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노숙인 누명사건 재심개시 환영한다[논평] 노숙인 누명사건 재심개시 환영한다

Posted at 2012.06.29 13:20 | Posted in 논평,성명,보도자료

노숙인 누명사건 
재심개시 환영한다


28일 대법원은 노숙소녀치사사건과 관련하여 5년가량 수감 중인 정모씨(안양교도소 수감 중)의 재심청구기각결정에 대한 재항고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이 발견되었으니 확정된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을 개시하라는 판단을 하였다(대법원 2012. 6. 28.자 2011모1112 결정). 
 
노숙생활이 오래된 정모씨는 사람을 죽인 사실이 없음에도 경찰과 검찰의 강압수사로 사람을 죽였다는 허위자백을 하였고, 이 때문에 출소를 한 달 앞둔 지금까지도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이번사건은 알려진 바와 같이 무죄확정판결을 받은 노숙청소년 5명과 이번에 재심이 개시된 정모씨와 강모씨 총 7명이 모두 사람을 죽였다는 자백을 한 사건이다. 가정이 해체된 청소년들, 지적장애인, 노숙인인 이들은 변론과정에 충분한 조력을 받지 못했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이 아무런 강압없이 허위자백을 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결국 경찰과 검찰의 강압과 회유는 이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다. 하지만 무죄가 속속히 밝혀진 지금까지 수사기관 어느 누구도 강압수사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파기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조만간 재심개시결정을 할 것이고 정모씨의 살인혐의와 관련하여 무죄판결을 선고할 것이다. 만기출소시점이 1달가량 남은 상황인데, 재심개시결정과 무죄판결이 1달 내에 이루어지리라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대법원이 확인해주고 있는 무고한 사람을 만기까지 복역케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검찰은 하루빨리 형집행정지결정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가둔, 무능한 자신들의 죄를 조금이라도 씻는 길이다.
 
이미 무죄가 확정된 청소년들의 1년의 옥살이, 정모씨의 5년의 옥살이... 잘못된 수사로 이들의 인생을 망친 자들은 처벌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두 번 다시 무고한 사회적 약자들이 허위자백을 하지 않게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정비되어야한다. 그리고 허위자백을 한 7명의 사회적 약자들이 온전히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끔 관계 당국은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2012년 6월 29일
 
경기복지시민연대,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다산인권센터, 수원다시서기지원센터, 수원여성의전화,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사)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사)전국장애인부모연대,사)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장애여성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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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_ 선지영나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_ 선지영

Posted at 2011.11.16 17:59 | Posted in 격주간 <다산인권>/인권이슈/현장


- 살인누명을 쓴 정모씨의 형집행을 정지하라.
- 검·경의 사회적 약자를 향한 용의자 무작위 색출 더는 지켜볼 수 없다.

2007년 5월 수원 한 고등학교 옆 화단에서 여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당시 지문을 감식하여 신원을 파악하려 했지만, 미성년자여서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 살 고 있었는지 등이 확인되지 않아 언론과 아고라 등을 통해서 신원확인을 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공개하여 가족을 찾아준 사건이 있었다. 집을 나와 친구들과 노숙을 하던 (당시)15세 소녀는 누구에게 살해되었는지 증인이나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였고, 언론을 통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며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라는 여론이 확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도 이 사건은 현재 진행 중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범을 찾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범인으로 밝혀진 용의자는 현재까지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재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건의 이면에는 많은 인권적 문제가 내포되어 있으며,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빈곤과 차별의 양상을 마주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사전의 경과를 설명하면, 당시 살해용의자로 검거된 노숙인(지적장애 2급) 정모씨와 강모씨에게 경찰은 자백을 받아냈다. 이 중 정모씨는 사건에 대한 중함을 인지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1심재판 징역 7년 선고를 받게 되었고, 징역선고 후 항소를 통해 무죄를 주장했으나 2심재판에서 받아드려지지 않고 유죄를 인정, 징역 5년 형이 선고 되었다. 이후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검찰이 받게 되어 재수사를 하는 과정에 10대 노숙청소년 4명을 다시 검거하였다. 노숙청소년들과 노숙인 정모씨, 강모씨는 또 다시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우리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라고 무죄를 주장했지만, 유죄 판결에 대한 위증의 혐의만 더 가해지게 되었다. 현재 정모씨는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징역 5년형을 받아 4년 6개월을 복역하고 있고 공범으로 지목당한 10대 노숙청소년들과 강모씨는 국선변호인의 도움으로 2심에서 무죄판결 받았다. 하지만, 정모씨는 아직까지도 형을 계속 살고 있으며 함께 기소된 바 있는 핵심증인인 강모씨의 “정모씨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라는 증언이 위증이 아니라는 법원의 판단(선고일 2011. 11. 7)까지 내려졌음에도, 여전히 정모씨는 수감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검·경의 편법 수사

