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혁명보다 사랑[기고] 혁명보다 사랑

Posted at 2015.07.13 10:02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남들은 혁명을 주장하고 계급을 얘기하는데, 고작 사랑 따위 타령을 운동씩이나 해야 하다니, 한심해서….” 기운 빠진 목소리가 기억난다. 그는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였다. 한숨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에 입바른 위로도 해주지 못했다. 감추어야 하는 감정과 감당했던 슬픔, 두려움에 대해서도 말했다. 정체성이 일상 속에 부대꼈다. 빚어낸 갈등이 발목을 오래 붙잡았다. 밝히지 못했기에 거짓말쟁이 같았다, 했다.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말해야만 하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어. 운동하면서도 나는 겉돌았지, 세상을 바꾸자고 얘기하면서도 말이야. 그런데 이제 다 밝혔는데, 또 드는 생각은… 언제까지 나는 정체성에, 사랑 따위에 묶여 있어야 하는지 말이야.”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애인 있어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고 시절, 책상 서랍 속 “언니가 좋아요”라는 고백 담긴 쪽지가 떠올랐다. 밸런타인데이, 누군가 아침 일찍 넣어둔 편지와 초콜릿들이 있었다. 선머슴 같은 외모 때문이었는지 쫓아다니는 여자애들이 꽤 있었다. 동성에 대한 애정이었는지, 이성을 대체하는 감정이었는지 굳이 따지지 않았다. 일종의 환경이고 문화였다. 무엇보다 나는 가슴이 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 듣던 다른 레즈비언 친구는 “당신한테 했던 고백 때문에 뼈가 녹는 고통을 당한 이가 있었을지 몰라” 했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사랑이니까…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받고 싶은 것이 사랑이니까.


부채춤 앞에서 사랑을 외친 그대들

한국 사회는 서울시민인권헌장, 동성결혼 합법화, 퀴어 퍼레이드를 통해 성소수자의 사랑과 삶에 대해 이야기 중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이야기 중이라고. 12년 전 인권활동가 대회를 처음 시작할 때 인권운동에서도 성소수자운동은 낯설었다. 성소수자는 사진 촬영에 담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서울시청을 점거한 성소수자들을 보았다.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이 들어간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를 거부한 서울시에 대한 ‘무지개 농성단’의 항의 행동이었다. 인권활동가들만 있는 장소에서도 얼굴 밝혀지기 꺼리던 이들이 혐오세력이 득실거리는 시청 안을 일주일 동안 당당히 점거했다. 감격스러웠다. ‘벽장 속에서 나오다’(come out of the closet)라는 ‘커밍아웃’이 이렇게 당당히 실현되는 장면이라니!


“남자친구 있어요?”라는 질문조차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애인 있어요?” 정도 질문이면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이성애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배제와 소외가 시작됨을 알려주었다. 그들로 인해 내 인생은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그 시절 고백한 그녀들이 여성이라서 두근거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모든 남성에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이유와 같았겠지. 사랑이 뭔지 아직 모르는데, 앞으로 무엇에 흔들릴지 내가 나를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아니지만, 너를 인정한다’는 어줍지 않은 타자의 말을 거두라. ‘고작 사랑 따위 타령을 운동씩이나 해야’ 하는 고뇌를 품은 이들이 곁에 있다. 국제사회에서 인권 등급이 거침없이 추락하는 ‘아몰랑’ 사회에서 유일한 위로가 되는 이들이다. 그들이 얼굴 내밀고 퀴어 축제를 벌인 오늘, 우리 모두의 인권 수준이 높아졌다. 그 힘은 정체성으로 인한 부끄러움과 갈등과 수치심 그리고 뼈를 녹이는 사랑에서 나왔다. “똥구멍으로 그 짓 하는 게 지금 잘하는 짓이냐”는 절망의 부채춤 앞에서 혐오보다 사랑을 외친 그대들. 세상은 사랑으로 바뀌지 않겠는가. 어쩌면 혁명보다 사랑!



