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프레시안 공동기획] 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③[다산&프레시안 공동기획] 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③

Posted at 2012.09.07 13:24 | Posted in 활동소식/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

참 MB스러운 사건, 평범한 주부들은 왜 나섰나?

[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③] 귀족 노조? 죽도록 일한 노동의 대가일 뿐

 글 : 정미현 국가기관 무기계약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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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동안 MB의 혁혁한 공은 분노의 무감화다. 매번 분노하다가는 명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아 국민들 스스로 아픈 것을 아프지 않은 것으로 오판하게 만들었다. "동물 중성화 수술도 아니고 이거 원" 하면서도 사람들은 분노에 둔감해졌다. MB의 수에 이미 말린 나는 SJM 사건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회사에서 꼼수를 부려 노조가 한마디 했더니 회사가 문을 닫아버렸다. 황당한 노동자들 뭐라 한 마디 더하니 용역을 불러 두들겨 팼고 그것을 지켜보는 경찰, "나는 아무한테도 손 안 댔다"며 깔끔하게 마무리 진 사건. 참 MB스러운 사건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데 다산인권센터에서 벗바리 자격으로 SJM 사건을 인터뷰 해달라고 했다. 살짝 걱정스러웠다. 깔끔하게 정리한 사건에서 "진실"을 볼까봐, "사람"을 볼까봐, 그래서 마음을 다칠까봐.

허나 약속은 약속, SJM노조 가족대책위 대표 김활신(이하 그녀) 씨를 만났다. 약속 시간에 늦어 허겁지겁 달려온 그녀는 입에서 단내라도 날 듯 바빠 보였다. 역시나 SJM 앞에서 문화제가 있었는데 율동을 하고 저녁도 안 먹고 달려왔다. 내가 건넸던 스카치캔디 두 개와 커피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슨 율동이었냐고 물으니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라고 했다. 군데군데 흰 서리가 내려앉은 사십대 후반 여성의 율동이라…. 노조원 부인 7명이 함께 했다고 했다. 두 시간씩 며칠간의 훈련 끝에 오늘 자리에 섰다고 한다. 선한 듯, 수줍은 듯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꺼내는데 괜히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 김활신 SJM 가족대책위원회 대표. ⓒ다산인권센터



"다 같이 하면 이기는 거다"

가족모임은 4-5년 전에 결성되었고 활동이 뜸하다가 이번 일로 다시 모였다. 가족대책위의 분위기는 아직까지는 "다 같이 하면 이기는 거다"는 분위기. 사실 SJM 는 안산지역에서 근로조건도 좋고 노사상생의 모범 기업처럼 알려진 회사였다. 가끔 노사협상 과정에서 잡음은 있었으나 원만히 타협이 되었고 그만큼 노동자들도 회사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실제 딱 한명의 비정규직이 있었고 그 역시 노조 가입을 하고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러던 회사가 3년 전 노무이사가 바뀐 후부터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2011년 초부터 구조조정설을 유포하며 노조원들을 자극했다. 단체협약을 무시하는 일들도 빈번해졌다. 노사 협의도 없이 비정규직을 투입하더니 제 3공장 식당을 외주로 돌려버렸다. 해명을 요구하던 조합원들에게 돌아온 건 컨택터스라는 경비용역깡패의 투입이었다. 특히 이번 사건은 회사를 아들한테 물려주려는데 노조를 어떻게든 무력화 시켜야 한다는 회장의 강박이 적지 않게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적인 분배로 회사 운영하면 바보되는 사회"

이 부분에서 그녀의 톤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주회사 만들어 내부 차액을 만드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 정상적인 분배로 회사 운영하면 바보가 되는 사회, 경영합리화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들을 헌신짝처럼 내치는 사회, 천박한 자본주의가 계속 되는 한 제2의 SJM, 제2의 쌍용은 계속 될 거라고 했다. 회사를 믿었던 만큼 노조원들의 분노와 배신감은 컸다. 해고가 되더라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다짐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 터라 결집력은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나던 당일 새벽 3시, 연락 받고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 담을 넘어 농성자들과 함께 했고, 직장 폐쇄 첫날에는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현장 최고직급인 기장 한분이 "평소에 조합이 하는 일을 같이 못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함께 하겠다"고도 했다. 우리 안에 모르고 있던 연대의 느낌, 동료애를 느끼는 순간이 반복되면서 더 단단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대학생 딸을 둔 노조원은 다른 노조원 자녀들 과외활동을 추진해 보겠다고 했고, 맞벌이 나가는 부인은 평소에 참여 못해 미안하다며 주말에 나와 일일이 인사를 다닌다고 한다. 노조와 가족대책위는 아직까지는 모이면 신나고 희망적이라고 했다. 물론 9월 5일부터 월급이 안 나오고, 추석이 지나고 사건이 장기화되면 다들 각오를 해야겠지만 아직까지는 현재만 보고 달리고 싶다고 했다.

