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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칼럼

[또하나의약속]아버지니까, 포기하지 않아

아버지니까, 포기하지 않아

우리가 또하나의 약속을 보는 이유


 



 

택시운전기사를 하다보면, 택시비를 내지 않고 내리는 손님이 있어요. 그런데 손님 쫓아가서 택시비 내라고 하면 손님은 자기가 택시비를 내지 않은 증거를 대라고 합니다.” <또하나의 약속> 영화 속 재판장에서 아버지 한상구가 하는 말이다. 회사가 백혈병에 걸려 죽어간 딸의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산업재해임을 입증하라는 재판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울부짖는 대목이다. 실제로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진짜 이야기도 그랬다.


대한민국 최고기업 진성에 입사한 착한 딸 윤미는 동생 대학 등록금도 마련하고 아버지 새 차도 빼 줄 수 있다며 좋아했다. 가난하고 평범한 윤미네 집에서 윤미는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진성에 입사했으니 람보르기니를 사달라고 하는 철없는 동생에게도, 명태 덕장에 다니는 속초처럼 조용한 엄마에게도 윤미는 가족의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윤미가 입사한지 2년 만에 백혈병에 걸려서 돌아왔다. 집안 내력에도 없었고 이유도 알 수 없었다. 특별할 것 없는 가족에게 불행이 시작되었다. 병원을 찾아온 진성그룹 이실장은 백지 사직서를 가지고 와 윤미의 지장을 받아갔다. 그리고 직원들이 모금한 돈 몇 푼을 쥐어주면서 병에 걸려서는 왜 회사 탓을 하냐는 모진 말을 뱉었다. 윤미는 화가 났고 아버지가 나서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길 바랬다.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여기저기 다, 찾아봤지만 문전 박대만 당했다. 노동부 직원은 침대에서 자다가 허리 다치면 침대회사 탓인가? 교통사고 나서 다치면 자동차 회사 탓이냐?”고 말했다.




윤미는 결국 쓰러졌다. 아버지 택시 뒷자석에 타고 엄마 무릎을 베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태어나도 엄마, 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다던 윤미는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윤미 얼굴을 보듬던 아버지는 택시 바깥으로 나와, 속 깊은 눈물을 꺽꺽 울었지만 그를 스쳐가는 차들은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아버지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유난주 노무사와 함께 쉽지 않은 싸움을 시작했다. 영화는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고난과 투쟁, 눈물의 기록이다. 평범한 아버지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완고한 벽 앞에서 어떠한 용기와 힘을 보여주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사회성 짙은 영화라기보다 감동적인 인간드라마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또하나의 약속>은 영화 밖이 더 치열하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진성그룹 이실장은 지금, <또하나의 약속> 상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 손들 때문에 영화는 개봉초기부터 좌충우돌이다. 하루 하루가 전쟁처럼 치러지고 있는 <또하나의 약속> 상영은 자체가 대기업 진성, 아니 초일류 기업 삼성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제작두레에 참여한 시민들의 힘으로만 만들어진 영화,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풀뿌리 개인들만이 응원한 영화. 우리 사회는 왜 일개 영화 한편에 들썩들썩하고 있나. 아마도 영화를 보면 확인할 수 있으리라. 무엇이 우리가 지켜야할, 또 하나의 약속일지


평범한 삶이 망가진 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우리는 평범하지 않게 되어버린 영화 한편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딸과의 약속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아버지를 통해서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이글은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기관 소식지와 웹진 빛두레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