우리사회 노숙인이 많이 집결하는 곳이 역 주변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정보와 집단이 형성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중 서울역과 수원역에 특히 노숙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2007년 이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수원역 근처 영아유기사체가 발견되어 지적장애 2급의 노숙소녀(17세)를 용의자로 검거하여 검·경이 수사한 사건이 있었다. 구강DNA체취 결과 용의자와 사망한 영아가 일치 하지 않음이 국과수로 부터 결정이 나왔지만 검·경은 지적장애 노숙소녀를 통해 사건을 진척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판단으로 범인이 아닌 용의자를 풀어주지 않고 14일간 강제구금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과 이번 노숙인 살인누명의 사건 담당 경찰이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이 와 같은 사건이 한 경찰의 인권의식 부족과 범죄해결 성과내기식의 배경만의 문제로 이러난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용의자로 지목당한 피의자의 상황이 동일하다. 우리사회에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노숙인, 자기변호와 항변이 약한 지적장애인 이라는 점이 일치한다. 최근 들어 사건 용의자가 확실치 않아 보이면 경찰은 제일 먼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벌인다. 그리고 일단 사건발생 지점과 시기에 근처에 한 노숙인이 있었다는 진술이 확보되면 검거하여 짜맞추기식 수사를 진행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사회에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노숙인과 장애인이 범인으로 오인을 받게 되고, 자신의 죄을 항변하는데도 이와 같은 내용들이 재판과정에 중요시되지 않고 검찰과 경찰의 사건해결에 판단근거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이 사건의 중심에는 우리사회에 노숙인과 장애인은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차별적인 인식이 깊이 박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 우리 헌법 제10조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엄한 가치가 있다라고 나와 있지만 검·경의 사건수사진행의 과정에서는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노숙인과 장애인을 바라 볼 때 경시해서는 않 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짓밟아 버린 결과로 이와 같은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속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돈 없고, 힘없고, 지지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국가가 책임져야하는 당사자들을 검찰과 경찰은 더욱 괄시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하여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낮은 인식이 무죄를 주장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회적 약자에게 2차 가해를 일으켜 자기불신과 사회적으로 무력한 존재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검·경의 뻔뻔한 작태에 분노

“나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라고 이번 사건에 무죄를 주장하는 정모씨에게 자기 항변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도 모자라 무죄가 밝혀진 마당에도 죄인 취급하는 검찰과 경찰의 작태를 더 이상 지켜 볼 수가 없다.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은 엄청난 죄를 짓고도 휠체어를 타고 감옥을 나올 수 있지만 가진 것 없는 정모씨와 같은 약자들은 죄를 짓지 않고도 수년 동안 감옥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런 불평등한 사실 이면에는 죄를 조작하고 범죄해결을 성과주의식 편의행정으로만 바라고는 검찰과 경찰의 행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지난 11월 8일 경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사건을 통해 자행되는 검찰과 경찰의 불법과 부도덕함을 알리고 정모씨의 형집행 정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또한, 국가인권위에 같은 날 긴급구제 신청을 하였으며 지역단체들은 앞으로 파렴치한 검·경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노숙인과 장애인의 변론권 마련을 위한 정책활동 전개할 것이다.
 
■ 선지영님은 경기복지시민연대 사무국장입니다.
■ 본 기사는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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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빈곤 아카데미 후기 _ 염소반빈곤 아카데미 후기 _ 염소

Posted at 2011.11.01 14:18 | Posted in 격주간 <다산인권>/칼럼

경기복지시민연대와 다산인권센터가 공동주최한 지역 반빈곤 아카데미 <빈곤아, 덤벼라!>가 잘 마무리 됐습니다. 총 4번의 강좌를 통해서 빈곤의 원인과 앞으로 지역에서 반빈곤 활동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염소님께서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반빈곤 포럼에 참석하여 뒷풀이에서 술을 몇 잔 먹고, 눈치 없이 늦게까지 따라다니며 술추렴을 했더니 아직도 속이 쓰리고 미식거린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에는 이 정도 아니 이 보다 더 진탕하게 마셔되었어도 끄덕없이 다음날 아침이면 새로 시작할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 그게 불가능하다. 의지력이나, 선한 마음으로 몸의 노쇠화를 막을수는 없다. 빈곤이 단지 개인의 의지력이나, 노력의 문제라면 사실 빈곤이란 단어는 선택(?)일 수 있다.  빈곤이 나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작동하는 괴물이므로 우리는 여기에 사회라는 접두사를 붙여야 한다.