뭘 각오해야 되는 것일까? 평균 근속 년수 20년인 SJM 노동자들의 평범한 삶 속에 찾아든 각오는 뭘까? 교사가 꿈이었던 그녀, 97년 결혼했고 남편은 원래 대우조선을 다녔다고 한다. 남편은 젊은 사람들이 산재로, 과로로 퍽 퍽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회사를 나와 99년에 SJM에 입사했다고 한다. 그녀는 안산지역에서 평준화 운동, 무상 급식조례 제정 활동을 했다. 지난한 노력 끝에 다행히도 2013년부터 안산지역이 평준화될 예정이고 무상급식 문제도 나름 성과를 냈다. 성공의 경험이 지금 큰 밑천이 된다고 했다.

귀족 노조? 죽도록 일한 노동의 대가일 뿐

남편 연봉은 5000만 원 정도다. 먹고 싶은 거 먹고, 걱정 않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가끔씩 가족 여행도 다닌다. 비교적 넉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귀족노조라는 비판은 받아들일 수 없다. 현재의 주간연속 2교대가 시작되기 전인 작년까지, 주야간 2교대, 주말 특근 한 두 번을 포함하여 한 달 100시간 이상의 잔업을 해야 했다. 일하는 동안에는 죽도록 일한다. 자기 노동에 대한 대가일 뿐이다.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생산직 노동자가 돈 많이 받는 것이 기분 나쁜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노동자들도 스스로 귀족노동자라는 언어에 갇혀 주눅이 들어있다. 왜 정당하게 일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데 눈치를 보는가? 정상적인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문제다. 법과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녀는 최근 대학원에 입학했다. 기업들은 노동자들 쫓아내고, 쫓겨난 노동자는 생존권을 박탈당한 채 복직을 위해 싸워야 하고, 긴 세월 싸워 복직해도 다시 해고되고 마는 사회. 분명히 정상이 아닌데 버젓이 그렇게 세상이 돌아간다. 사실 노동운동이 세상의 변화를 못 쫓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렇다고 노동운동이 왜소화되거나,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늦은 나이지만 대학원에 진학했다. 노동자협동조합 쪽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

쌍용 문제에 대해서도 그녀는 단호했다. 주저 않고 말했다. 국가에서 '사람'을 버린 사건이라고. 이번 일로 도움을 받으면서 어렵게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 노조원들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사업장을 지지방문도 하고 구체적인 연대의 길도 모색하고 있다.

ⓒ다산인권센터




엄마들 나서다

평범한 주부들이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남편이 뼈 빠지게 일하던 회사가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욕심내지 않고 살았다. 안정적일 뿐 사치부리며 살지 않았다. 그런데 남의 얘긴 줄만 알았던 직장이 폐쇄되고 남편이 농성을 시작했다. 빨간 띠와 검정 조끼를 두르면 다 빨갱이 같고, 강성 같고, 딴 나라 얘기 같았는데 남편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른바 빨갱이로 낙인찍힌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 같이 모이니 자꾸만 힘이 생기고 아이디어가 생기는 것에 놀라워하고 있다. 나날이 배운다.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희망 같은 것,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렵지만 그렇게 가야 된다는 믿음. 그녀는 확신한다. 이번 싸움이 끝나면 우린 모두 더 단단해질 것이라고. 그들의 믿음이, 그녀의 확신이 빠른 시일 안에 검증되기를, 그리고 무감화된 분노가 다시 우리 안에 용트림 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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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프레시안 공동기획] 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②[다산&프레시안 공동기획] 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②

Posted at 2012.09.03 11:17 | Posted in 활동소식/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

"대통령님, 노예처럼 일하는 귀족도 있나요?"

