장병을 앓아왔다는 것, 혼자 살고 있다는 것,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8년의 시간동안 친구로 지내왔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오렌지가 누워있는 2주 동안 가족을 만났고, 오렌지가 다녔던 샘터 야학 사람들을 만났고, 신장병 환우회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분주히 돌아다니며 마음을 내어주고, 셔터를 눌러 기억해주던 사람들을 만났다. 어쩌면 오렌지가 누워있는 2주는 자신 주변에 떨어져 있던 모든 이들을 연결해주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함께 기억해달라고, 함께 아파해달라고 그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봐달라고 말이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의 모습(사진=다산인권센터)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렌지가 살아온 삶의 퍼즐 조각을 맞춰갔다. 초등학교 4학년 신장병이 시작되었고, 투병으로 인해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야학에서 어렵사리 공부를 이어갔다는 샘터 야학의 기억. 기초생활 수급자로 당사자 운동을 해왔던 빈곤 활동가들의 기억. 2008년 한미FTA, 광우병 촛불에 나오며 현장 사진가로 살아왔던 다산인권센터의 기억,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사진을 찍고 같이 아파했던 반올림의 기억. 신장병 환우회 카페에서 조언을 해주고, 의료민영화에 맞서 싸웠던 기억. 골목잡지 사이다에서 객원기자로 일하며 수원을 누볐던 기억. 그리고 오렌지가 뛰어다녔던 수많은 현장의 기억들이 하나로 모아졌다. 2주 동안 35년을 살다간 오렌지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고 나서야, 진짜 오렌지가 보였다. 그리고 퍼즐조각이 다 맞춰질 즈음, 6월 10일 오후 2시 40분 오렌지가 떠났다.

오렌지의 가방은 늘 무거웠다. 카메라, 노트북, 외장하드 등 늘 한 짐 가득 가방에 짊어지고 다녔다. ‘제발 좀 가볍게 하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해도 그 때 뿐이었다. 현장을 담아야했고, 편집을 하고, 기록해야겠기에, 오렌지의 가방은 늘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렌지는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현장으로 향했었다. 쌍용차, 밀양, 용산, 세월호 등 시시각각 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내동댕이쳐진 이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가끔은 경찰들에게 연행 될 뻔하기도, 몸싸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현장을 기록하느라 카메라를 놓지 못했다. 다른 이들의 눈물과 아픔, 삶을 기록하려 수천/수만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자신은 영정사진을 할 만한 변변한 사진 한 장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포즈를 요구해야 할 오렌지가 하얀 꽃에 둘러싸인 영정사진 속에 있다는 게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처럼 어색하기만 했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의 모습(사진=다산인권센터)

          

늘 카메라를 들이대는 오렌지였다. 가끔은 그만 좀 들이대라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오렌지가 다산인권센터 자원 활동가를 시작한 이후 몇 년간 나의 기록 역시도 오렌지의 렌즈에서 나왔다. 다산인권센터의 활동과 오렌지가 관계 맺었던 수원지역 많은 단체의 활동을 기록해주고, 기억해주는 것, 오렌지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었다. 이제는 남은 이들이 오렌지를 기억해주고, 기록해줄 차례였다. 쓰러진 이후 카페에 있는 오렌지 사진을 긁어모으고, 개인 SNS에 있는 사진과 기록을 모았다. 그리고 오렌지가 지나쳐간 발자국들을 따라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오렌지와 관계 맺고 있었다. 그리고 오렌지의 기록에 고스란히 우리가 남겨져 있었다. 그렇게 분주하게 기록하느라, 함께 하느라 아픈 몸 돌보지 못했구나. 미안함이 밀려왔다.

오렌지가 떠나는 마지막 날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오렌지가 생전에 다니고, 만났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억하고, 추모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였다는 것, 이렇게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아파했다는 것을 오렌지는 알고 있을까? 오렌지가 늘 모두와 함께 했듯 마지막 떠나는 여행길 외롭지 않게 많은 이들이 동행이 되어주었다. 오렌지가 늘 지나던 행궁길 골목, 다산인권센터 사무실, 저 멀리 보이는 서장대. 잊지 말라고, 그리고 하늘에서도 길 잃어버리지 말고 찾아오라고 영정 사진 가득 담아주어 보냈다.

