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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칼럼

[다산&프레시안 공동기획] 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④


"'샘' 말대로 하면 다 죽어요" 제자 말에 뻥 뚫렸다

[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④] 비인간적인 시스템은 멈춰야

 글 : 정경수 유신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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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상흔이 남겨져 있다. 붕대를 감은 손과 어깨, 여기저기 붙인 파스에.

민주노총 안산지회 사무실 넓은 강당에서 SJM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많은 노동자들이 혈압검사를 받고 있는 것 같다. 한 줄로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SJM 노동자들의 얼굴은 웃음 반, 피곤함 반이 범벅이 되어 있다. 한쪽에는 아빠 손을 붙잡고 매달리는 아이가 있다. 아마도 토요일이라 아예 자녀를 데리고 사무실에 나온 듯하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애초에 인터뷰하기로 했던 분이 경찰 조사 때문에 자리에 없다는 말이 들려온다. 평범했던 이들의 일상이 균열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달리 또 시간을 내어 인터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노동조합 간부로 일하는 손범국 씨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1997년에 입사한 손범국 씨는 SJM 노조 집행부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눈으로 보기에는 큰 상처가 없는 것 같아 인터뷰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 손범국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병역특례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 오토바이 때문에 회사 측과 약간의 다툼이 있었고 그것을 기회로 노조 활동에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부터 오토바이를 쭉 타고 다녔는데, 누군가 사고가 난 이후 (회사 측에서) 갑자기 '이제부턴 오토바이 타고 다니지 마라', 이런 거예요. (…) 회사 측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하더군요. 전 못 쓰겠다고 했어요. 기분이 나빠서요. 아니, 그럼 누군가 자동차 타고 다니다가 사고 나면, 모두 다 자동차 못 타고 다니게 할 것이냐는 거죠. 말도 안 되는 것이죠."

일상 곳곳의 통제에 대한 본능적인 반항으로 손범국 씨의 노조 활동은 시작된 듯했다. 손범국 씨의 말을 듣는 동안 1987년 노동자 투쟁 당시 한 기업의 첫 번째 단체협약 내용이 '두발 자유화'였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노동자를 통제하고자 하는 기업주와 관리자의 속내에는 인간에 대한 오만하고 불손한 폭력이 담겨 있다.

"그전에는 관리자나 기업주가 시키는 대로 했었는데, 노동조합이 있으니까 참 좋더라고요. 혼자 말하기 힘들면 대변해 주기도 하고, 정말 매력 있잖아요. 예전에는 시키는 대로 했었는데…."

손범국 씨에게 노조는 인간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여 '인간'다운 삶과 노동을 그려볼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다. 유럽 국가들에서는 학생들에게 노동기본권과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정식 교육과정을 통해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학교 교육은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게 하고 있는가? 노동자의 권리와 삶은 부정하고 자본의 삶, 경쟁력 있는 인생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있지 않나? 교사가 아니라 때로 국가와 자본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죄의식이 나를 자주 불편하게 만든다.

이런 불편함을 느끼기라도 한 듯이 손범국 씨는 학교 교육에 특별히 바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다만, 교사들이 가끔은 교과서와는 다른, 언론과 정부가 말하는 것과는 다른 생각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라도 해주길 바랄 뿐이라고만 말한다.

"내가 그동안 듣고 보고 느껴왔던 것이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 왜곡된 것을 배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전부가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마 다른 책들도 읽어 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에서 '네가 배우고 있는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서 한쪽 방향으로 쓰인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학생의 몫이죠."

▲ 손범국 씨. ⓒ다산인권센터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학생들

이같이 교육의 결과를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기는 것이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교육 논리다. 하지만 정부와 자본의 대응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몇 해 전 박정희 정권에 대한 교과서 서술 논쟁에서 드러나듯이 철저하게 친정부적, 친자본적 논리로 교과서를 서술하게끔 하고 있다. 노동기본권과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서술이 단 한 줄도 없는 경제교과서조차 반기업적이라고 매도한다. 그리고 전경련은 더욱더 자본에 유리한 경제교과서를 '대안(?)'교과서라고 펴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반노동적 교육 강요보다 더 끔찍한 것은 학생들의 눈으로 읽는 현실이다.