[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②] SJM 폭력, 경찰·대통령의 2차 가해

■ 글 : 이광훈 경희대 후마니티스 칼리지 강사
■ 프레시안 기사 원문보기 
      
15년간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레지스탕스 출신의 93세 스테판 에셀이 쓴 <분노하라>를 접한 나는 심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귀국하자마자 밥벌이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양심이 가리킨 곳은 달랐다.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다산인권센터를 알게 되었고, 그곳을 통해 알게 된 수원촛불에서 매주 수요일 촛불을 들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SJM노동자 인터뷰를 제안 받고 선뜻 나선 길에 노동자 박동혁 씨를 만났다. 사건이 발생하던 날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면서, 현장을 지키던 박동혁 씨는 용역직원들에게 쫓겨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래서 다리와 발을 다쳐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불과 며칠 전 퇴원했다고 한다. 끔찍했던 불면의 밤이 한 달이 지났건만 아직 그의 발바닥에는 멍자욱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완치되지 않은 그는 절룩거렸고, 그보다 더 심하게 상한 마음도 절룩거리고 있었다.

▲ 용역직원에게 쫓겨 옥상에서 뛰어내린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박동혁 씨의 발바닥에는 아직 멍자욱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다산인권센터



먼지와 쇳가루 마셔가며 일한 대가가 '용역폭력' 

인터뷰하는 내내 그는 코막힘 때문에 불편해 했다. 감기냐고 조심스레 물으니, 알레르기 비염이란다. 안산에 와서 심해졌는데 공장에서 먼지와 쇳가루 속에서 온종일 일을 해야 하니 낫기는커녕 마스크 등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지경이라고도 했다. 그나마 예전에는 안전장구조차 없이 일을 했다고 덧붙인다. 대부분 나이든 동료들은 안정장구 없이 소음 심한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심각한 청각장애가 있다고 했다. 그러한 동료에 비하면 나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얘기한다. 몸이 상해가면서 7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는 용역에게 노동자들의 자리를 내어주고, 직장폐쇄를 해버렸다. 자신보다 더 오랫동안 일한 노동자들이 받은 배신감을 생각해 보면 자신은 그래도 덜 상처 받은 것이라며, 멍자욱도 남보다 내 것이 작으니, 나는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더 걱정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 그들은 알까.

휴가를 떠나기로 되어 있던 박동혁씨는 7월 27일 자정이 조금 지났을 때, 공장에 나쁜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동료의 전화를 받고 부인에게 별일 없을 것이니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고 공장으로 갔다. 헬멧을 쓰고 방패를 들고 진압봉을 든 그들이 경찰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용역직원들인 줄 알고 보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 공장 안으로 들이닥치겠는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나라 갑자기 용역들이 SJM 노동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이들의 폭력을 사진에 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경비실 옥상에 올라갔다. 회사로 물밀듯이 용역들이 들이 닥치자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두려움에 빠진 그는 그를 향해 욕을 하며 달려오는 용역들을 피하려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때는 오른발 뒤꿈치 뼈가 으스러진 줄도 몰랐다. 삐끗했다고 생각했고 용역들에게 쫓겨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 2층으로 그 발을 질질 끌면서 도망갔다. 아픈 줄 몰랐다. 아니 그런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상황이 수습되고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간 병원. 그 날 상처의 치료는 입사이후 가장 긴 휴가를 선물했다. 3주 넘게 입원한 후 통원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 그는 집 밖으로 나가기도 힘든 상황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용역폭력에 대한 경찰의 조사를 받았지만, 자신이 다친 피해자임에도 4시간이나 계속된 조사에서 그는 노조에 대한 질문이나 유도성 질문에 시달려야만 했다. 과연 그들이 피해자인가? 우리가 가해자인가? 마지막에 서명할 때, 그는 자신을 조사한 경찰관에게 자신이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분간이 안 된다고 말했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경찰이 더는 미덥지가 않다.

평범한 서민이 '귀족노동자'로 몰리기까지…

박동혁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배달, 웨이터 등 많은 일을 했다. 기술을 익혀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 보자고 생각해서 특수용접을 배웠다. 그 기술로 직장에 취직했고,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대학을 가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7년 전에 SJM에 입사했는데, 오래간만에 들어온 신입이라고 부서에 있던 선참 노동자들로부터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그런데 그 이후 채용이 되지 않아 아직도 막내다. 직장 분위기도 좋았고 노조는 튼튼했다. 단체협약도 잘 되었고 야간근무는 강제적이지 않았다. 그 점이 너무 좋았다. 계획했던 대학을 마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특근과 야근에 지쳐서 회사와 집을 오가며 파김치가 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지난번 회사 생활을 그만 둔 이유였다. 노동조합이 있는 SJM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었다. 다른 회사로 옮길 것도 생각해 봤지만, 다른데 가더라도 여기보다 나을 것 같지는 않았다. 가정을 가지면서 안정적인 직장에 있었으면 했고 그리고 이 회사 동료와 함께 일하고 지내는 것이 좋았다.
 

