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획광고4 - 학생인권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획광고4 - 학생인권

Posted at 2012.10.09 17:53 | Posted in 20주년소식



다산인권센터 20주년 기획광고4 - 학생인권

"어린 것들한테 인권은 무슨..."
"인권이요? 인권은 뭐...개뿔이죠"

개뿔 취급 받는 인권이 있습니다.
몽둥이에 뼈가 부서져도,
일상을 둘러싼 점수와 등급에 가슴이 무너져도
무한경쟁의 속도에 숨이 가빠와도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살아도 아닌 것처럼...
그러나 세상에 하찮게 여겨도 괜찮은 인권은 없습니다.

더 이상 미루지 않기, 개뿔이라 외면하지 않기,
학생인권의 제자리 찾기
다산인권센터와 함께 만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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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 마, 씨바! _ 푸른 솔쫄지 마, 씨바! _ 푸른 솔

Posted at 2011.11.15 17:31 | Posted in 격주간 <다산인권>/한잔의 인권

사진출처 : 대학뉴스(http://www.univnews.net)


이번 주 초반부터였나. 이사도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우리 집 냉장고가 꽉 차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동생이 고3, 수험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번 주에 수능이 있지. 수능 바로 전날, 일이 있어 대학로 쪽에 갔다가 한 제과점에서 열심히 수능 찹쌀떡, 엿, 초콜렛 등등을 판촉 중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 귀에 들어오는 한 마디. 

“우리 학생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날이지 않습니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우리 삶에서 더 중요한 날은 수능 이후로는 물론이고, 수능 전으로도 얼마나 많은데. 장삿속이라는 건, 좀 어렵게 말해 자본이라는 건, 개인들의 삶조차도 규정하며 이용해 먹으려는 걸까? 수능을 전후해서 자살하는 학생들이 속출하는 건, 제대로 시작도 못해본 삶들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건, 그런 우리 사회의 규정 때문이 아닐까, 라고 멍하니 생각했더랬다.
 
 수능 날 아침 퍼자느라고 동생에게 미처 전해주지 못했던 말이 있다. 

“쫄지 마, 씨바.”

그래, 쫄 필요 없다. 더러운 세상이라 수능이 인생을 결정한다, 대학 좋은데 못 가면 한국 사회에선 인간도 아니다, 같은 말들은 어떻게 생각하면 구조를 비판하는 척 하면서 우리를 겁주는 말인지도 모른다(뭐, 물론 저 말 뒤에 어떤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겁주는 세상에 “안 쫄아! 씨바” 를 외치며 펀치 한 방 날려주신 투명가방끈 님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왕창 표명한다. 

■ 푸른솔님은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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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거부선언"이라는 불복종의 의미 _ 공현"대학입시거부선언"이라는 불복종의 의미 _ 공현

Posted at 2011.11.15 16:36 | Posted in 격주간 <다산인권>/인권이슈/현장


해마다 11월만 되면 모두가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 외치는 구호가 있다. 모두가 그 잔인한 현실을 모르지 않으면서, 마냥 덮어두려는 순간이 있다. 바로 "수능대박"이다. 수능을 비롯한 대입제도는 엄연히 상대평가 시스템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란 이름과 달리, 이 학생이 어떤 능력이 있나 없나를 검증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 수험생들 중에 점수가 몇 번째인지를 보는 방식이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수능에서 내가 대박이 나면 남은 못 보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예컨대, 내가 운 좋게 찍은 게 맞아서 원래 4등급이었을 법한 성적이 3등급이 되었다고 해보자. 그 ‘행운’의 이면에 있는 현실은, 다른 누군가가 3등급에서 4등급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 행운, 정말 기분 좋게 행운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입시경쟁은 결코 "모두가 승리"할 수 없을 뿐더러, "다수가 승리"할 수도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입시에서 승리했다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뿐이다. 이게 무슨 올림픽처럼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소수의 선수들끼리 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거라면 그런 경쟁 시스템도, 어쩌면 용인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건 모든 사람들이 거쳐야 하는 보편적 공교육에 관한 이야기이고, 모든 학생들의 70-80% 이상이 입시에 매어 있는 현실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그게 정당한 거라고도, 좋은 거라고도, 용인하기 어렵다. 시스템이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 여러 '수능거부자'들

사람들의 기억은 휘발성이다. 하루하루 삶에 치어, 쏟아지는 정보들에 묻혀, 많은 것들을 쉽사리 잊고 만다. 오직 그 사건이 마음속에 상처로, 흠집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만 기억이 오래 간다. "수능거부"도 어쩌면 그런 기억의 속성을 드러내주는 사건일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은 최근 몇 년 사이, "수능거부"를 선언하고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혹시 기억하고 있는가?

