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사람 ④] 삼성SDI 해고자 김갑수, 강재민[그때 그사람 ④] 삼성SDI 해고자 김갑수, 강재민

Posted at 2012.11.01 15:02 | Posted in 20주년소식/그때 그 사람

다산인권센터가 올해로 20주년이 됐다. 10월 27일 인권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한 인권단체의 20년을 추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야만적인 인권현실 앞에서 무엇을 향해 가야 세상이 좀 더 나아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2012년이다. 다산인권센터는 지난 20년이라는 과거를 더듬어 현재 또는 미래를 안아보려 한다. 20년 전 다산인권상담소 시절부터 현재까지 만났던 인권피해자들과 인권의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보려 한다. 단지 기념하거나 추억하기에는 치열하기만 한 현재가 과거를 거울삼아 성큼 한걸음 내딛고 그리고 사실은 위로받기 위해서, 그때 그 사람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인터넷매체 <프레시안>과 함께 한다. <편집자> 



삼성의 희생양 'MJ사원'을 아십니까?
[그때 그사람을 찾습니다·③] 삼성SDI 해고자 김갑수, 강재민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 김원효가 외친다. '문제야… 니가 그래서 문제다, 문제야' 김원효의 상대 개그맨 이름이 '문제'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문제를 외친다. '문제야, 저거 봐라 문제야, 그래서 문제다, 문제야'.

개그맨 김원효는 알고 있을까? 상대 개그맨 말고도 이 개그의 소재로 사용되는 '문제'라는 이름으로 12년을 불린 사람이 있다는 걸. 일명 'MJ사원'. 노조를 만들려 시도하거나, 혹은 회사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을 삼성에서는 'MJ사원', 일명 문제사원이라 부른다. 그 '문제사원'으로 불리며 12년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려버린 사람들이 있다.

12년 동안 감시의 눈초리에 떨어야 했고, 미행하는 차량에 뛰어 올라 울부짖었다. 가족 같던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점심시간 식당에도 못 들어가 굶주려야 했고, 계속되는 협박과 폭언으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슴에 담은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해고되고, 혹은 퇴사 하고 몇 년 동안 삼성에서의 아픈 과거를 생각하며 술로 살아야 했던 이들. 삼성 SDI 해고자 김갑수 씨와 2006년 스스로 회사를 걸어 나온 강재민 씨를 만났다.

▲ 강재민 씨 ⓒ다산인권센터



생각해보면 엊그제인듯 하지만 벌써 12년이나…

"해고싸움이 고법에 갔을 때 다산을 만났어요. 그때는 갈 곳이 없어서 다산 사무실에 많이 가 있었어요. 사무실에 있으면서 활동가들과 같이 선전전도 많이 했어요. 그 때부터 다산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 같아요. 2005년도에는 휴대폰 위치추적과 X-file 사건이 터지면서 다산 식구들과 전국 순회 투쟁도 했어요. 창원, 대구, 울산, 구미를 돌면서 삼성 사건에 대해 알리고, 삼성 바로보기 문화제도 함께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엊그제 같은데, 해고 되고 나서는 한동안 천안을 못갔어요. 너무 화가 나고, 힘들어서.. 그게 벌써 12년이나 지났습니다." - 김갑수

김갑수 씨와 다산의 인연은 12년을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도 악연인지 인연인지 모를 끈질긴 인연을 맺고 있는 김갑수 씨와는 가끔 술도 한잔하고 지낸다. 술을 마시면 빨개진 얼굴로 지난 과거를 읊조리는 그는, 아직도 가슴 깊은 상처를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삼성에 노동조합이 생겨야 한다고 굳게 믿는 그의 마음이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버티게 하고 있다. 그나마 해고 된 김갑수 씨가 마음 편했을 수도 있다. 그와 입사동기였던 강재민 씨는 회사에서 모진 수모를 겪은 채 몇 년을 더 버텨야 했다.

"회사에서 퇴사하기 전 모든 걸 잃었어요. 동료도 잃고, 가족도 아프고. 그 당시에는 '내가 (회사를) 나가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 나를 건드리면, 나도 회사에서 했던 행동을 사회적으로 공개했죠. 그 쪽에서 한 번 치면, 나도 한번 때리는 식으로 말이죠. 한번은 회사 간부가 전화 한 것을 녹음해 방송으로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죄가 아무리 미워도 못할 짓을 한 것 같습니다.

그 사람도 가족이 있는 사람일 텐데, 가족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사람이 극단으로 가더라도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 했는데. 지금 들어 후회가 되죠. 그렇게 2년을 싸웠습니다. 사원들이 회사편이 되어서 나를 따돌리고, 고립 시켰습니다. 휴대폰 위치추적 당시 대표이사를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는데, 동료들이 '사장을 고소한 사람은 식당에 들어올 수 없다'고, 점심시간에 식당에도 못 들어가게 하는 정도였죠. 결국 버티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2006년 퇴사했습니다." - 강재민

87년 8월 17일 입사. 입사동기인 강재민 씨와 김갑수 씨는 아직도 사번을 외우고 있다. 온갖 괴롭힘과 고통을 준 회사였지만 그들은 처음 입사했을 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 2006년 퇴사한 강재민 씨는 고깃집을 운영하다 문을 닫았다. 그 고깃집에는 심심치 않게 삼성 직원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MJ사원'은 퇴사 이후에도 'MJ사원'으로 남아있는지 삼성은 끊임없이 그들의 주변을 맴돌았다.