사람이 한 줌의 재가 되는 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한 많은 세상을 살아온 이들이 떠나는 시간은 살아온 시간이 길던, 짧던 그 시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평생 온전히 살아온 육신이 재가 되는 순간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러닝 타임과 비슷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을 영화 같다 하는지도 모르겠다. 6월 10일, 35년을 살아 온 오렌지의 영화가 끝났다. 오렌지가 떠나는 마지막 많은 사람이 울었다.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모르겠다. 그저 열린 결말쯤, 평생 잊히지 않을 영화라고 해두자. 오렌지가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오렌지를 기억하고 함께하니 말이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의 화장 전 활동했던 다산인권센터를 찾은 모습(사진=박김형준)


2015. 6. 16 미디어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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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현장'을 누비던 오렌지의 '휴가'를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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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에 관한 짧은 소회[기고]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에 관한 짧은 소회

Posted at 2015.05.08 11:42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종이 한국을 떠나며 남긴 말이다. 교종의 가슴에 단 세월호의 노란리본을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며 떼는 게 좋겠다는 누군가의 의견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지난 5월1일부터 2일까지 노동절 집회와 세월호 시행령 폐기와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집회까지 1박 2일 동안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을 했다. 참담했고, 비참했다. 365일을 2014년 4월 16일로 살아온 유가족들의 고통 앞에 청와대와 경찰은 애초부터 ‘중립’은 없었다.

중립

경찰은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시위 참가자들에게 최루액은 물론 최루물질인 ‘파바(PAVA·합성 캡사이신의 한 종류)’를 섞은 물대포를 난사했다. 경찰차벽으로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고, 심지어 차도는 물론 인도까지 시민들의 통행을 막았다. 이에 항의하면 어김없이 채증 카메라가 등장했다. 어떤 근거로 통행을 막고 있냐는 시민들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집단적 항의에는 예외 없이 해산을 종용하는 선무방송이 이어졌고, 곧이어 최루액이 시위대를 향해 뿌려졌다.



▲ 지난 5월 1·2일 세월호 참사 1박2일 노숙농성 관련 인권침해감시단 활동모습(사진=엄명환)



세월호 유가족들은 경찰의 의도적인 ‘고립작전’에 지쳐갔다. ‘차라리 잡아가라’는 호소는 ‘농담’이 아니었다. 도로에 ‘방치’된 유가족들은 교통불편을 초래한다며 지나가는 일부 차량 운전자들에게 욕을 들어야 했다. 인도를 열어줄 것을 경찰에 요구해보지만 마찬가지로 경찰방패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이 과정을 촬영하던 MBC 카메라는 유가족들에게 쫓겨났다.

고 유예은 양의 아버지인 유경근씨가 목에 밧줄을 묶었다. 연이어 유가족들은 목에 밧줄을 묶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죽어서 아이들을 보러 가는 게 이 비참한 현실보다 낫겠다며 밧줄을 묶었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섞인다. 이들의 호소는 절박했지만 경찰의 태도는 단호했다. ‘당신들은 여기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가만히 있으라’

진압

‘인권침해감시단’은 전국인권단체들의 네트워크인 ‘인권단체연석회의’와 ‘민변’에서 주요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인권침해에 대한 모니터와 현장대응을 목표로 수년째 운영 중이다. 지난 5월 1일, 2일에도 10여명의 변호사와 활동가들이 형광색 조끼를 입고 현장에 투입(?)됐다. 말이 감시단이지 법적인 권한도 없고, 보호도 받을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연행도 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는 경우도 있고, 재판까지 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집회현장에서 경찰의 항의도 받는 경우도 있다. 지난 집회현장에서 감시활동을 하던 활동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시민들이 경찰을 욕하는 것은 인권침해 아닌가요? 좀 공정하게 하세요!”

뭐, 욕뿐이겠는가. 버스에 줄을 묶어 당기고, 물병이 날아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몸싸움도 벌어진다. 여기서 인권은 ‘경찰에게도 인권이 있으니 자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인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회 시위 현장에서 인권옹호 활동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 맨몸으로 맞서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권리는 애초부터 ‘진압’ ‘봉쇄’ 당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박노자의 말처럼 “체제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시위란 그 자체는 어떤 물리력 행사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집단행위”이기에 여기서 ‘폭력은 나쁘다’는 양비론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최근 세월호 관련 대규모 집회는 경찰의 차벽설치와 통행제한으로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다. 소위 불법, 폭력시위를 ‘예방’한다는 논리로 시민들의 호소와 집회시위의 권리, 이동의 자유가 완벽하게 차단당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길을 차단해놓고, ‘교통불편을 초래하니 해산하라’는 경찰의 말은 그래서 문제적이다.

