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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입장•성명

어느 전과자의 법에 대한 짧은 생각 몇가지


▲ 출처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블로그



# 나는 전과자다. 


 전과 몇 범인지 세는 걸 포기했다. 몇 년째 단기 여권만 발급받고 있다. 잊을만할 때쯤 여권이 필요하고 그럴 때마다 계류 중인 재판이 몇 개 있는지 확인하고는 한다. 어느 때는 3개쯤이 있었나 보다.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에 각각 전화 돌리며 출국에 필요하니 관련 서류 빨리 보내 달라 채근해야 했다. 지금은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으로 7년째 대법원 계류 중인 재판 하나가 남은 것 같은데, 누구말로는 확정판결 되었다고도 한다. 알아봐야하는데, 알아볼 시간도 없다. 대법원이 친절하게 알려주지도 않는다. 늘 얹힌 쳇기처럼 걸려있다 다음 여권 만들 때쯤 바삐 또 알아보겠지. 그러므로 나는 전과자다. ‘별’ 다는 걸로 가오 잡을 수 있다면 꽤 높은 순위 ‘형님’ 되겠다.

# 쌍용차의 대법원과 고등법원


쌍용차 해고무효 재판이 있었다. 고등법원과 대법원. 우리가 모두 알듯이 결과는 정반대였다. 판결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판결의 호불호를 떠나, 각 법원 앞 장면이 잊혀 지지 않는다.  두 법원 앞에서 해고자들은 울었다. 고등법원 앞에서는 감격의 눈물을, 대법원 앞에서는 절망의 눈물을 흘렸다. 사측은 반대였겠지만, 그들은 내 알바 아니다. 해고무효 소송의 결과로 그들 운명의 강이 갈라지지는 않을 테니, 내가 관심 있는 것은 판결 결과에 따라 인생의 결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이들의 얼굴이다. 그들의 인생은 그야말로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다르게 흐르게 되었다.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인데…


# 이마트는 대형마트가 아니다


언제 소식이었나… 이제 신문을 아예 들춰보지도 않는 날이 많아져서, 정확한 날짜도 모르겠다. “이마트는 대형마트가 아니다.”라는 판결이 있었다고 하네. “국정원은 대선개입은 했지만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판결만큼 뻔뻔스럽다. 파렴치하다. 법원에 있는 사람들의 사고 체계는 미개한 일반인들과 달리 고매한 다른 체계가 있나보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싸우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나쁜 사람들이다. 기우뚱 기울기 시작하는 세월호의 선체 위에 ‘더 실어, 조금 더 실을 수 있어’ 외치는 선장님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런 것이 법원에서는 가능한가 보다. 대형마트는 이제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건지도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 주먹이 법보다 가깝다


즐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방영을 마친 드라마, ‘유나의 거리’다. 종편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달’ 작가 필력을 믿고 보기 시작했고, 명불허전이다. 소매치기, 전직건달, 꽃뱀, 제비족, 야반도주한 유부녀, 전직 부패 형사, 장물애비들이 ‘차차차 콜라텍’과 그들 공동주택에 모여 사는 이야기다. 문제없는 날이 없다. 주인공들은 늘 눈에 시퍼런 멍을 달고 나온다. 그런데 모든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것이 있다. “주먹이 법보다 가깝다”다. 문제가 생기면 도끼 영감이나 만보, 밴댕이 형님이 동생들을 이끌고 협박과 테러로 문제를 해결해준다. 극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역할인 남자 주인공도 가끔 ‘가위’ 들고 문제 해결에 나선다. 주먹질도 한다. 그런데 그들의 자력에 의한 구제가 ‘법’보다 믿음직스럽다. 위태로워 보이지 않고 속이 시원하다. 내 주변에도 도끼 형님이 계시면 얼마나 좋겠나 싶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정의’는 있기 때문이다.


# 졸지마라, 법관


또 다른 전과자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한참 재판을 하고 있었어. 어쨌든 그 재판 결과로 나는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는 순간이잖아…더운 날이었지…그런데 판사가 졸고 있는 거야.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 내 인생이 이렇게 하찮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 사람이 졸수도 있지, 그런데 그게 용서가 잘 안 되는 거야. 나는 인생이 달린 문젠데 말이야.” 이야기를 판사출신의 변호사 친구에게 해 준 적이 있다. 그러자 판사출신 변호사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사건이 너무 많아서 그래” 이해할 수 있는 주관적 감정과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 정황사이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어쨌든 법원에서 이뤄지는 무수한 판결과 판결 사이에 인간들이 건너야 하는 강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강은 그들 인생의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인권현안은 법과 가깝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법원 앞에서 흘렸던 눈물의 차이처럼 말이다. 그 차이의 간극을 법관과 검찰이 볼 수 있기를 바랬다. 법의 엄정한 수호자들에게 말이다. 세상은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인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 세상은 불평등하기 짝이 없다.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에게 차별적이고 편파적인 세상이다. 그런 입장을 법률가들에게 요구하면 안될까. 사법부가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보루이며 우리 사회 정의의 수호자라고 자처한다면, 과한 요구도 아니지 않겠나. 이미 지나치게 치우칠 대로 치우친 세상에서 중심을 잡으려면, 시소의 반대편으로 와야 한다. 치우친 시소의 무게 중심은 반대편에 있다. 지금 법률가들이 서야 할 자리가 그곳이다. 어느 전과자의 편향된 충고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지금 우리에겐 인권의 편향이 살길이다.

2014. 12. 16.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공감통신> 기고글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감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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