2015. 7. 9. 한겨레 21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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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보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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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차이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드는 방법[기고] 차이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드는 방법

Posted at 2015.07.03 12:55 | Posted in 활동소식/기고문 모음


메르스, 지독한 가뭄,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도대체 누가 누구를 배신했다는 건지, 기억상실에 걸린 것이 아닌 이상 자신의 과거 행적 불구하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에 대한 언급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정치판의 난리법석까지. 비가 모자라 먼지가 풀풀 날리고 쩍쩍 갈라지는 땅처럼 건조하고 갑갑하기만 했던 나의 마음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 준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지난 26일 내려진 미국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 판결이었다. 뉴스와 함께 실린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지며 그 역사적 현장 속에 나도 함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미국 대법원이 동성 결혼 허용을 미국 전역으로 확대하는 역사적 판결을 선고하기 전날인 25일(현지시간) 늦은 밤 동성애자 인권 운동의 중심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시 청사가 이를 상징하는 무지개빛 조명으로 빛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동성결혼 합법화는커녕 여전히 온/오프라인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발언과 폭력이 난무한 이 현실에서 이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기에 축하와 부러움의 마음은 묘한 뒷맛을 남겼다.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진일보할 수 있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상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매번 성소수자들의 행사에 지치지도 않고 나타나 막말과 폭력, 막무가내의 행동 등으로 행사를 방해하는 혐오세력들의 행태를 보면 이들에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라는 것이 가능한지,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계속해서 평행선을 그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과연 혐오세력들은 왜 그렇게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것일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이기는 하다. 어떤 이들은 성소수자가 말 그대로 소수이고 다수인 이성애자들에게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낯선 존재를 배타적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와 모든 것이 동일한 존재가 아닌 이상 모든 타인은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다. 신체적 차이이든 심리적 차이이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낯선 존재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타인의 차이점을 혐오하면서 살아가지는 않는다. 서툴고 가끔 삐걱삐걱 거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맞춰가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다른 존재와 이런저런 기회들로 조우하고 그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면 처음에는 엄청나게 크게 느껴졌던 차이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다른 차이들에 비해 성적 지향의 차이가 특별히 극복 못할 차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까?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 친구가 하나 있다. 데비는 미국에서 같이 음악치료를 공부하던 친구였다. 나와 나이 차이가 10살이 넘게 났지만 항상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여 곁에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친구였다. 어느 날 데비가 나한테 소개를 시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파트너라고 했다. 그 당시 내가 아는 ‘파트너’라는 말의 뜻은 비즈니스 파트너 정도 밖에 없었기에 속으로 ‘얘가 사업을 하나?’라고만 생각하고 따로 묻지는 않았었다. 데비의 ‘파트너’는 셸리라는 여성이었는데, 함께 있는 내내 서로 손을 꼭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크게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그 이후에 데비가 말한 파트너가 라이프 파트너라는 의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 데비의 성정체성 역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 인권 단체 회원들이 26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도서관에 모여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및 전국 허용 결정에 기뻐하고 있다.(AP=연합뉴스)

그때까지 얘기만 들었을 뿐 실제로 동성애자를 만나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한동안 나는 두 사람을 매우 신기한 존재로 여기면서 이런저런 호기심을 가지고 두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었다. 두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아 자고 온 적도 몇 번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 둘은 두 사람이 모두 여성이라는 것 이외에는 여타의 연인과 다를 바 하나 없는, 서로를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오히려 레즈비언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주변의 사람들도 둘을 이성애 커플과 다르게 보거나 대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데비와 셸리와 함께 웃고, 노래하고, 우정을 나눈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점점 그들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내게는 레즈비언이라는 레벨보다는 ‘내 친구 데비와 셸리’라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이다.


데비와 셸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내가 성소수자를 차별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들과의 우정 덕분에 성소수자 인권의 문제에 훨씬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데비와 셸리와의 만남은 나에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차이를 별 것 아닌 걸로 만드는 데는 만나고, 서로 알아가는 것 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 특히 혐오세력들에게 나와 같은 행운이 찾아오기는 어렵겠지만 부디 성소수자에 대해 혐오 발언과 행위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자신들의 무지와 편협한 시선을 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것을 포용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그래서 성소수자들이 결코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평등한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더 나아가 성소수자라는 꼬리표 아래 가려진 개개인의 모습을 하나하나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2015. 7. 1. 미디어스

아샤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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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②] 동성애자 블랙잭[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②] 동성애자 블랙잭

Posted at 2012.09.25 10:38 | Posted in 활동소식/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

우리가 받은 벌이 에이즈? 선생님, 제발...

[청소년 소수자를 만나다②] 동성애자 블랙잭

오는 10월 5일이면 경기도교육청이 전국에서 최초로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지 2년이 된다. 이후 서울, 광주 등 다른 지역 교육청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시행 중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 존중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학교 문화를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는 데에는 대체로 공감한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의 안과 밖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위태롭다. 이런 상황을 점검해보기 위해 경기학생인권조례 공포 2년을 맞아 다문화, 성소수자, 장애, 탈학교 등의 학생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권 현실을 짚어보는 기사를 4차례에 걸쳐 준비했다.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로 살아가는 학생,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학생인권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전국 최초로 학교 안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법률인 '경기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 2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처음 제정될 당시 엄청난 사회적 논란이 일었고, 다양한 논의 속에서 '경기학생인권조례'가 2010년 10월에 공포되었다. '경기학생인권조례'는 전국적인 학생인권 열풍의 시작이 되었고, 광주와 서울에서도 차례로 조례가 제정되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그동안 학교는 얼마나 살만 한 곳으로 변했을까. 