ⓒ연합뉴스



상처는 아물었지만 잊혀질 수 없는 과거

이제는 화물트럭을 운전하고 있다는 강재민 씨는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있는 듯이 보였다. 퇴사하고 2~3년 동안은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마시면 통제가 안됐다고 하는 그. 상처가 아물었다고는 하지만 잊혀 질 수 있겠는가. 그의 과거는 아직도 아프다.

"현장에서 노조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났죠. 알려진 대로, 해외출장을 보내고, 미행하고, 감시했죠. 99년 3월이던가. 노조설립이 발각 됐어요. 해외로 납치되고 돌아와서 해고무효소송을 했죠. 해고되고 나서도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현장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연락을 했어요. 그 때 위치추적 사건이 터졌죠. 언론에도 '유령의 친구찾기'라는 것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노동조합을 하려는 사람들의 휴대폰에 다 위치 찾기가 등록 되어있는 거예요. 친구맺기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본인도 모르게 동의가 되어 있었던 거죠. 대리점가서 확인해보니까 주변 동료들이 다 친구 찾기가 되어 있더라구요. 범인은 누구인지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었어요. 증거를 확보했어야 하는데, 언론에 먼저 나와서 회사에서 미리 다 손을 써버린 겁니다. 나중에 이 사건은 기소중지 되었죠." - 김갑수

12년째 그는 싸우고 있다. 같이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던 동료들이 회사와 합의해 떠나고, 회사의 중역이 되어가는 동안 김갑수 씨는 여전히 해고자로 남아있다. 12년 동안 당했던 일들이 끔찍할 법도 했을 텐데, 인간이면 당하고 싶지 않았을 모욕과 고통이었을 텐데도 그는 아직도 삼성에서 노조가 만들어 져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동료들을 만났다. 하지만 동료들은 이내 그를 떠나갔다.

삼성은 그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을 괴롭혔고, 그와 연관된 숨어있는 사람을 뽑아내서 관리했다. 그래서 아무도 주변에 남아있지 않게 했다. 반골 기질을 가진 이, 회사에 반기를 드는 이들을 철저히 관리했다. 노조에 '노'자도 나오지 않게 했다. 12년 전 김갑수 씨가 당한 모욕과 고통의 흔적은 여전히 삼성의 그늘아래 계속 되고 있다.

▲ 김갑수 씨 ⓒ다산인권센터



삼성이 마지막으로 준 교훈

"삼성을 바꾸려면 정치인이 바뀌고, 사회에 바뀌어야 해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역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되는 것 같아요. 역사를 알아야 후손들이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고, 결국에 가서는 확신은 못하겠지만 삼성에 노동조합이 생길거라 생각해요. 그 시점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을 못하지만. 김갑수는 희생자고, 지금도 싸우고 있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누군가 또 그렇게 길거리로 내팽개쳐지거나, 노동조합에 대한 고민을 갖겠죠. 삼성이 해왔던 걸 기록해야 한다고 봐요." - 강재민

강재민 씨는 이야기 말미에 어떻게든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고 이야기 했다. 그가 인생에 갑자기 뛰어들었던 수많은 논란과 혼란들은 그를 뒤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하기에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조용히 사는 것.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사는 삶. 그가 삼성에서 마지막으로 보냈던 몇 년의 시간이 그에게 안겨준 교훈이었다.

김갑수, 강재민 씨와의 수다는 몇 시간 동안 계속 되었다. 쓴 소주로 시작해, 커피 한잔으로 이어진 수다는 그들이 겪었던 세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들이 빈 봉지로 휘휘 저어준 커피믹스가 제일 맛있다는 12년 차 해고자 김갑수, 아침마다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화물차 운전을 준비하는 강재민. 그들의 인생은 정말 커피처럼 쓰디 쓴 그 무엇이었다. 그들이 겪었던 그 시간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다만 앞으로 그들의 삶이 평온하기를, 쓰라린 상처가 아물어 새살이 돋아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멈췄어야 할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은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다. 700일 넘게 삼성전자 앞에 서 있는 박종태가, 삼성에 노동조합을 굳건히 세우고 싶다는 삼성노조, 그리고 해고자 조장희가, 삼성화재 해고자 한용기가, 삼성 SDI 해고자 이만신이 여전히 김갑수, 강재민의 과거를 살고 있다.

이제 과거가 아닌 현재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삼성의 그 무자비한 폭력을, 그 잔인한 짓누름을 이제는 끝내야 할 때가 아닌가. 삼성의 무노조 신화 앞에 쓰러져간 이들의 평온한 일상을 이제 돌려줘야 할 때다. 

■ 글 :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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