▲ 박동혁 씨의 두 살 난 아들. ⓒ다산인권센터


야간대학 다닐 때 만난 예쁜 각시와 결혼도 하고, 지금은 곧 만 24개월이 되어 가는 아들도 있다. 용역폭력과 직장폐쇄라는 사태가 가져온 상황이 없다면, 그의 집은 여느 신혼부부의 집이 그렇듯이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시간외 노동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 빠듯한 생활 때문에 부인은 얼마 전부터 맞벌이를 시작했다. 그런데 SJM을 두고 한 말인지 이명박 대통령이 노동자 중에 월급을 많이 받는 귀족노동자가 있다 했단다. 우리가 귀족이냐고, 대통령이 말한 월급 벌려면 매일 밤새워 일해야 하는데 노예처럼 일하는 귀족이 어떻게 귀족이냐고 되묻는다. 인터뷰 중 아빠를 부르며 그와 부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아들을 보는 그의 행복한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스쳤다.

경찰도, 대통령도 외면한 '노동자'의 삶

박동혁 씨에게 지금 가장 큰 소원이야 빨리 직장폐쇄가 풀리고 회사에 복귀해서 일하는 것이다. 그런 평범한 그는 이번 사태로 배운 게 있다. 한국에서 노동
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알아 버렸다. 회사가 고용한 용역들이 노동자를 폭행하고, 폭력을 막아야 할 경찰은 노동자들을 보호도 안 하고,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귀족노동자들 운운하면서 노조를 헐뜯고 있는 이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어려움. 자기 아들이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야 할 것을 생각하면 희망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마음먹고 있었던 대로 외국에 나가서 자신의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해야 하나 생각한다. 과연 이 사회가 박동혁 씨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을 것인가? 작지만 소소한 일상을 누리고 싶어하던 한 아이의 아빠, 이 시대의 노동자에게 사회는 폭력으로 절룩이게 만드는 마음만을 안겨줬다.

15년 동안 떠나있던 한국은 많이 바뀌어져있었다. 가끔 미국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가 찾아오면 '한국은 왜 이렇게 돈 돈 하는거냐' 물었다. 나 역시도 15년 전 한국과 지금이 너무나 달라져보였고, 그 중심에 '돈'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돈이 뭐라고, 7년을 일한 그에게, 15년을 일한 그의 동료들에게 54억 원이라는 돈을 들여 폭력을 사주했다. 그가 평생 밤새워 일해도 벌 수 없는 그 돈이, 그의 7년 직장 생활, 청춘의 일부분을 무너뜨렸다. 평온한 일상을 사랑했던 직장을 산산이 조각내 버렸다. 그 조각들을 다시 맞추는 일 분명 어려울 것이다. 그의 아픈 다리가 다시 회복되는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사랑했던 직장이 그가 보냈던 청춘의 한 부분의 조각이 다시 맞춰지길 바라본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조각이라도 나의 작은 글이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광훈 경희대 강사와 SJM 노동자 박동혁 씨. ⓒ다산인권센터




  1. 통감합니다.
    이제는 우리 노동자를 위한 용역회사를 설리하여야 겟습닏.
    우리 노동자는 돈이 없으니, 자원 봉사 단체 용역회사 말입니다.
    쉽지 않겠죠
    하지만, 분명 길이 있을 것이며
    이것만이 노동자가 살 수있는 길일것입니다.
    정치권도, 가진자도 있는 용역회사를 왜 우리 노동자는 없을 까요
    이제는 노조설립보다 먼저 노동자를 위한 용역회사를 만들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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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현장이야기 ②] 나는야 귀족노조!!??[이상언의 현장이야기 ②] 나는야 귀족노조!!??

Posted at 2012.08.07 15:32 | Posted in 칼럼/이상언의 현장이야기

이 분 직장이 기아자동차입니다. 얼핏 들으면 대(!)기업 다닌다고 부러워할 만한 사람. 근데, 아닙니다. 비정규직. 그것도 기아자동차 사내하청의 비정규직입니다. 이 분의 웃기고, 어이없고, 가슴아픈 현장이야기를 지금부터 연재합니다.