국제엠네스티 아놀드 팡 동아시아 조사관은 “시위대는 청와대 앞에서 집회·시위를 할 권리가 있다. 단지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용도로 차벽이 사용됐다. 평화로운 집회·시위의 자유에는 시위대가 그들의 주장을 전달하고자 하는 대상이 보이는 거리, 그리고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거리 안에서 집회·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돼있다”고 논평을 발표했다. 저들이 밥 먹듯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자유’는 경찰차벽에 가로막혀 있다.



▲ 유가족들은 청와대도 광화문도 갈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경찰의 고립작전은 인권도 무용지물이었다(사진=엄명환)



자유

헌법,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과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을 어렵사리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인간으로서 보편적 권리를 항상 주장해 왔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쯤은 살다보면 누구나 느낀다. 돈도 빽도 없는 사람들은 악다구니라도 써야 살아남을 수 있다. 여기서 최소한의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은 권력자, 정부다.

하지만 이 정부에게 애초에 ‘중립’을 기대하기 어렵다. 태생이 국정원을 비롯하여 온갖 국가기구를 동원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통해 만들어진 권력이기 때문이다. 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중립적,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들이 좋아하는 ‘법대로’ 혹은 ‘법의 심판’은 단지 시민들의 자유를 옭아매는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그래서 인권은 결코 중립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인권은 법의 테두리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가만히 있지 말고 편을 들어 주세요. 중립은 항상 강자를 도와주지 약자를 돕지 않습니다. 침묵은 고통주는 사람에게 유리하고 고통 받는 사람을 보호하진 못합니다.


1986년 폭력과 억압, 인종 차별과의 투쟁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엘리 위젤이 남긴 말이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인권침해 감시단은 경찰의 기대처럼 앞으로도 결코 중립적이지 않을 것이다.


2015. 5. 7. 미디어스
안병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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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 인간의 고통 앞에서도 청와대와 경찰은 '중립'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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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인권이 미술관에게 던지는 질문[미술관] 인권이 미술관에게 던지는 질문

Posted at 2015.03.17 11:38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이 교과목에 왜 있어야 하는지. 타고난 손재주와 예술 감각이라고는 발톱 때만큼도 없다는 자괴감으로 미술시간이 수학시간 만큼 싫었던 그 때.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미술교육 폐해라고 볼품없는 감각을 정당화 시키곤 했는데, 요즘 때 아닌 미술관 논란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미술’은 지금도 내게 어려운 과목이다.

다산인권센터 사무실 옆, 그러니까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수원시가 자랑하는 수원화성의 중심, 화성행궁 바로 앞에 미술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2013년 12월 착공해 올해 6월 완공 후 10월에 공식 개관할 예정인 미술관인데, 수원시에서 최초로 건립되는 ‘공공미술관’이다. 말하자면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게 수원에 생긴다는 뜻이다. 문제는 미술관의 명칭이다. 물론 미술관의 위치, 시설, 운영 등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지만 일단 여기서는 명칭에 국한된 논란만 소개한다.



▲ '아이파크' 미술관 명칭반대 1인시위 (출처 : 대안미디어 너머)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이라는 단어가 조합된 이 명칭은 현재까지 ‘가칭’이다. 6월 완공을 앞두고 공식명칭이 정해져야 하는데, 무슨 이유인지 아직까지 ‘가칭’이다. 완공을 앞두고 조만간 명칭을 확정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주변에 들리는 바에 따르면 ‘가칭’에서 거의 ‘확정’단계라는 것이다. ‘아이파크’는 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브랜드다. 결국 공공미술관 명칭에 특정 기업의 아파트 브랜드가 붙는 기묘한 이름이 탄생하기 일보 직전이다.