내가 알기로 가장 오래된, 수능 날에 수능을 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경우는 2002년, 광주에서 《전국중고등학생연합》 활동을 하던 박형준(지금은 박고형준이란 이름을 쓴다.) 씨였다. 물론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1980년대 후반에 '고등학생운동'(고운)을 하던 많은 청소년들이 대학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더랬다. 하지만 그들이 입시제도나 대학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2002년에서 2006년 사이까지는 별다른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2007년부터 대학입시를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발표한 "수능거부"는 계속 이어졌다. 2007년에도 1명, 2008년에도 2명, 2009년에도 2명, 2010년에도…. 2008년 수능거부를 발표했던 김남미(엠건) 씨는 제법 이슈가 되기도 했고, 바로 작년인 2010년에는 한 고등학생이 정부중앙청사 정문에서 "친구를 적으로 만들고 인생을 점수로 매기는 수능을 거부합니다. 12년의 성적경쟁을 끝내며"라는 피켓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1인 시위를 했다. 

사람들은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그들을 한 번 흘끗 보고 혀를 끌끌 차거나 대단한 용기라고 박수를 칠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이면, 아니 며칠 뒤면, 그 사건을 잊을 것이다. 당사자들에게는 커다란 용기였을 선택이, 그 많은 수능거부를 지켜봤던 나로서는 항상 마음의 응어리로 남아 있을 그 모습들이, 잠깐의 가십거리가 되고 만다.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 선언을 두고 사람들은 한편에서는 냉소적으로 한편에서는 비판적으로 "지방대 다니는 학생이 그랬으면 과연 이만큼 주목을 받았을까?"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지방대 다니는 학생"을 말할 때조차도 사라지는 존재들, 바로 그 "수능거부자"들이 떠오른다. 이어서 내 주위의, 나아가 '데이터상'의 수많은 "고졸", "중졸", "초졸"들 역시 떠오른다.
  
'개인의 선택', 그 이상으로 '집단적 운동'

그러다 올해에는 아예 집단적으로 19살, 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을 준비하게 되었다. 11월10일, 전국의 고3들이 수능시험을 치르던 날, 청계광장에서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했다. 93년생(올해 ‘고3’) 청소년활동가 다섯 명의 첫 제안으로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은 시작되었다. 지금의 입시교육에 문제가 있고 그 입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수능을 거부하겠다는 이야기부터, 중등교육과 대학교육, 사회적 불평등과 복지의 문제까지 제기하며 벌이는 운동이다. 개인, 1~2명의 수능거부가 아니라 수십 명,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이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을 지지하는 의미를 담아서 20대 이상, 이미 대학을 가지 않았거나 중간에 그만둔 이들의 '대학거부선언'도 함께 했다. 

지금 대학입시거부선언 운동에는 몇 가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 중 몇 가지, 내가 생각한 중요한 의미들을 꼽아보겠다. 첫째, "일단 대학은 가고 나서"라는 유예 논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지금까지 대학입시나 학벌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일단 대학에 가고 나서" 생각하고 이야기하라는 논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조금만 더 '유예'하라는, 즉 뒤로 미뤄두라는 말로 결국 지금의 교육-사회 구조에 대한 변화를 막고 사람들을 체제로 편입시키는 효과를 냈을 뿐이었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은 그런 유예 논리에 대해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라고 말하며 정면으로 맞서는 목소리이다. 지금의 체제가 우리가 일정한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불복종하고 바꾸라고 요구할 만큼 잘못되어 있다는 당당한 선언이며, 특출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여럿이 공감하고 연대하는 실천이다.

