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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입장•성명

가족 잃은 사람이 '죄인' 되는 사회, 이제 끝냅시다


▲ 2014년 10월 29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을 기다리던 영석엄마는 조용히 유가족들 틈을 빠져나와 국회 벽에 기대어 울기 시작 했습니다. ⓒ 이희훈




아기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아기의 울음은 '요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축축할 때, 나름의 방식으로 신호를 보냈다. "엄마 배고파요." "엄마 잠자고 싶은데 재워주세요." 요구가 해소되면 아기는 벙싯벙싯 웃으며 "나 이제 괜찮아요. 고마워요"라고 대답하는 것만 같았다.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는 아기는 아픈 것이라 들었다. 아기의 요구를 적절히 해소해주지 못하면 제대로 크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위기에 처한 이들의 비명 속에서 정답을 찾는다.


참사 피해자들의 신호도 마찬가지였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재난가족안전협의회'를 구성한 이전 참사 피해자들을 만났다. 대구 지하철 참사, 씨랜드 참사,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춘천 산사태 참사…. 그들은 세월호 유가족에게 "우리가 더 열심히 싸울 걸 그랬습니다. 우리가 더 치열하게 진상규명을 위해서 싸웠으면 세월호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참사와 재난이 일러준 목소리를 귀 담아 듣지 않은 자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 이 땅에서, 그들은 가족 잃은 아픔에 더해 죄인이 돼 있었다.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통계적 법칙을 발견했다. 산업재해로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하인리히 법칙은 1:29:300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시하고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다.(위키백과 '하인리히의 법칙' 인용)


앞선 참사는 세월호 참사를 예고하는 징조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경고를 무시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다른 사회를 만들자"는 요구가 단순히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몫일 수 없는 이유다. 희생자들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위험을 온몸으로 알리는 SOS 사인이기도 하다.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유가족인 이후식 대표는 "참사를 잊는 것은 다음 참사를 초대하는 초대장을 보내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과정, 지금까지 정부와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은 이러한 우려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산사태가 난 곳은 이미 물길 아래고 이전에 유사한 사고가 두 번이나 있던 곳이었어요. 그런데 그곳에 민박집 허가를 내준 겁니다. 산사태가 일어날 자연 여건이 충분한 곳이었어요." - 춘천 산사태 참사 희생자 유가족


첫째, 안전할 권리는 인권이다

버스 운행횟수를 제한하고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빈번한 사고를 줄이고 기사들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요구에 버스 회사는 묵묵부답이었다. 버스 사고로 사망한 이들의 목숨 값을 치르는 것이 버스 운행으로 벌어들이는 이윤보다 싸게 먹힌다는 셈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이 '비용'과 '효율'로 계산된다.

"우리나라 수준이, 회사에서 영업기밀이라고 지정하면 그냥 가타부타 말이 없다. 진짜 영업기밀인지 판단하지 않는다. 알권리 자체가 보장이 안 돼 있다. 화학물질안전에 대한 정보를 주지시킬 의무가 있지만 그런 건 그림의 떡이다.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현장에서 안 되는 것처럼… 노동자들도 자신의 권리라고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권리의 주체가 자기 권리인지 자체를 이 사회가 가르쳐주지 않아 인지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지금까지 정부가 내세운 안전은 '재산'과 '영토'의 안전이었다. 그것은 오히려 인권을 제한하거나 이윤을 더욱 추구하도록 하는 이데올로기였다. 인권선언운동은 안전을 둘러싼 세계관의 경합이기도 하다.

해경의 연간 구조·구난 예산은 전체 예산의 0.09%에 불과하다. 2014년 5월 19일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4년 해경의 전체 예산 약 1조1133억9300만 원 가운데 구조·구난 예산은 약 10억5300만 원뿐이다. 그 가운데 특수장비 보강 예산 약 5억3000만 원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구조·구난 예산은 전체 예산의 0.04%인 약 4억6000만 원뿐이다.

안전은 모두의 권리다. 국가가 통제하거나 감시하는 것, 전문가나 기업에 위임하는 것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모든 노동자는 위험을 알 권리,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고 변화시킬 권리, 작업을 통제할 권리 등을 누려야 한다. 모든 시민은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나 제도, 기업의 활동에 대해 정보를 요구할 권리, 참여하여 감시하고 직접 행동할 권리 등을 누려야 한다.