내가 즐겨보던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생각났다. 아니, 그 드라마에 나오는 '강준희'(호야 분)라는 캐릭터가 생각났다. 남자주인공을 짝사랑하는 고등학생 '게이' 강준희가 보여준 그의 삶은 대중에게 별 다른 거부감 없이 다가갔다. 하지만  수많은 이 시대의 '준희'의 삶도 그렇게 아름답기만 할까. 드라마에서 들려주지 못한 10대 게이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그들이 느끼기에도 행복한 학교가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를 만났다. 햇살이 따사롭던 지난 주말(15일) 오후, 청소년 성소수자 블랙잭(가명, 고2)을 만났다. 연신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이성애 강요하는 가족들... "험한 꼴 많이 당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저는 연애를 하고 싶었어요. 나와 같은 다른 남자친구들은 자연스레 이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지나가다 다른 여학생들을 보고 "예쁘다"며 한참을 호들갑을 떨기도 했고. 더러는 연애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왜 연애를 할 수 없는지 궁금했어요. 그때부터였어요. 저는 제가 남들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게요. 남성인 내가, 나와 똑같은 남성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다른 친구들은 평범하게 이성 친구를 좋아하고 연애도 잘 하는데 저만 겉도는 것 같았어요. 스스로 부정해보기도 하고, 마음을 다 잡아 보기도 했죠.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 청소년 성소수자 블랙잭 ⓒ 혜원



대답을 하는 내내 수줍은 듯 웃는 블랙잭을 보며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는 그의 성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웃으며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해맑은 웃음 뒤에 숨겨진 남모를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스스로의 성정체성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어요.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라 아주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어요. 기독교인으로서 내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어요. 교회에서는 흔히들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말하잖아요. 특히 최근에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서명을 공공연하게 마당에서 받거나, 레이디 가가 콘서트에 대해 악의적으로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화도 나고 상처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동시에 마음속에서 자괴감과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자라났죠. 부모님께서 제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실까봐 일부러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과장되게 행동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부모님이 결국 아시게 되었어요. 그때 참 험한 꼴 많이 당했어요(웃음). '니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른다'는 얘기로 시작해서, 저의 성정체성이 바뀔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시면서 상담치료를 받도록 하셨어요. 대화를 할 때도 은연중에 '예쁜 여자 친구 없니? 여자 친구 생기면 말해' 이런 식으로 이성애를 강요하시기도 했어요."

과학 선생님의 '명언'

그에게 가정은 폭력적인 공간이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고쳐야 할 어떤 '병'으로 인식하는 부모님의 태도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가정만큼이나 블랙잭에게 힘겨웠던 공간은 바로 '학교'였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교사들이 보인 태도예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요. 과학 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이 어떤 법칙을 설명하시면서 비유를 들었던 적이 있어요. '남자랑 여자랑 만나는 것이 당연하듯이 이 법칙의 원리도 당연하게 성립이 된다'라는 요지의 발언이었어요. 그러면서 뒤에 덧붙이는 말이 '이런 걸(이성애) 지키지 않고 동성애를 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런 신의 뜻을 거역해서 동성애자들이 받은 벌이 에이즈다' 라는 명언을 남겼었죠.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곡된 정보를 수업 중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했던 게 소름이 돋았어요.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전혀 없었던 거죠.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누군가 상처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 공간에 성소수자가 존재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실 '경기학생인권조례'에서는 '성적 취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물론 아주 짧은 단어로 이야기 되었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의 성소수자를, 동성애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법률로써 그들의 인권을 보장한 것은 처음이지 않았는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교칙을 봐도 연애를 금지하는 조항에 굳이 불건전한 '이성교제'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고. 동성끼리도 연애를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거죠. 여전히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동성애를 모른 척 없는 척 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그는 왜 학생인권조례가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 한다고 생각할까? 