<반빈곤 아카데미>는 4번의 강연으로 준비된 걸로 알고 있는데, 난 두 번(마지막 두번)밖에 참석하지 못했다. 25일은 한겨레두레 생협 발기인 대회가 있었고 원래 계획은 거기에 참삭코저 하였으나, 가는 도중에 빈곤포럼으로  바꿔탔다. 생협 발기인 대회는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하는게 갑자기 번거로워 졌다. 해서 나의 빈곤 포럼 참가는 우연이었다. 모든 일들이 그런거처럼.
그런데 갑자기 빈곤포럼에 참가하게 된 이유가 단지 물리적 거리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사실 상조 생협은 월 3만원을 지불하므로.화폐의 양으로만 보자면 더 중요한 모임이 되어야 하지만, 죽음은 먼 미래의 일이고 빈곤은 현재의 일이라는 생각이 내 발걸음을 돌린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3강은 나눔과 미래 사무국장인 이주원씨가 해주셨다. 이분은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주거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주거 운동에 있어서도 열의를 다 보이신 것같다. 많은 경험을 한 사람답게 현실의 주거 문제를 많은 실례를 들어주셨고, 현재 우리의 주거 문제에 대한 실재적인 사실들을 들을 수 있었음이 좋았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가감없이 주거 빈곤을 아주 현실적으로 접근한 점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문제 해결적인 방법을 제시해 준 점은 나 같이 주거빈곤에 대한 문제만 나올때마다 먼저 분노부터 하는 얼치기에겐 아주 유용한 강의였음을 인정치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내 개인적으로 보았을때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언제나 해결 방안이 시장이라는 상황을 인정하는 선에서만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이건 순전히 나의 입장이고, 신뢰할 만한 생각도 아니긴하지만.

4강은 대구반빈곤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인 서창호씨가 맡아주셨다. 대구에서 오랫동안(4년정도) 반빈곤운동을 하셨다고 한다. 이런 오랜 노력을 한 사람들은 빈곤문제를 단지 서류상으로만 논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생생함과 고뇌가 보인다. 뒤에 네트워크란 이름이 붙어서 그렇지만, 빈곤운동이 얼마나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지, 각 주체들 사이에 의견 조정이 얼마나 힘이드는지, 아직은 초창기라 반빈곤운동이 얼마나 취약한 배경하에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점을 감사드리고 싶다. '복지'라는 좀 더 고급스런 용어의 근방이 아니라 적나라한 '빈곤'이라는 개념 자체에도 반빈곤운동의 지난함을 가슴 아프게 대할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직은 초창기라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다고 하지만, 이런 분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이 없다고 치기를 떠는 나 같은 엉터리 회의주의자는 입 닥쳐야 할 듯하다.
 
1강과 2강을 내가 듣지를 못해서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빈곤이란 단어는 사회의 어떤 현상을 개념화한 용어이지만, 언제나 그런것처럼 사람의 문제이다. 빈곤게급, 빈곤층의 문제이다.사실은 이 말도 잘못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빈곤층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제이다. 빈곤층의 문제라고 하면 빈곤층이 문제 있는 것같은 뉘앙스를 풍길 우려가 있기 대문이다. '빈곤'이란 말은 아름다운 말도 아니고, 더구나 드러내놓고 '내가 빈곤하다'하고 말을 하기가 어렵다. 누구나가 자기가 빈곤하지를 않기를 바라고, 설령 통계상으로 분명 빈곤층에 포함 될지언정 죽어도 나는 빈곤층이 아니라고 우기고 싶고 그렇게 믿고 싶을 게 당연하다.개인도 마찬가지지만 사회도 자기 사회에 많은 빈곤층이 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게 틀림없다. 그래서 비가시적 영역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비가시적영역을 가시적 영역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빈곤을 드러내고 빈곤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한다. 지금은 그럴때이고 또 그래야만이 빈곤해결의 시작일 수 있지 않을까싶다. 다른 점은 다 제쳐놓더라도 이번 포럼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고 믿고 싶다.
 
수유너머의 고병권이 장애인단체에서 루쉰의 희망에 대해 강의를 하였다고 한다. 어떤 장애 아들을 가진 부모가 '희망'에 대해 강의한다닌까 큰 기대를 가지고 강의를 들으러 왔다고 한다. 하지만 루쉰이라는 사람이 '희망은 허망하다' 뭐 이딴식의 애기를 했다고 한다. 강의가 끝나고 그 부모가 실망하여 서럽게 울엇다고 하는 일화를 읽은 기억이 난다. 어찌 울지 않았겠는가. 희망이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끝날 것같지도 않는, 불빛 한점 없는 긴 터널을 걸어야한다는 게 얼마나 절망이었겠는가? 희망은 절망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제 마지막으로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탈빈곤의 비법이나 연금술은 없다. 희망도 없다. 단지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나는 빈곤하다'

■ 염소님은 다산인권센터 벗바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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