"세월호 승무원들이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안전교육을 요구했다면… 적재량을 초과하는 화물과 안전장치 미비에 대해 항의하고 신고했다면… 승객을 포함하여 자신의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출항을 거부할 수 있었다면… 뒤늦었지만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작업중지권 복원 투쟁을 제안한다." - 노동안전보건연구소


둘째, 구조와 회복의 권리는 인권이다



▲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이 2013년 2월 18일 팔공산 시민안전테마파크에 있는 위령탑 앞 잔디밭에서 헌화한 뒤 엎드려 흐느끼고 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중구 남일동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로 인한 참사로 192명이 사망했다. ⓒ 조정훈


    
재난을 당한 사람들은 구조받을 권리가 있다. 국가는 이것을 책임지는 주체이다. 또한 기업 등 관련 기관은 이에 조력할 의무가 있다. 시민은 국가와 기업 등 권력을 감시할 권리가 있다. 긴급한 구조와 구난, 구호는 모든 것에 앞서 진행돼야 한다. 비용문제와 형식화된 보고체계, 상급에 대한 의전은 모두 후순위다.

"팽목항에 도착해서 아이들이 구조돼 온다는 섬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어요.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전혀 그럴 의지가 없었어요. 가족들이 돈을 모아 민간어선을 빌렸지요. 민간어선 타고 갔더니… 해경 배 두 척만 보였습니다. 그것도 구조할 생각은 없고,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 근처를 빙빙 돌기만 하더라구요." -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학생들은 차분하게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일부 질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하다가도 '탈출 과정에서 승무원이나 해경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냐'라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국가와 기업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존중하고, 위험을 줄여나가야 하며, 안전을 해치는 조건과 상황을 피해야 한다. 누군가의 안전이 위협당할 때 구조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모두의 안전할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재난과 사고에 책임을 지는 것은 그 시작이다. 실효적인 처벌도 이루어져야 한다.


"처벌도 공무원 징역 2년 집행유예이고 대법에서 대부분 무죄이다. 유치원 원장은 5~6년, 수련원 건물주도 마찬가지… 인솔교사는 1년 집행유예… 공무원은 대부분 무죄이거나 집행유예로 끝났다." - 씨랜드 참사 희생자 유가족


"책임범위가 없다. 누군가 이런 행위를 권장했으면 분명히 사고에 책임이 있는데 어느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희생자 유가족


희생자들은 적절한 지원과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들은 뜻하지 않은 참사로 삶이 중단된다. 이들에 대한 적절한 지원과 사후 보상은 이러한 참사를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의사자가 뭔지도 몰랐는데 자신들이 해준다고 해놓고는 나중 합의에는 '건의'라고 돼 있었다. 일곱 가지 합의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확실한 것은 국가보상금, 보험 성격의 보상금 정도이다. 이것은 이미 확보돼 있는 것이었다. 그 외에 특별 위로금 등은 말로만 하고 줄 수 없다고 한다. 공무원은 이 상황만 넘기면 된다는 태도이다." -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희생자 유가족


안전은 모두에게 평등한 권리다. 가난하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장애인이거나 이주민이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거나 안전에 대한 정보가 불평등하게 제공돼서는 안 된다. 또한 권리가 제한당하거나 권리 행사에서 배제돼서는 안 된다.


"2013년 1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로 1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이 역시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최근 사례만이 아니다. 2008년 4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2011년 이마트 탄현점 사내하청 노동자 질식사 등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사례들은 숱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일련의 산재사고 피해자 대다수가 사내하청 노동자, 즉 비정규직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 진보정책연구원 노동분야 담당 연구원 박철우


참사 이후 벌어지는 참사와 관련된 일들은 참사의 진행형을 말한다. 시신을 인양하거나 수습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이다. 이러한 원칙을 비용이나 관행 등을 이유로 방해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된다.