배경은 이렇다. 120만에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는 수원시에 번듯한(?) 공공미술관 하나 없는 게 마음에 걸린 염태영 시장은 시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몇 개의 기업에 미술관 건립 제안을 했는데,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안되겠다 싶던 때 평소 안면이 있었던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대표이사를 만나 미술관 건립 의사를 물었고, 정몽규 대표이사가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염시장은 “현대산업개발 이름을 걸고 잘 지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름을 걸고’라는 것이 지금 이 사단이 난 최초의 시작인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 과정은 지난 2월 27일, 미술관 명칭을 문제제기하는 몇몇 분들이 염태영 시장과 만나 직접 나눈 대화를 전해 듣고 재구성 해본 것이다.

기부가 아닌 거래

현대산업개발이 300억을 들여 공공미술관을 짓는다(물론 정확히 미술관 건립에 300억이 드는지 어쩐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오는 6월에 건축이 완료되면 수원시에 ‘기부’하기로 되어 있다. 수원시나 현대산업개발은 양쪽 모두 ‘기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개발이익환수 차원의 ‘기부채납’과는 다르다고 누차 주장해 왔다. ‘기부’냐 ‘기부채납’이냐는 그동안 수원시와 현대산업개발측과 협의 및 공식적으로 맺은 MOU 문서 등을 확인해봐야 알 수 있으나, 수원시는 현대산업개발 측의 반대로 공개하지 못한다고 전해온바 있다.

수원시와 현대산업개발 측의 말대로 ‘순수한’ 기부라고 치더라도 기부는 기부다워야 하지 않을까.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중요한 문화공간에 거대한 공공미술관을 짓고 그 미술관 이름에 아파트 브랜드가 들어가는 간다면 그것은 ‘기부’가 아니라 ‘거래’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아파트 브랜드 광고판을 세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래’가 꼭 나쁜 표현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거래가 투명하고 공개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공공영역에서는 필수적이다. 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시설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지어준다고 ‘얼씨구나’ ‘고맙습니다’ 하고 넙죽 받아 기업이름, 브랜드 이름을 넣어주는 게 유행이다시피 한 요즘, 이런 문제제기가 생뚱맞은 걸까? 수원시는 아직까지도 명칭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있다.

공공성을 대체하는 '민자'라는 장삿속

주변에서 미술관 명칭이 뭐가 중요하다고, 300억씩이나 투자해 만들어주면, 까짓 아파트 광고 하는것도 봐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분들도 있다. “부족한 지방정부 예산으로는 꿈도 못 꾸는 공공미술관을 지어준다는데 고맙게 받기나 하지 말이야…”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부족한 재정을 이유로 각종 공공건물, 시설, 나아가 사회서비스, 문화 등이 기업, 특히 재벌들의 투자유치,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되고 있다. 가깝고도 대표적인 사례가 민자역사인 수원역이다. 2003년 애경백화점(현재는 AK플라자)이 문을 연 후 온갖 상업시설이 집중되어 있고, 현재는 롯데몰 입점, 노보텔 등 거대한 상업지구로 변했다. 공영주차장은커녕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한 공공시설, 광장 등은 나날이 축소되고 있다. 이렇듯 공공 영역이 자본 논리에 잠식당한 결과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전가된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승객 안전을 우선 관리해야할 국가는 해운업체의 이윤을 위해 규제를 완화해 21년이나 된 노후 선박을 버젓이 운행 가능하게 했다. 구조도 민가업체에 떠넘기다 시피했다. 성장, 효율, 이윤 추구라는 지상최대의 과제로 인해 사람들 생명과 존엄이 싱크홀로 빠지고 있다. 무너진 공공성은 사회 곳곳의 안전장치를 해체하고 있다. 혈세로 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민자고속도로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지난해 SBS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보면 충격적이다. OECD 33개국 중 공공성 순위로 한국이 33위를 기록했다. 꼴찌다.

그래서 공공미술관 명칭은 단순히 기업 브랜드를 넣냐, 빼냐의 문제를 넘어선 것이다. 우리사회 ‘공공성’ 가치와 맥이 닿아 있다. 동시에 경제논리에 항상 뒤로 밀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기도 하다. 시민의 정치적 권리와 관련된 것이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와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고집스런 인권운동을 하는 다산인권센터가 미술관 명칭에 호들갑 떠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짓기 온라인 서명진행중입니다. 함께 해주세요. 참여는 홈페이지(http://goo.gl/KpKX4d)를 통해 하실 수 있습니다.


2015. 3. 17. 미디어스

안병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미디어스] 수원시 공공미술관 명칭, '시립 아이파크' 괜찮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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