정부와 자본은 삼촌과 사촌누나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못 잡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학생들은 월급을 약속한 대로 주지 않는 사장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불법을 저질러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폭력적 노동현실을 통해 학생에게 노동자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갖게 하는 것은 SJM 노동자들이 자신이 만든 벨로우즈로 맞아 피 흘리는 현실과 동일하다.

"(그 벨로우즈는) 저녁 내내 만든 것이잖아요. 밤 11시 50분까지 만든 것이잖아요. 그런데 5시간 뒤에, 6시간 뒤에 (그것이) 우리에게 날아올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죠. 맞고, 피 흘리고, 머리 터지고…." 자신이 만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 자체를 배신당한 것이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속한 교육현실 속에서 배신당하는 과정을 맛보고 있다.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은 바로 교육환경을 극악하게 만드는 배신의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공부 못하면, 힘들게 사는 거잖아요. 힘들게 안 살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죠.' 학생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봉사활동이든 자치활동이든 '스펙'을 쌓아서 사장님이 되기 위한 연습만을 한다. 결국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자기 삶과 자기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길을 걷는다.

지난 학기에 '파업'을 소재로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정부, 노동자, 사용자 측 입장에 서서 역할 수업을 해 보는 것이었다. 노동자 측 학생들의 요구에 대한 사용자 측, 정부 측 학생들의 목소리는 너무도 적나라하게 현실을 반영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적나라한 간접경험을 통해 학생들이 이러한 현실에 대해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노동자의 삶을 애써 거부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XX하게 힘들겠구나'를 뼈저리게 느끼고, '학업에 열중하자'라는 결론을 내린다. 자기배반적 행동을 선택한 학생들. 그것도 안 되면 그들은 학교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는 두려움과 공포를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이다. 본질적으로 SJM 노동자를 비롯하여 지배계급 이외의 사람들은 '인간'으로 대접해 주지 않는 반인권적 시스템이다. 그래서 그들은 '앞뒤 가리지 말고 깨버려라'는 지시를 용역폭력배에게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돈 있으면 저렇게 해도 된다'고, '저렇게 해도 정부와 경찰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도 않고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7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원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한 경비업체 컨택터스와 이를 지시한 ㈜SJM, 폭력사태를 묵인한 안산단원경찰서를 검찰에 고소, 고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컨택터스가 노조원들에게 던진 자동차 부품을 기자회견장에 들고 나왔다. ⓒ연합뉴스



잘못된 시스템 멈추기 위해, 하던 일 모두 멈춰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는 막막함을 느끼게 한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염치조차 없는 저들의 행동에 오히려 막막하고 답답해진다. 이런 답답함과 무력감이 느껴질 때, 한 학생이 수업시간에 한 말이 생각났다.

타임머신을 타고 산업혁명 즈음으로 가서 교사인 내가 자본가 입장이 되고, 학생들은 노동자 입장이 되어 노동기본권을 확보해 보는 논리 게임을 해 보는 수업이었다. 학생들이 수많은 논리로 노동기본권을 주장해 보았지만 '자유방임', '재산권 보호'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 무장한 교사인 나를 이길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 자본과 정부처럼 행동하는 나를 학생들이 논리로 어떻게 이기겠는가?

그때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논리고 뭐고 다 필요 없고요. '샘' 말대로 하면 우리들은 다 굶어 죽게 생겼으니, 그냥 일 안 할래요. 어차피 죽을 텐데요, 뭐." 순간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손범국 씨의 아홉 살짜리 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빠, 회사에서 쫓겨났는데 왜 나가? 일 안 해도 되는데 왜 나가?" 이제 공장으로 가는 대신 농성장으로, 연대집회로, 노동조합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는 아빠가 이상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손범국 씨 딸의 말처럼 이러한 시스템을 멈추기 위해서, 하던 일을 모두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우리 힘으로, 우리가 들어가고 싶을 때 당당히 회사로, 공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번 SJM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라는 손범국 씨의 말처럼. 그들의 공장이 아니라 우리의 현장이며 공간인 곳으로. 오히려 그들의 시스템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딴짓을 하는 것. 공장과 같은 학교, 학교와 같은 공장…. 닮은 그 현장에서 내가 얻은 답은 그것이었다.