"사고 나서 일주일 후에 이번 사고 피해자는 72명이라고 했다. 어떤 근거냐고 했더니 국과수에서 그러더라고 했다. 그래서 국과수에 물었더니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했다. 다시 시에 물어보면 얼버무렸다. 1300도 1500도 올라가면 DNA도 없어져서 시신을 못 찾을 수도 있다고 했다. 잘못하면 내 가족을 못 찾을 수도 있겠구나… 해서 정신이 버쩍 났다. 시는 DNA로 구분될 수 있는 사람만 인정하겠다고 했다." -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 유가족


셋째, 진실을 요구할 권리는 인권이다



▲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가 목숨을 잃은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의 합동영결식이 2013년 7월 24일 오전 충청남도 공주시 공주사대부고 운동장에서 학교장으로 엄수됐다. ⓒ 유성호



재난이나 사고로 피해를 입게 된 사람은 진실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재난과 사고가 발생한 배경과 원인 및 후속 조치 등에 대한 정보를 요구할 권리, 조사 및 수사와 기소를 요구할 권리, 피해에 대한 보상 및 지원을 받을 권리 등을 누려야 한다. 누구도 위와 같은 권리를 행사한다는 이유로 혐오에 노출돼서는 안 된다.


"1인시위 하는데 누가 나한테 침을 뱉었다. 10억이 넘는 돈을 받았으면서 뭔 돈 더 달라고 시위하냐고. 그래서 그 사람을 따라갔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인터넷 댓글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다음 날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찾아왔다." - 태안 해병대 참사 희생자 유가족


참사와 재해 이후 대책을 수립할 때 정부와 기업 등 해당 기관은 희생자와 가족들이 자신들과 관련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진실에 접근하는 노력에 최대한 조력해야 한다.


"언론은 유가족들의 이야기는 잘 듣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듯한 장면만 만들려고 한다. 유가족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 춘천 산사태 참사 희생자 유가족


"유가족들끼리 만나야 한다. 우리는 참사의 원인을 알고 있고 바꿀 수 있는 방안을 알고 있다. 그러니 서로 만나서 힘을 모아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희생자 유가족


2016년 4·16인권선언을 선포하자

2014년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 4·16인권선언운동 추진대회를 열었다. 2015년 4월 16일에는 인권선언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참사의 희생자와 당사자 인권실태조사, 간담회, 문헌 연구 및 강연회를 통해 초안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후 4·16 대안사회 포럼과 인권선언 제정 동참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304회(세월호 참사로 304명이 사망·실종됐다) 토론 간담회를 진행할 것이다.

2015년 세계인권의 날에는 인권선언 대토론회를 통해 주요 기관들이 인권선언을 채택하도록 촉구하는 행동을 펼칠 것이다. 세월호특별법에 의한 조사활동이 마무리되는 즈음인 2016년 4월 16일 마침내 '4·16 존엄과 안전에 관한 인권선언'을 제정할 것이다.

침몰하는 배 안에 사람들은 살아 있었다. 구조할 수 있었는데 구조하지 않았다. 그들 다수가 수학여행 떠나는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이 위험한 상태의 배에 승선할 때 그것을 점검하거나 규제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우리는 참사의 목격자이며 아픔을 공유한 피해자가 되었다. 한국 사회는 생명과 존엄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현실과도 직면했다. 다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이 존엄과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에 대한 대답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도 세월호특별법은 결론이 아니라 출발선이다. 특별법을 통해 밝히려는 진실이 무엇이며, 그 안에 담긴 미래는 무엇인지 알리고 대중적 힘을 모아가는 운동이 필요하다. 그럴 때 특별법이 정치적 협상의 결과물에 그치지 않고 대중적 의지를 실현해 나가는 출발선이 될 수 있다. 4·16인권선언은 희생자와 목격자들의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세계대전의 참상의 딛고 세계인권선언을 합의하며 다시는 전쟁과 같은 참혹한 야만을 만들지 말자고 다짐한 것처럼, 그렇게.

우리 사회의 존엄과 안전에 관한 가이드라인으로써 4·16인권선언 운동을 시작하려고 한다. 언젠가 참사의 희생자들을 만나게 되는 날 "존엄과 안전은 인권임을 당신들로 인해서 실현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뜨거운 포옹을 하고 싶다.


2015. 1. 1. 오마이뉴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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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가족 잃은 사람이 '죄인' 되는 사회, 이제 끝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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