둘째, 말만 무성하고 실천이 부족하던 교육운동에 대한 경종이다. 지금까지 교육운동은 실질적인 조직화와 실천은 부족하면서 정책이니 대안이니 토론회니 하며 말만 무성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온갖 연대체가 만들어지지만 그 연대체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토론회를 하고 가끔 집회를 하는 것뿐, 현장에서의 실천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학교의 여러 억압적인 상황, 많은 이들이 경쟁에 쫓기는 현실, 그리고 교육운동 주체들의 절박성 문제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얽혀 굳어진 문제였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은 그런 상황에서 가장 절박한 주체들인 청소년들이 나서서 자신의 삶으로, 온몸으로 교육 문제를 지적하고 불복종을 실천하는 운동으로서 의미가 있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의 문제의식과 실천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이후에 이어지는 여러 활동들이 교육운동이 힘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새로운 운동 주체들의 형성이다. 대학입시거부선언․대학거부선언을 준비하는 '투명가방끈' 모임에서는, 이후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선언에 참여했던 선언자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후속 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이 네트워크는 학력․학벌 차별의 당사자인 이들이 서로의 삶을 돕고 지지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앞으로 이와 관련된 운동에서 의미 있는 주체가 될 것이다. 물론 선언자들 모두가 이후에 활동가로 살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선언자들은 각자의 삶, 각자 바라는 진로가 있고, 선언 이후에는 이와 같은 운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선언자들 중 일부는 계속 '선언'에 담았던 문제의식을 가지고 활동할 것이며, 이 네트워크 자체도 그러한 활동의 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넷째, '대학중심주의' 사회에서 대학 이외의 다른 길을 드러내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입시경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저항하고 싶어도, 경쟁 사회 속에서 그 뒤에 감내해야 할 불이익 때문에 섣불리 저항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는 "대학입시거부" 같은 강력한 불복종 운동 뿐 아니라 그저 학교에 다니면서 적당히 청소년운동, 대학생운동, 교육운동에 참여하는 수준의 저항에도 해당되는 '장벽'이다. 이 대학입시거부선언․대학거부선언 운동은 이후에 선언자들의 삶을 지지하고 지원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그런 삶의 가능성을 좀 더 공론화시킴으로써 이러한 '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낼 것이다. 사실 이미 사회에는 수십만, 수백만명 이상의 '고졸 이하' 학력자들이 살고 있으나, 그러한 삶이나 그들의 권익에 대한 문제는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한 상태이다. 학력 차별에 대한 연구나 대안적 삶에 대한 실험이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기에, 이 거부선언 운동이 이후 활동은 아주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그런 '대학 외의 대안적 길'을 만드는 데 조금 더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복종선언'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대학입시거부선언․대학거부선언에 참여하는 이들은 참 다양하다. 어떤 이는 성적이 좋고 이른바 '명문대'를 갈 수 있지만 그래도 대학은 나의 길이 아니라며 가지 않고, 어떤 이는 대학 안의 권위적 문화나 취업 학원화된 대학의 현실을 비판하며 그만둔다. 어떤 이는 가정 형편이 빈곤한데 등록금 수 백 만원 수 천 만원을 갖다 바치고 대학에 가야 하는 현실에 부딪혀서 대학을 포기한다. 어떤 이는 입시를 위한 공부를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성적이 안 돼서, 가지 않는다. 이 거부 선언 안에 참여하는 개개인들에게는, 그밖에도 무수히 많은 사연과 배경들이 있다. 어떤 분 말처럼 "거창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한다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신념이나 적성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고, 거창한 이유 없이 그냥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다양한 선택의 배경 속에서도 분명한 공통점은 "대학 안 나오면 온전한 사람 대우 안 해주는 사회", "청소년들에게 다들 대학을 가야 한다고 하는 사회", "생존을 위해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 입시, 취업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사회"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그런 문제의식이 있기에 우리는 선언을 통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낙오자나 부적응자가 아니라 거부자라고. 대학을 못간, 안 간, 그만둔 개개인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지금의 교육과 사회 체제에 잘못이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모여서 목소리를 낼 때 각자의 사정에 의해 대학을 안 가거나 못 간 이들의 선택은 정치적 사건이 되고 사회운동이 되고 거부가 되며 불복종이 된다.

이러한 대학입시거부선언․대학거부선언 운동은, 불복종 운동의 특성상 꽤나 '빡세'다. 어찌 보면, 대학을 안 가거나 그만둘 만한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는 이들만이 거부하고 불복종할 수 있는 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불복종 운동은, 불복종 자체의 의의 뿐 아니라, 그러한 불복종 운동의 문제의식과 그런 불복종을 통해 바꾸고자 하는 것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을 기대하며 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값등록금을 외치며 야간시위를 하고 도로를 점거하는 행위도, 군사주의를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하는 행위도, 단지 그러한 불복종 행위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고, 그 목소리를 많은 사람들이 듣고 손을 잡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시경쟁과 대학서열화, 학력학벌차별, 불안정한 노동 등 우리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동의하면서도 자신의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대학에 가야 하거나 대학에 다니고 있거나 대학을 졸업한 분들에게는 이렇게 부탁드리고 싶다. 이러한 거부를 자신들을 비난하는 걸로 받아들이지 말고, 우리들의 선언에 담긴 문제의식과 메시지에 좀 더 귀를 기울여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대학에 가거나 대학에 다니고 있거나 대학을 졸업했더라도, 얼마든지 함께해주실 수 있으니, 지지와 지원 아니 그 이상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시면 좋겠다. 죄책감씩이나 느낄 필요는 없으니 같이 해주시면 좋겠다. 대학입시거부선언이 불만족스러우시다면 그 이상의 다른 운동을 기획하고 제안해주셔도 좋으니까 말이다.

수능 대박의 거짓말, 열심히 노력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에 숨은 불편한 진실, 경쟁 속에 파괴되는 교육과 삶. 그동안 청소년들도 학부모들도 교사들도 노동자들도, 그리고 그밖에 여러 주체들이 그런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운동을 해왔다. 대학입시거부선언 운동이 그런 목소리들을 사회에 공론화시키고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그리고 사회가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여는 '정치적 사건'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운동들이 한 단계 더 도약하고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니, 우리가 그런 정치적 사건이자 계기가 되도록 만들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도록 같이 만들어줄 거라고,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 공현님은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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