얼마전 이명박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현안 점검회의'에서 금속노조 소속인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등을 언급하며 "귀족(고소득) 노조가 파업을 하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사실 이 내용을 언론을 통해 봤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학교때 사회책에서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노동자의 권리라고 배웠는데 일국의 대통령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모를 리는 없고(혹시 모르나??) 어떻게 대놓고 노동자의 파업권을 부정하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그동안 저 무지함이 쌍용차, 유성기업, KEC, 3M, 발레오 만도 등 수많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과 권리행사를 발로 짓밟아왔는지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사실 저들은 툭하면 ‘귀족노조’ 운운하는데 투쟁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해온 노동자들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그동안 사회적 현안이나 연대투쟁에 적극적이지 못한 모습은 반성해야 하지만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차별을 확대해온 저들이 주장하기엔 전혀 진정성이 없다. 
 
그런데 여전히 걸린다.
나도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다 보니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나 같은 그룹사 소속.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조합원인 나와 우리 동료노동자는 정말 귀족(고소득)노조 조합원일까?
곰곰이 되물어 본다. 그래서 나의 일상을 되짚어 봤다.

나는 매일 새벽 6시면 일어난다. 
출근하려면 이때 일어나야 한다. 대충 씻고 있으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주는 예쁜 우리 아가와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부인의 얼굴을 보며 회사 통근차에 몸을 싣는다. 매일 8시간 근무외에 잔업을 두 시간씩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집에 가면 저녁 9시쯤이다. 찜통 같은 더위에 땀으로 샤워를 하면서 컨베이어를 타다보니 집에 가면 그냥 뻗는다. 

매일 새벽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회사에 붙잡혀 있지만 그나마 다행인건 난 주간고정 근무다. 
같이 일하는 대다수의 공장 노동자들은 일주일 단위로 주야근무가 바뀐다. 다음 한주는 밤새 잠 한숨 못자며 야간노동을 해야 한다. 나도 한때 3개월정도 야간노동을 해봤는데 밤에 잠 안자본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 ‘낮에 자면 되지 않냐’ 말하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몸의 리듬이 일주일단위로 바뀌다보니 만성무기력증에 시달리고 건강한 사람들도 십년 일하면 몸이 망가진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밤에는 잠 좀 자자’가 절박한 요구다.  

이뿐이 아니다.
주말에 좀 쉴라하면 주말(토,일)에는 보통 회사가 노동조합을 설득해 특근을 잡기 일쑤다.


공장에 일하는 대다수의 노동자 일상이 이렇다. 

하기 싫어도 자본의 강요에 의해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OECD국가 중 최장시간 노동하는 국가가 되었다. 결국 귀족노조, 고소득의 실체는 자본의 강요에 의한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이라는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노동자는 연봉을 많이 받으면 안되라는 법은 없으나 올해는 이 고리를 내용적으로 끊으려 한다. 기아차와 현대차의 귀족노조 노동자들이 앞장서 적극적인 파업권 행사로 금속노조 15만의 핵심요구인 장시간, 야간노동 철폐하고 8시간 근무 월급제 등을 쟁취하려 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 문제인 비정규직 철폐,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와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하여. 그래서 기아차는 이번주에도 파업투쟁에 들어간다.

귀족의 딱지를 끊기 위해!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
  
 ■ 글 : 이상언 (벗바리이자 다산인권센터 기아자동차 통신원?)  
  1. 이명박대통령은 개념없는 말만..ㅠㅠ;;에휴..님 글 잘 읽었어요.공감해요^^그 돈이 어떻게 번 돈인지..ㄷㄷ귀족노조같은 소리하고 앉아있는 이명박대통령..;;;;
  2. 인간다운 삶이라.. 노조원들의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대신 사람 수를 두배로 늘리면 인간다운 삶이 보장 되겠네요 위 글대로라면. 귀족노조를 욕하는 이유는 노동자의 권리 투쟁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위에서 제안한대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시간을 주겠다(노동시간감축) 대신 시간에 따라서 급여도 1/2이다. 노조가 동의할까요?^^ 절대로 안합니다. 귀족노조의 이기심이죠. 일은 덜하고 돈은 더 받고. 말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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