"우선 많은 교사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정치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조례가 자신의 정치관이랑 맞지 않으면 따르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으로 생각하는 거죠. 때릴 거 때리고, 욕할 거 욕하고. 그리고 학생인권조례라는 것이 사실 헌법이나 유엔아동권리헌장 등에서 이미 보장하고 있는 것들의 예시를 들어주면서 구체화 한 것인데 마치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의 인권의 한계라고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는 것 같아요. 또 교사든 학생이든 학생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것 같아요. 또, 학생인권조례에서 규정한 의무 인권교육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분명 이수해야 할 교육이 있는데도 한 번도 못 들어 봤어요. 근데 더 큰 문제는 교육청이에요. 학교 현장에서 인권조례가 지켜지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든, 정착을 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노력도 장치도 없어요. 학생인권조례로 소수자의 인권도 보장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이지 못해요. 아무리 소수자 인권을 보장한다고 명시해도, 학교도 교육청도 거기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 같아요.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니까요."

지역마다 다른 학생인권조례 한계 많아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금의 '경기학생인권조례'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조례'가 한정적인 범위 내에서 행해지다 보니 생기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법률로써 강제할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그가 생각하는 학생인권조례의 방향이 궁금했다. 

"분명 조례만으로 학생인권을 보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지역별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내용도 다르죠. 예를 들면, 서울에서는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경기도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또한, 경기도에서는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지만, 서울에서는 그 조항으로 엄청난 논쟁이 있기도 했어요. 시의회 농성도 하고. 지역에 상관없이 학생이라면 누구나 적용 받을 수 있는 상위법의 제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학생인권 법' 같은 거요. 하지만 법으로 강제하는 것에도 분명 한계가 있기 마련이에요. 법 제정과 시행에 더불어 직접적인 행동도 필요해요. '퀴어 퍼레이드'처럼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들의 문제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 청소년 성소수자 블랙잭 ⓒ 혜원



학교 안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삶인 것 같다. 그럼에도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스스로가 바라는 학교의 모습, 학교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그 얘기를 듣고 싶었다.

"학교는 굉장히 폭력적인 공간이에요. 약자에게는 더더욱 그렇죠. 늘 그런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 되다보니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을 때도 많아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와 같은 폭력을 당하는 친구들이 분명 더 있겠죠? 하지만 학교를 그만두기에는 걸리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당장 부모님과의 갈등도 두렵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어요. 내가 발 딛고 선 이 공간에 대한 변화를 꿈꾸기 때문이고, 행동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내가 하나의 사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여기 이렇게 상처받고 차별받는 누군가가 있다고. 여기 남들과는 좀 다른 내가 있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이 큰 거죠. 나는 학교를 그들과 내가 살만한 공간으로 바꿔나가고 싶어요. 더 열심히 노력할 거고, 더 부단히 움직이려고 해요.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학교가 변하지 않으면 사회도 변하지 않으니까요. 아 그리고, 학교를 떠나지 않는 이유 중에 학교 내에서 연애를 해보고 싶은 이유도 있어요. 이건 제 꿈이에요.(웃음) 그러니까 저는 제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더욱 학교 안에서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외치고 싶어요. 적어도 저 같은 사람이 연애를 하고 싶을 때, 당당하게 연애할 수 있는 그런 토반을 다져놓고 싶어요. 뭐 애인을 만드는 건 제 노력이지만요.(웃음)"

마치며

우리는 2012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준희를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브라운관 밖에서, 스크린 밖에서 존재하는 준희의 삶도 과연 드라마처럼 아름답기만 하냐고 말이다. 그러자 2012년의 준희는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고. 그는 스스로가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뼈아픈 증거가 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학교 현장이,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놓쳐버린 많은 것들에 대한 절박함이기도 했다. 준희는 온 몸으로, 그의 삶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느냐고. 이제는 우리가 준희에게 대답을 해야 할 차례다. 우리 모두가 길을 묻고, 길을 찾아가야만 한다고.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야만 한다고.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학생의 인권을 보장 한다'는 본연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그렇다고 멈춰서 있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해 수천 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학교는 수천 명의 학생들을 버리고 만다. 연일 학생들의 자살 소식이 터져 나온다. 학교가 아프다는 외침이다. 학생들이 죽을 만큼 아프다는 비명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이 아픈 현실에 대한 유일한 해답일 리는 없다. 다만, 시작임은 분명하다. 
2년을 달려왔지만 가야할 길이 아직은 더 먼 학생인권조례다. 학교가 학생들이 행복한 공간이 되기까지,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상처 받지 않는 공간이 되기까지, 더 이상 죽는 공간이 아닌 '살아가는' 공간이 되기까지 가야할 가시밭길은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딛을 때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은,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으로 숨겨져 온 모든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 글 : 전혜원 (청소년 인권활동가)
 오마이뉴스 원글 보기(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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